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든 생각은 아무래도 게리 슈테인가르트의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민음사, 2007)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망할 놈의 나라, 내지는 망하기로 작정한 나라가 MB의 대한민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의 '압수르디스탄' 수준이 아닐까. 어이없어 하면서 읽은 기사들 중 사설 하나와 진중권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1. 07) [사설]경제위기 확산된 뒤에야 설치된 ‘워룸’

비상경제정부 체제하의 상황실 노릇을 할 비상경제상황실이 어제 설치돼 가동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는 경제 상황을 점검하는 일종의 워룸(War Room)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정부 안팎에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황실 사무실을 전시(戰時)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 두었다. 그러나 정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은 없고, 어딘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지 벌써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 그 위기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지자 영국 등 몇몇 나라들이 워룸 같은 비상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바뀌는 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관련 업무를 총괄할 비상기구를 설치하기는커녕 부처별 각개약진과 혼선, 한 발 늦은 대책 등으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그러던 정부가 금융시장이 얼마간 진정된 지금에서야 워룸을 운영한다고 하니, 뭔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뒷북치기 식으로 만든 기구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즉흥적인 업무 처리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달 전 이른바 신빈곤층 대책 마련을 지시했으나 신빈곤층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놓고 부처 간 논란만 빚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뒤죽박죽이다. 이 대통령이 연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자 지난해 말 정부 부처들은 2009년 업무계획을 통해 너도나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이때 나온 정부 부처들의 일자리 계획을 모두 합치면 43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실업자들의 절반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무슨 재원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새로 운영되는 비상경제상황실이 이런 전시성 계획이나 ‘뒤죽박죽’ 정책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노컷뉴스(08. 01. 07) 진중권 "녹색뉴딜? 군복이 녹색이면 군대는 환경단체?"  

▶ 진행 : 고성국 박사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
▶ 출연 :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는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 한마디로 어이가 없죠. 서울이 지금 가자지구입니까. 이스라엘에 폭격을 맞고 있는 상황인가요. 그런 상황도 아닌데 왜 벙커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요. 이런 데서 우리는 집권층이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 마인드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구사하는 수사법을 보면 정말 6,70년대의 남한 아니면 5,60년대의 북조선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를 들어 집권하자마자 얼리버드 운동을 했는데 그건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을 연상시키고요. 대통령도 디지털 시대에 젊은이들을 향해서 에어컨 돌아가는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장 나가서 땀 흘리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건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을 생각나게 하고, 또 정부와 여당에서 아주 공공연하게 속도전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속도전이야말로 전형적인 천리마정신인데요. 여당 대표도 공공연히 전국이 공사판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전쟁 직후의 전후복구사업을 연성시키거든요. 이걸 보면 정부여당의 마인드가 완전히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 지하벙커 문제는 청와대에 공간이 없어서 기존시설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던데요?   

=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나와야 하는데 지금 지하상황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레토릭이라는 게 제가 볼 땐 그런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정치적인 제스처가 있어서 자기들이 시시각각 전쟁 상황처럼 대응하고 있다는 발상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경제를 운용하는 걸 워게임 모델을 도입하는 게 굉장히 시대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경제위기상황실 운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도 그런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런데 이분들이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약간 일종의 문화적 이벤트로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랄까요. 언제는 위기였다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또다시 했다라고 했다가 굉장히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고요.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자체에 대해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라는 것들이야 왔다가 또 언젠가는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부분 전문가들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쯤 되면 경기가 다시 풀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군사용어까지 남발해가면서 호들갑을 떠는 게 맘에 안 들고요. 더 중요한 건 이분들이 나중에 경기가 풀리게 되면 그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상황실까지 설치해서 대응한 덕이 아니겠느냐고 자화자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정부가 어제 위기극복대책의 일환으로 녹색뉴딜을 발표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군복이 녹색이라고 군대가 환경단체가 되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녹색이라는 게 원래 현 정권의 시장주의 코드와는 잘 안 맞는 색깔이거든요. 그런데 국제적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파괴 때문에 세계 각 국에서 시장에 한계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까, 탄소배출을 제한한다든지.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그 낱말을 들여다가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저탄소 에너지라면서 원자력을 강조한다든지 그런 식이라는 거죠. 그리고 녹색뉴딜이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콘크리트 공사 위주거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 산 깎아서 콘크리트 치고 그 위에다 녹색그물 같은 걸 덮어두는 게 연상되더라고요.  

