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 교수가 한국학술협의회의 석학연속강좌에 초빙을 받아 지난주에 내한했다. 인권, 정의, 평등이 이번 강좌의 키워드인 듯하다. 강연회는 가보지 못했고 관련기사만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그의 책은 <법의 제국>(아카넷, 2004), <자유주의적 평등>(한길사, 2005) 등이 소개돼 있는데(나는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진 못했다) 낙태와 안락사 문제를 법철학적으로 다룬 <생명의 영역>도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몰아서 읽어보면 좋겠다.
한겨레(08. 11. 21) 국민 분열시키면 ‘인권침해 정부’
“인권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려면 종교처럼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합해주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학술협의회와 대우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로널드 드워킨(77·사진) 미국 뉴욕대 교수는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연 공개강연에서 “무엇이 진정한 인권인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인권의 일반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권의 중요성과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나 종교에 호소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존 롤스(1921~2002)를 잇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거두로 평가받는 드워킨 교수는 <자유주의적 평등> <법의 제국>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원천인 ‘자원’의 고른 분배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평등론’을 주장해왔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그는 “국가가 국민을 평등하게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부과되는 어떤 강제나 의무도 도덕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며 “이런 평등한 배려와 존중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인권”이라고 말했다.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보다, 신자가 비신자보다, 아리안족이 셈족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가정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 행위가 바로 이론의 여지 없는 인권침해다.” “언론·표현·양심·정치활동·종교의 자유처럼 삶에 대한 시민의 자기책임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엇보다 유럽과 미국의 학자·사상가들이 인권을 기독교적 전통과 결부짓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이 종교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필연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권이 종교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아주 오래된 것이며, 일면 유용한 점도 있다고 인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의 권위에 기대서는 윤리적 이상이나 도덕적 권리를 전혀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할 인권을 갖는다는 것은 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에 대해 똑같은 힘을 가지고 대응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다음 강연에서 평등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등에 대한 인권을 갖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두 번째 공개강연은 21일 오후 3시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다.(이세영 기자)
고대신문(08. 11. 09) 법철학으로 푸는 실제 법률 문제
<Life's Dominion>에서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낙태와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데 이 책의 주제 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은 장중하면서도 집요한 논증방식이다. 드워킨(Dworkin)은 하버마스(Habermas) 및 롤스(Rawls)와 함께 칸트의 철학을 법학적으로 계승한 가장 유명한 법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이들이 2008년도의 한국에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국민이 법원이 내놓는 판결과 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실증주의자들은 ‘악법도 법이다’라며 실정법의 정확한 이해만을 고집하고 법현실주의자들은 ‘법은 결국 정치이다’라고 하며 권력을 쟁취하는데 몰두하고 있을 때 국민들은 법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이들 삼총사는 ‘법은 도덕적 원칙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도덕적 원칙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국민들이 법을 두려워하지도 도구로 보지도 않으면서 법을 자발적으로 경외하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한다.
하버마스는 ‘이상적인 대화의 원칙(discourse principle)’으로, 롤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의 가정으로, 드워킨은 ‘정합성(integrity)’등의 절차적 원칙들은 모두 칸트가 순수이성의 작용을 통해 도출했다고 주장하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대응되는 것들이다. 즉 법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으로 만드는 절차적인 요건들을 제시한 것이다. 이중에서도 유일하게 변호사이기도 한 드워킨은 자신의 법철학을 실제 법률문제를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데 바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의 법철학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여 서스펜스를 망치기 보다는 드워킨이 고안한 매혹적인 개념들의 쌍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드워킨은 낙태를 반대하는 근거에 대해 생각할 때 태아 생명의 독립적인 가치(detached value)와 파생적인 가치(derivative value)를 구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독립적인 가치는 태아의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파생적인 가치는 태아가 살 권리가 있으므로, 즉 권리의 주체이므로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독립적인 가치와 파생적인 가치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국가가 특정한 예술품이나 역사유적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파괴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파괴행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그 예술품이나 유적 자체가 가진 독립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유재산이라도 이를 훼손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 재산이 독립적인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훼손행위가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며 소유자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동물이라면 우리는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워킨은 현재 낙태에 대한 논란은 태아의 생명이 가진 파생적인 가치에 천착하면서 불필요한 극한대립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그럼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 드워킨은 안락사에 대해서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에 대해 생각할 때 결단적 이익(critical interests)와 향유적 이익(experiential interests)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이익의 차이는 드워킨의 저술시점 이후에 나온 영화인 매트릭스(Matrix)를 예로 들면 설명하기 쉽다. 그 영화에서 저항군들은 향유적 이익의 측면에서 보자면 매트릭스 속에 갇혀 기계가 제시하는 경험들을 향유하며 사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저항군들이 향유적 측면에서 최선의 이익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결단적 이익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단적 이익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진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란다는 면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 결단적 이익이 안락사에서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소설과 영화에 대한 그리고 거기 등장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필자가 현재 우리말로 번역 중에 있고 <생명의 영역>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곧 서점에서 판매될 것이고 아름답지만 힘있는 영어 문구들의 예시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Vintage Press의 원서를 사 볼 것을 권한다.(박경신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08.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