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성이 까다로운 편도 아니고 특별한 미식가도 아니어서 내가 좋아하는 식단은 저렴하면서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느껴지는 식당의 음식들이다. 20년이 넘게 먹어온 대학 식당에서도 가끔 '감동'하며 밥을 먹을 때가 있고, 5000원짜리 칼국수나 김치찌개, 청국장, 곱창전골 등에서 지극한 만족감을 맛보기도 한다(값비싼 음식들도 더러 먹어보았지만 그저 '호사로군!' 할 따름이다).


파리가 들어간 수프도 후루룩 먹어치우는 고골 소설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먹는 일에 목숨 걸지는 않는 편이다('다 먹자고 하는 일이지!'란 말을 나도 덩달아 내뱉곤 하지만 진심을 담아서 말한 적은 한번도 없다). 몸에 해롭지 않고 특별히 불편하지 않은 수준에서 만족하는 편이며 가끔씩 누리는 호사에 감사할 따름이다(비록 정신의 양식에 관해서라면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편이지만).

지난달인가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본 <앤티크> 같은 영화가(고급 케이크가 잔뜩 나오는 영화다) 취향에 맞지 않는 건 그런 때문이다(영화를 보며 딴생각을 하기도 하고 졸기도 했다). 굳이 안 볼 이유까지는 없지만 <식객> 같은 영화도, 드라마도 나는 보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책의 바다'에서 매일같이 허우적거린다고 해도 요리책에 눈길이 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요리책만큼 눈밖에 나 있는 책은 처세서 정도다).

갑자기 '서론'을 늘어놓은 건 그런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요리책이 있기 때문이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 제목이 좀 특이한데, 저자는 MFK 피셔이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그래서 '세계의 책'으로 분류한다). 제목에서 '늑대'는 '굶주림과 가난'을 뜻한다고 하므로 풀어서 말하자면 '굶주림과 가난을 요리하는 법'이다(우리말로는 <쥐를 요리하는 법>이라고 해야 할까). 나 같은 사람도 눈길을 끌게 만드는 이 흥미로운 책을 소개해준 기사를 옮겨놓는다. 책은 빨리 번역되면 좋겠다(저자의 다른 몇몇 책들도 입맛을 돋군다)...
한겨레(08. 12. 23) 굶주림과 가난을 요리하는 법
연말이라 모임이 잦다. 주로 저녁식사들인데, 다양한 사람들과 시리즈로 저녁을 먹다 보면 같이 먹는 사람에 따라 음식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꽤 드라마틱하게 체험할 수 있다. 왜 달라지는지 이유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상대방이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절실함이 한몫한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평소의 부족함이 주는 음식에 대한 흥분감이란 게 별로 없고 심지어 권태감마저 느낄 수 있다. 달걀이 귀할 때 먹던 삶은 달걀의 맛과 요즘 느끼는 맛이 같을 수 없듯이, 음식에 대한 기본적 ‘허기’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식사는 다른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읽는 책 중에 MFK 피셔가 쓴 <늑대를 요리하는 법>(사진)이란 책이 있다. 전쟁으로 궁핍할 무렵인 1942년 나온 책이라 더 감칠맛 나게 읽힌다. 미국에서 쓰는 표현 중에 “늑대가 문간에 들이닥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늑대란 굶주림과 가난을 뜻하는데, 늑대를 제목의 일부로 사용한 이 책은 곤궁한 시대에 먹고사는 일을 은유 삼는 문학적 요리책이자 특별한 음식 에세이다.
여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전쟁 중이라 설탕과 버터를 배급받아 생활해야 했던 젊은 주부들이 모여앉아 어떻게 설탕과 버터를 거의 쓰지 않고 케이크를 만드는지 서로 묘안을 자랑했다.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피셔의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생을 전쟁통 예산으로 아껴가며 살아왔다. 부엌에서 상식적으로 하는 일이 어려울 때나 스타일리시해진다는 건 이제야 알았구나.”

전후 미국엔 풍요와 잉여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 깊게 배어버렸다. 음식도 부족함을 아는 사람과 함께 먹어야 맛있는 걸 보면, 부족함이 없다는 건 뭔가 균형이 깨진 상태라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결핍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살다 보니 나도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갈 때 생기는 즐거움을 감지하는 감각기관 자체가 퇴화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피셔 할머니의 말씀처럼 가난은 가난할 때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삶 속에 항상 있는(혹은 있어야 하는) 가난과 결핍을 ‘어떤 스타일’로 다스리는 것이다. 즉 ‘늑대’를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맛있고 아름답게 요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19세기의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창조적 경제 운용은 훌륭함을 낳는 연료가 된다”고 했다. 더하거나 새로운 것만 찾는 것이 꼭 창조적인 건 아니다. 있던 것을 빼고 모자람을 즐기는 것 또한 멋지고 흥미로운 삶을 사는 한 방법일 수 있다.(박상미/화가·작가)
08. 12. 22.



P.S. 안 그래도 요즘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이 부르디외가 편집한 <세계의 비참>(동문선, 2002) 시리즈다. 세계의 비참을 말해주는 방대한 사례집인데, 부르디외와의 대담에서 귄터 그라스는 모든 나라가 이런 책을 한권씩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동감이다(내기로만 한다면 어디 한 권뿐이겠는가!). '늑대를 요리하는 법'의 재료로서 더할 나위가 없지 않나 싶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세계의 비참'과 유사한 컨셉의 책으론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창, 2006)가 있다. 노동운동가 하종강의 책들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겠다. '굶주림과 가난을 요리하는 법'에 맞추자면, 이거 무지하게 식욕을 돋구는 책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