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천정환의 <대중지성의 시대>(푸른역사, 2008)를 손에 들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이는 요즘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였다. 이 익명의 지식인이야말로 '대중지성'의 가장 전범이 아닌가 싶어서다. 물론 이때 미네르바는 한 개인이 아니다. 미네르바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국가기관까지 동원되었다고 하지만 존재하는 건 미네르바'들' 아닌가? 그런 생각에서 공감하며 읽은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미네르바'란 기호는 2008년 가을의 한국사회를 가리키는 지표로서 기억됨 직하다). 

시사IN(08. 11. 19) 미네르바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1848년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며 들머리로 사용했던 말이다. 저 유명한 문장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의 풍경을 얘기하는 데 가장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렇게 적을 수 있으리라.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미네르바라는 유령이.” 정보당국과 경제수장, 청와대 관계자는 이 유령의 입을 막기 위해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미네르바’란 다음(DAUM) 아고라에 경제 관련 글을 쓰며 유명해진 논객의 필명이다. 스스로 ‘고구마나 파는 늙은이’로 칭한 것 외에, 지난주까지만 해도 미네르바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실체 없는 유령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그(녀)의 글은 거칠고 요령이 없으며 자칫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령의 ‘수상한’ 글은 누리꾼의 지지를 전폭 얻었고, 미네르바는 ‘사이버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른다. 그(녀)가 쓴 글은 각종 게시판에 퍼 날라졌으며, 글에 거론된 경제학 서적은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미네르바 추천 도서전’과 같은 형식으로 유명해져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한 카페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인 누리꾼이 그(녀)의 글을 책으로 묶어 원하는 이들에게 제작비 정도의 비용만 받고 보내준다.

급기야 11월11일, 정보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미네르바는 ‘50대 초반의 나이, 증권사에 다녔으며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라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최근 미네르바가 아고라에서 활동을 중단하자 정부와 청와대는 그에 대해 손을 대지 않기로 했지만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고 판단할 경우 적극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이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리라는 예상을 비롯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부동산 거품, 주식 폭락 등을 예측한 그를 손봐주기 전에, 신문이나 <100분 토론> 등에 나와 장밋빛 전망을 떠들어댄 관료와 애널리스트부터 손봐주어야 할 것이다”라거나 “대다수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미네르바의 정체가 아니라,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음에도 사생활 보호라는 미명 아래 공개되지 않은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명단이라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좋겠다”라는 어느 누리꾼의 말은, “겨우 몇 개의 글로 위기감을 느끼는” 우리 정부의 딱한 오늘을 잘 보여준다. 한편 미네르바는 기사가 나오기 일주일 전인 11월4일부터 글쓰기를 중단한 상태다.(김홍민_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프레시안(08. 11. 21) "문제는 메시지다, 이 바보야!"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 이슈메이커는 바로 익명의 누리꾼 미네르바다. 미국발 금융 위기를 족집게처럼 맞춰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을 이유로 절필을 선언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절필을 선언한 후에도 TV, 신문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은 그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다.

진보, 보수를 가릴 것 없이 각 언론사마다 ''미네르바의 정체''를 밝히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미네르바가 올린 글의 IP를 추적한 후, 자신의 블로그에 "미네르바는 1971년생으로 야구, 렉서스를 좋아하는 남성"이라는 추측을 했다. 한 진보 성향 언론사는 기자에게 "미네르바를 찾아 ''정기 기고''를 청탁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아> 12월호에 절필을 선언한 미네르바의 장문 기고가 실리면서 ''미네르바 신드롬''은 극에 달한 듯하다. 이번 <신동아> 기고는 미네르바가 제3자를 통해서 먼저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눈치를 보는 사주의 방침과 정반대의 기고가 <신동아>에 실린 까닭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네르바가 <신동아>를 선택한 것은 훌륭한 판단이었다. 긴 분량의 기고를 가감 없이 실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친정부 성향의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오프라인 잡지를 선택함으로써 ''반정부 성향의 인터넷 논객''의 이미지도 상쇄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의 기고는 곧바로 온갖 매체로 옮겨져 수많은 시민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었다.

갈 데까지 간 미네르바 신드롬
<신동아> 기고를 끝으로 미네르바는 절필을 선언했지만, 정작 미네르바 신드롬은 더 불이 붙었다. 20일 오전 언론이 서화숙 <한국일보> 편집위원의 ''패러디'' 칼럼을 놓고 벌인 해프닝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서 위원이 이명박 정부를 조롱하고자 언급한 ''미네르바 경제 관료 기용설''을 <조선일보>,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데일리서프라이즈> 등이 사실로 알고 인용 보도한 것.

심지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이날 오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미네르바를 경제 각료로 기용하겠다는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히라"는 논평을 냈다가 황급히 취소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서화숙 위원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사회의 독해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찼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지극히 비이성적이다. 물론 미네르바가 등장부터 퇴장까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한 요소를 두루 갖춘 것은 사실이다. "그는 대중이 불안해 할 때, 갑자기 ''메시아''처럼 등장해 현실과 부합하는 진단과 대안을 내놓다, 권력의 탄압을 못 이겨 퇴장했다."(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러나 정부, 언론이 혈안이 돼 미네르바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호들갑을 떠는 상황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정부, 언론이 미네르바 신드롬을 부추길수록 정작 대중은 더욱더 미네르바에게 쏠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작 미네르바가 한국 경제를 위해서 쏟아냈던 수많은 고언은 사라지고 없다.

미네르바 신드롬, 누가 만들었나?
그렇다. 지금 정부, 언론은 미네르바의 진단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 취할 대목은 취해서 그가 그토록 걱정하는 파국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네르바가 누구인가, 이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차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행태야말로 미네르바의 충정을 무시하는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면 그의 경고를 듣고서도 대비를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네르바를 만들어낸 당사자는 바로 정부, 언론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미네르바 신드롬을 놓고 이렇게 평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전 국민이 알 수밖에 없는 걸 정부가 자꾸 숨기다보니, 이런 신드롬이 생긴 것이다. 정부가 제2, 3의 미네르바의 등장을 막으려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 대신 솔직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사석에서 정부에 몸담고 있는 공무원, 전문가를 만나면 모두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 알고 있다. 그렇게 정책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으니 미네르바가 대신 그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현실을 모르고, 공무원·전문가는 침묵하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생겨난 현상이 바로 미네르바 신드롬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미네르바 신드롬이야말로 위기에 취약한 한국의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단적인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네르바는 없다
이제 미네르바는 없다. 이제 우리는 미네르바 대신 다른 미네르바''들''이 필요하다. 익명이 아닌 실명의 미네르바''들''이 공적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때 바로 시민은 미네르바 대신 정부, 언론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당당히 자신의 실명을 밝히는 미네르바''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채은하 기자)

0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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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1 14:07   좋아요 0 | URL
이번 신동아를 읽어야겠군요.그런데 미네르바 같은 이를 대상으로 정부 고위관료가 직접 나서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건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면에서도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는군요.여하튼 현정부의 이념적 경직성은 지나쳐서 자기 점수만 깎아먹고 있습니다.

로쟈 2008-11-21 22:14   좋아요 0 | URL
'이념적 경직성'이란 것도 과대평가 같은데요. 그냥 '무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탐욕적인...

2008-11-24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24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