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키보드(자판)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할일은 줄었지만(!) 꽤나 불편하다.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기사 하나를 옮겨오는 데 몇십 분이 걸리는 식이니 말이다. 하는 수없이 노트북에서 마무리를 한다. 이번주 예술분야 신간들 가운데 한 권만 꼽으라면 내가 고를 책은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민음사, 2008)이다. '조지아 오키프'란 이름이 생소한 이라도 그녀의 '커다란 꽃 그림'은 낯익을 것이다.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는 예전에 '조지아 오키프와 산타페'(http://blog.aladin.co.kr/mramor/912676)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진작가이며 오키프의 남편이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에게 영감을 준 모델로 출발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게 된다고.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이다. 이번에 나온 책 <풀 블룸>(원제) 덕분에 그녀의 예술과 생애에 대해 풀 스케일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    

문화일보(08. 12. 05) 사진모델서 화가로… ‘美모더니즘의 女神’

#1.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키프로스의 왕이 있다.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한 피그말리온은 어느날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하고 나서 그만 그 조각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조각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피그말리온이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조각에 입을 맞추자 조각은 사람이 돼 걸어 내려왔다. 이 여성이 갈라테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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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가 갈라테아라고 하면 그를 발견한 사진작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피그말리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키프는 아름다운 갈라테아에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예술가로 자립, “사물의 지극한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미국 모더니즘의 개척자가 됐다. 오키프는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부터 1950년대와 1960년대 하드에지, 팝아트, 옵아트,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미국 모더니즘 양식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오키프가 숨진 뒤 2001년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20만달러(당시 62억여원)로 팔려 여성 화가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스티글리츠가 찍은 오키프의 손은 2006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147만2000달러(당시 15억여원)로 사진경매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에 걸쳐 수십명을 인터뷰하고 그에 관한 수천통의 편지 등을 읽고 쓴 오키프의 전기다. 이 책에 따르면 오키프는 엄청난 고통, 전문가로서의 실패와 정서적 좌절과 행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지혜를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2. 1908년 미국 뉴욕 예술계 명사였던 스티글리츠의 291화랑은 마티스, 브랑쿠시, 세잔, 피카소 등을 미국에 처음 소개한 진보적인 화랑이었다. 1915년 시골뜨기 화가 지망생 오키프가 찾아와 스티글리츠에게 수채화 추상화를 보여줬다. 스티글리츠는 “드디어 회화사에 진정한 여성 화가가 나타났다”고 격찬했다.

오키프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뻘 나이의 유부남이었으나 자신을 알아준 스티글리츠와 결혼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2년동안 200점이 넘는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1921년 전시를 통해 오키프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오히려 감수성이 강한 여신이면서 연약한 성적 대상으로 연출된 스티글리츠의 이미지에 가려져 버렸다.



#3. 이 책의 원제는 ‘풀 블룸(Full Bloom·만개·滿開):조지아 오키프의 예술과 생애’다. 오키프가 본격적으로 포착한 것은 만개한 꽃이다. 그는 꽃의 여성적 이미지에서 강렬한 전복적 의미를 추적했다. 그의 활짝 핀 꽃은 프로이트적 성적 의미를 넘어 남성의 시기와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예술은 뉴욕의 스티글리츠를 떠나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홀로 칩거, 천착한 해골이다.

오키프는 골반뼈 그림에 대해 “뼈의 구멍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을 때 나는 골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볼 때 구멍 안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것은 모든 인간의 파괴가 끝난 후에도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김승현기자)

0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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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판 프리다 칼로군요.스티글리츠는 앵글로 색슨 이름은 아닌 것 같고...조상이 누구일까요?

로쟈 2008-12-06 19:22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도 서양 이름엔 별로 감이 없어서... 독일이나 그 주변 같기도 하고요...

개츠비 2008-12-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이책의 표지가 진중권 선생님의 <성의 미학>과
똑같은데요? 전 <성의 미학>인줄 알았는데 딱보고...ㅋㅋ

로쟈 2008-12-07 08: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책의 표지로도 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