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된 가장 두툼한 역사서는 단연 아이라 라피두스의 <이슬람의 세계사>(이산, 2008)이다.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두 권을 합해서 분량이 1568쪽에 이른다. 게다가 '이슬람 역사서의 결정판'이라고도 하니 이슬람 세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올해의 책'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리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7356.html 참조).

하지만 당장 읽을 책(읽을 수 있는 책) 가운데 지난주의 역사서를 꼽으라면 이재정의 <조선출판주식회사>(안티쿠스, 2008)을 고르고 싶다. 마침 같이 출간된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휴머니스트, 2008)이 좋은 짝이 될 듯싶고, 언론리뷰들에서도 나란히 다루어졌다. 워밍업 삼아 미리 읽어둔다.

경향신문(08. 12. 13) 삼강행실도’는 조선왕조의 통치수단

법가를 국치이념으로 삼은 진(秦)의 시황제는 분서갱유를 실시했다. <시경>과 <서경> 등의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생매장했다. 오늘날과 같은 대량 인쇄술과 출판업이 발달하기 이전,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자가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 사상이 집약된 책은 통제의 대상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분서갱유처럼 폭압적인 문화정책을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사상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조선의 왕들도 다르지 않았다. 궁중 서고는 물론이고 민가에 있는 서적까지 나라 안의 책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왕의 임무 중 하나였다. 중종은 “흩어진 책을 찾아 모으는 일은 임금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급선무”라고 할 정도였다. 선조는 임란 이후 사라진 책을 구하기 위해 책을 바친 자에게 상을 줬고, 정조는 귀한 책을 구해오면 벼슬을 올려줬다. 또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바로 베이징 유리창의 서점가에서 새로 나온 책을 수입해오는 일이었다.

왕은 편집자이며 교열자이기도 했다. 세종은 중국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자치통감>의 교정을 직접 보았다. 엄청난 독서광이었던 정조는 재위기간 활자를 새로이 만들고 개량했으며, 목판이냐 활판인쇄냐 등 인쇄의 형태까지 직접 결정했다.

<조선출판주식회사>는 조선왕조를 하나의 출판사로 파악한다. 조선의 통치체제 하에서 책은 조선왕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조선 후기 민간에서 만들어낸 상업인쇄본인 방각본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책은 오로지 인쇄를 담당하는 관청인 교서관(校書館)에서만 찍어냈다. 지식과 사상의 독점·보급을 통해 조선왕조는 통치이데올로기를 굳건히 하고 유교사상에 따른 신분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조 때 선정 언해한 <삼강행실도>의 초기 간본

유교사상의 충효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찍어낸 <삼강행실도>가 대표적인 예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가장 많이 출판된 책 중 하나인 <삼강행실도>는 처음 세종 때 편찬돼 간행됐다. 효자와 열녀, 충신 330명의 행적을 글로 기록하고 한문을 읽지 못하는 평민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넣었다. <삼강행실도>는 이후에도 종종 새로 편찬돼 발행됐다. 중종 때는 연산군의 패정으로, 광해군 때에는 임진왜란 이후 흐트러진 나라의 기틀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1514년 중종은 <속삼강행실도>를 완성하고 2940부를 한번에 발행해 보급했다. 세계 10위권 내의 출판강국으로 손꼽히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에 3000부 이상을 찍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중종의 <속삼강행실도> 발행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대역사(大役事)’였던 셈이다.

광해군 때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중 ‘김씨 단두’ 부분.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가 취하는 입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민속학(주영하)과 서지학(옥영정), 고문서(전경목), 미술사(윤진영), 고전소설(이정원)을 전공한 5명의 학자들은 ‘지식의 전파와 관습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삼강행실도>를 살핀다.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삼강행실도>에 대한 분석이 조선 왕조의 지식 독점을 통한 유교이데올로기 유지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 판소리와 일제시대 신문 기사에서까지 <삼강행실도>에 보이는 지식이 수용된 양상을 주목한 논문들은 꽤 흥미롭다.(윤민용기자)

0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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