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어서 인사동에 나갔다가 아이에게 문구도 사줄 겸 반디앤루니스에 잠깐 들렀는데, 의외의 신간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이덕형 교수의 <이콘과 아방가르드>(생각의나무, 2008). 근간 예정이라는 건 알았지만 리뷰보다도 실물을 먼저 보게 될 줄은 몰랐다(사실 내가 찾아보려고 했던 책은 승계호 교수의 학문세계를 다룬 <서양철학과 주제학>(아카넷, 2008)이었지만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알라딘에도 그렇고).  

 

책 자체는 지난 2004년에 발표한 소설 <검은 사각형>(생각의나무, 2004)에 이미 예고돼 있었는데, 그 소설의 얼개가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이 어느 겨울날 러시아 작가의 출판권 계약과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이콘과 아방가르드’의 원고수집을 위해 길을 떠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을 경유하며 각 도시에서 작가나 화가의 흔적을 만나고 그들의 미학적 의미를 되새겨본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이 그렇게 수합한 자료와 사색의 결과가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성균관대출판부, 2006)와 이번에 나온 <이콘과 아방가르드>로 갈무리된 것. 하므로, 아직 한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세 권의 책이 하나의 삼부작처럼 읽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콘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출판사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을 쓴 성균관대학교 이덕형 교수(러시아어문학 전공)는 러시아 문학과 그리스도교 이콘을 20여 년이 넘게 연구한 학자이자 소설가로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콘 전문 연구가이다. 그는 국내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한 후 소련 유학이 불가능했던 1980년대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가톨릭 예수회 수도사들의 정교 공동체인 파리 근교 뫼동의 생조르주에서 4년 동안 정교의 교리와 함께 이콘의 제작기법을 배웠다. 이때 그는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정교 사상을 비로소 체감하게 됐고 나아가 그 뿌리가 되는 비잔틴 문화까지 탐구하게 됐다. 

저자는 이미 19세기 러시아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특유의 감성과 아름다운 문체에 담아 예술기행서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펴낸 바 있으며, 신간 <이콘과 아방가르드>의 모태가 된 소설 <검은 사각형>을 몇 해 전 출간하기도 했다.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 비잔틴 이콘의 흔적을 찾아 나선 구도적 여정을 글로 옮긴 것으로서 미학과 문학을 넘나들면서 초월에의 욕구를 예술(구체적으로는 러시아 이콘)이라는 틀에 담아 자신을 표현하고 성찰하는 한 존재의 지적 여정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주인공의 여정(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니스, 밀라노, 뫼동)은 <이콘과 아방가르드>에서 저자가 직접 수집하고 고른 200여 장이 넘는 생생한 이콘 도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2천 년 이콘의 역사를 읽어내기 위한 저자의 각고의 노력(러시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 수많은 국내외 참고도서들)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러시아 문화사와 문화시학을 다룬 저자의 첫번째 책은 <천년의 울림>(성균관대출판부, 2001)이었다. 묵직한 책이지만 전공 교재로도 많이 사용되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러시아문화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준 책이다. 이어서 나온 책이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책세상, 2002)인데,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의 서론격인 책이다. '서론격'이라고 한 것은 저자가 이 주제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저작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쥐보그의 손자들>(성균관대출판부, 2002)은 동슬라브 신화를 다룬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한 건 <천년의 울림>이 보여준 스케일에 견주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케일은 <이콘과 아방가르드>에 이르는 삼부작에 이르러 다시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물론 다른 언어로 된 이 분야의 관련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노고 덕분에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 미학과, 비잔티움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아방가르드의 이콘을 역사적으로 가로지르는 '초월적 성스러움'의 미학을 우리말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빛도 성스러움도 모자라는 세태인지라 서가에 꽂아두고 자주 쓰다듬어볼 만하다... 

09. 01. 03. 

P.S. 저자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1091751005&code=900308 참조. 이런 멘트가 눈에 띈다. “이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정신학이라고 불렸던 그리스 교부철학이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 뤽 마리옹 등 현대철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걸 알게 됩니다. 초월자를 언어라는 테두리에 가둘 수 없으며 침묵과 관조, 이콘과 모자이크 같은 ‘빛의 예술’을 통해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정신학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와도 통하지요. 서유럽 교회의 예술이 모든 것을 소실점으로 모으는 원근법을 발명했다면 그리스 정교의 이콘 미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채택한 다초점과 나열의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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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4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북 2009-01-14 17: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입니다. 이덕형 교수님 신간이 나와서 검색해 보던 중 로쟈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글이 좋아서 저희 블로그에 스크랩하고 싶어서 댓글 남겨요. 허락해주신다면 담아가고 싶습니다. ^^

로쟈 2009-01-14 17:38   좋아요 0 | URL
독전감이어서 별 내용은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