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케리아트'란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일본에서는 유행어인 듯하다). 불안을 뜻하는 영어의 ‘프리케리스’(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다(분류하자면 나도 프리케리아트로군). 아래 박혜영 교수의 칼럼에서 이 단어의 의미와 '프리케리아트 시대'의 배경에 대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최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는 올해의 대표 키워드를 '자기치유'라고 발표했는데, '희망 잃은 사회' 내지는 '희망 빼앗는 사회'로 내몰린 대중(프리케리아트)의 불가피한 독서 성향으로도 읽힌다. 그 '자기치유'로 우리는 과연 '치유'받을 수 있을까?.. 

교수신문(08. 11. 10) 藤田省三과 땅끝에 선 사람들

지금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은 불안감이다. 경제만은 반드시 살리겠다는 대통령후보에게 다른 자질은 전혀 묻지 않고 몰표를 몰아준 이유는 이 불안감 때문이었다. 경제지상주의와 무한생존경쟁시대를 맞아 한번 밀려나면 끝이라는 사람들의 극사실주의적 현실의식이 결국 떠받쳐준 당선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직장이 있어도 불안하고 없어도 불안하다. 건강해도 불안하고 건강하지 못해도 불안하며, 성공해도 불안하고 성공하지 못해도 불안하다.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스승도 없이 각자 돈벌이에만 올인하는 끝없는 경쟁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윤리나 미학은 대학교양과목으로도 팔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예의나 관심은 애완동물에 대한 배려에도 못 미칠 지경이다. 돈이 없으면 더 이상 삶도 없다는 것이 우리시대의 깨달음이 됐고, 투기와 사기는 이런 불안한 시대의 강을 건널 유일한 방법이 돼 버렸다. 치고 빠지는 기술이 최고의 삶의 기술(art of living)이 되고, 불안을 먹고 자라는 보험산업, 펀드산업, 오락산업, 노름산업 등이 최고의 돈벌이 산업으로 떠올랐다. 



우리시대의 불안은 과학지식이 없던 시절 인류가 자연과 우주에  막연히 느꼈던 신비적 두려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우리시대의 불안은 자본주의 초기에 등장한 프롤레타리아들의 계급적 두려움과도 다르다. 단결할 노조조차 없고, 계급적 당파성조차 모호한 무한계약직, 혹은 임시비정규직이 모든 경제분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등장한 ‘프리케리아트’(precariat)란 말은 불안을 뜻하는 영어의 ‘프리케리스’(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에서 나왔다. 이 말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널리 퍼진 일시적, 유동적, 간헐적, 비공식적 노동조건의 확산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정신적, 정서적 불안이 이들의 전반적인 삶의 조건이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프리케리아트는 우리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등장한 전혀 새로운 세대이며, 초국적 후기산업자본주의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전의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전방위적인 자본의 공격에 노출돼 있지만 사람들은 단결할 계급의식조차 형성하지 못한 채 더욱 파편화되고 말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공포로 위기상황은 일상화됐지만,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오직 혼자서만 분투하다 절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진정으로 세계화하는데 성공한 것은 지금 확산일로에 있는 이 프리케리아트들인지 모른다. 



원래 ‘프리케리어스’는 ‘기도에 의해 얻어지는’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 이 말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 위험에 대한 민중의 인식과 동시에 그런 삶의 불확실성을 오직 신의 은총에 의지해 순정의 기도로 이겨내려는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지금의 프리케리아트는 원래의 종교적 실존의식과는 무관한 채 오직 경제적으로 끝없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에 시달리며 불안해하는 우리시대의 모든 약자들을 뜻한다. 이런 사회에서의 삶의 평화란 경제적 성공으로만 보장될 수밖에 없다. 즉 팍스 에코노미카(pax economica)가 만들어낼 안락에의 평화이다.

일본의 현대문명사상가인 후지따 쇼오조오는 「안락을 향한 전체주의」라는 글에서 억제라고는 모르는 고도 기술사회의 정신적 기초가 바로 이 경제인간들의 안락에 대한 광적인 추구와 안락의 상실에 대한 초조한 불안이라면서, 이런 정신상태는 마침내 안락에 예속 되고, 따라서 사회는 안락을 향한 전체주의로 치닫게 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요즘은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기가 두렵다. 실직이나부도로 인한 사람들의 자살소식이 너무 많아서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자기 손을 떠났다고 느낄 때 절망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기도에 의지해서라도 그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디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토로했듯이 인간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찾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지금 우리세대는 강을 건널 배도 없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읽을 눈도 없이 그저 무작정 강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쇼오조오가 말한 이런 안락한 지상의 평화에서 내몰린 우리시대의 프리케리아트에게는 차라리 사람의 운명이 신의 은총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과거 희랍시대가 어쩌면 더 안전했다고 생각될지 모른다.(박혜영 인하대·영문학)


 
한겨레(08. 11. 14) 희망 빼앗는 사회 속 ‘자기치유 열풍’

경제경영서를 펴내는 한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최근 ‘멜라민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멜라민을 이용해 수많은 식품을 만드는 일을 줄곧 해 왔는데 갑자기 멜라민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니 앞이 노랗다는 이야기였다.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해 모든 기획을 진행해 왔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책 시장에서 신자유주의 철학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따라서 그동안 기획해 놓았던 책의 대부분을 폐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한다. 그러니 폐기해야 할 기획의 선인세를 크게 오른 환율로 당장 갚아야 하는 것부터가 난감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이 어디 그 출판사 대표뿐이겠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을 뽑아놓았지만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갈팡질팡하기만 해서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나마 내세우는 정책마다 모두 가진 자를 위한 것뿐이라 없는 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지난 10년간의 상실감을 정신분열적 정책으로 되갚는 듯하다. 그에 따른 이분법적 사고의 확산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의 확산,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양극화 심화, 고사상태로 빠져드는 문화시장, 해소되지 않는 청년실업, 심리적 불안으로 인한 자살자 증가 등으로 대중은 모든 희망을 접어야 할 상황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희망을 잃고 단지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상태다. 따라서 스스로 위안받는 자기치유(self-healing)를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중은 이미 ‘성공’을 포기한 지 오래고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사치일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것에 몰두한다. 이 자기치유가 2008년 출판시장을 상징한다. 대중은 이제 ‘물질’이나 ‘권력’의 획득도 포기하고 자신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만을 찾고 있다. 또 먼 미래보다는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크릿>(론다 번 외)의 ‘비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공지영)의 ‘응원’, <하악하악>(이외수)의 ‘거친 숨소리’, 아고라 광장에서의 치유로서의 글쓰기, <개밥바라기별>(황석영), <완득이>(김려령), <리버보이>(팀 보울러) 등 성장소설, 죽음과 자살을 다룬 책, 섬세하게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학 서적 등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올해 출판시장에서 자기치유가 거대한 흐름을 이뤘음을 방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을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정말 우리는 아무것에도 희망을 걸기 어렵다. 개인에게는 국가나 사회, 나아가 가족 등 거의 모든 울타리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오로지 스스로 위로하며 절망감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출판시장에서는 자기치유의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 것으로 보인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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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11-16 21:02   좋아요 0 | URL
공감하지만.. 아래 허연의 시집을 선택하겠어요!! ^^ 내 치유는 그를 통하여.

로쟈 2008-11-16 21:17   좋아요 0 | URL
"가난한 사람이 음식 앞에서 수줍어하는 것처럼 나는 오늘 눈물 앞에서 수줍어합니다." 아무데나 펼쳐서 읽은 구절입니다. '치유'에 도움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