▲ 이번 녹색뉴딜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거든요?  

= 그런데 오바마의 그린뉴딜과 정부의 녹색뉴딜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오바마의 것은 최첨단 재생에너지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로 녹색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일자리들은 전문적이고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또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도 대개 그런 식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져 있는데, 현 정권의 녹색뉴딜은 결국은 토목공사가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창출되는 일자리도 90% 이상이 건설일용직이고요. 또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자리들인데요. 제가 볼 땐 경제에 대한 관념 자체가 너무 토목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50조라는 거금을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 걸로 보입니다. 사실 경기는 부양해야 할 필요가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 부문에서 일자리 창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50조라는 것도 결국 국민의 세금인데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고 전문적이고 우리 경제를 위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야가 극한대치상태를 벌이다가 합의를 했는데요. 여야합의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 저는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렇게 합의가 이뤄질 바에는 뭐 하러 그런 충돌을 해야 했느냐는 겁니다. 어차피 합의가 이뤄질 바라면 서로 예상이 되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강행하면 저쪽에서 물리적으로 저항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예측되는 결과들이 있는데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왜 매번 이런 것들을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야 합의가 끝나고 나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의원직 사퇴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 제가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합의가 이뤄졌고요. 거기서 민노당이 계속 반발하다보니까 일종의 왕따를 시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민노당 의석이 작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일종의 희생양 제의처럼. 물론 강기갑 의원이 잘못한 행위가 있는데 그것에 비해선 과도하게 중요성들을 부여하면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게 현명할까요?  

= 강기갑 대표가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분이 부상을 당하고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건 이해하지만 의원으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대국민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기갑 대표를 공적 1호라고 하면서 제명을 추진한다는 얘기까지 들리는데요. 제가 볼 때 강기갑 대표가 공적 1호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분들은 공적 0순위들입니다. 과거에, 또 현재에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는 거죠. 자기들도 의사당에서 분말소화기 쏘는 것도 폭력 아닌가요.  

▲ 여야 합의는 됐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후폭풍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야당의 떼법에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굴복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만약 국회에서 다수당이 맘대로 한다면 굳이 총선한 다음에 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야당 의원들에게 뭐 하러 세비를 줍니까, 여당 의원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하면 되는 거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합의처리라는 용어도 있고 협의처리라는 용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절충하는 절차라는 게 그동안 국회에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선민심, 총선민심을 승복하라는 주장을 계속 하는데요?  

= 그럼 촛불민심도 승복해야죠. 지금 한나라당과 특히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옵니까. 일본의 경우라면 내각의 사퇴, 내각을 다시 구성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국민들이 대선 때 자기들을 뽑아줬다고 대선의 모든 공약을 다 동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논리적인 오류죠. 특히 대운하 같은 것들을 국민들이 그때 동의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방송법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여론은 다르게 나오고 있고요.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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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45   좋아요 0 | URL
원래 신자유주의,특히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뉴딜 반대파가 그 뿌리인데...그래서 우리나라 뉴라이트 경제학자인 이상돈(중앙대 교수)씨는 루스벨트 비판,뉴딜 비판에 몰두했지요.그런데 대통령이 뉴딜의 명성을 빌려 저렇게 나오니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뉴딜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그렇게 강조했거든요.

로쟈 2009-01-08 22:53   좋아요 0 | URL
기회주의적 비판이 아니었다면, MB식 뉴딜도 비판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