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노벨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노르웨이 정부가 주관하는 홀베르상이 그것이란다. 처음 듣는 상인데, 상금이 자그만치 10억이 넘는다고 하니 '노벨상' 맞는 듯싶다(상금은 더 많은 것 아닌가?). 2003년에 제정됐다고 하니 나만 과문한 건 아니겠다. 이미 줄리아 크리스테바, 위르겐 하버마스, 쉬무엘 아이젠스타트, 로널드 드워킨 등이 수상을 했고, 올해 수상자가 미국의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이라고 한다. '연로한' 제임슨의 근황 소식도 겸하고 있어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11. 14) "세계문학은 보편 가치를 좇는 공간 아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74)이 노르웨이 정부가 주관하는 홀베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제임슨은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듀크대에서 10일 오후(현지시각) 수상 기념 강연을 했다. 듀크대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영문학자 신명아 교수(경희대)가 직접 강연을 듣고 글을 보내왔다.

11월26일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의 저자인 미국의 좌파지식인 프레드릭 제임슨이 78만달러(10억6천만원 가량)의 상금이 수여되는 홀베르상을 수상한다. 제임슨과 더불어 미국의 좌파 문화이론을 선도하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생산관계를 현대판 노동자인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제국>을 네그리와 함께 쓴 마이클 하트는 <한겨레> 독자를 위해 이 수상이 “문학과 문화분석을 위한 마르크스주의의 가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지난 10일 듀크대는 ‘세계문학은 외국 사무소를 가지는가?’라는 제임슨의 기념 강연과 저명한 작가, 인문학자들의 축하 논평으로 이 수상을 축하했다. 제임슨은 “각각 다른 국가의 비평가들과 사고가들의 관계망”으로서의 세계문학은 독일 작가 괴테가 영국 시인 바이런의 텍스트를 읽는 2자적 관계가 아니라 양쪽 독자(작가)들이 양쪽 나라의 역사적·국가적 상황에 매개되어 쌍방의 텍스트를, 저항이든 수용이든, 자신의 국가적 상황과 관계하여 접근하는 “(각 나라의) 역사들과 구체적 역사적 상황들 사이의 복잡한 접촉”의 장으로서 4자적 관계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제임슨은 작품이 자신의 고유 형태와 그 바깥(역사, 사회)의 변증법적 산물이듯이, 현대사회는 국가를 무화시키기는커녕 전지구적 자본의 유동성을 위해 국가의 이름으로 주체들의 임금이나 권리를 희생하는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를 가진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문학은 “국가적 산물의 관계이자… 투쟁, 경쟁 및 대립의 장이자 공간”으로서 “고전들의 (죽은 것을 위한) 신전이나 ‘상상적인 박물관’이 아니라 각 차이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어떻게 국가성이 보편화되고, 전지구적 복수성이 중심이 없이 생각되어질 수 있는가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다른 이름”임을 지적한다.

제임슨은 “가치는 역사적이다”라는 신념 아래 세계문학은 보편적 가치의 추구가 아니라 “급진적 차이와 대립은 물론이거니와 또한 불균등한 정전성”이 허용되고 보편과 개체성의 변증법적 양가성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제임슨은 자신의 이번 수상은 헤게모니적 유럽 중심 기관으로부터의 수상이 아니라 비헤게모니 국가로부터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중심이 없는 세계문학’의 의미가 특히 부각된다고 보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는 특히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 독자들의 문학적 고립성을 지적하면서, 세계문학은 어린 아이가 자기 나라의 문학이 아닌 다른 세계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그런 순수한 감각으로 다양한 지역과 물질성에 기초한 이야기들이 세계인에 의해 서로 애호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라틴 계열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라틴 작가 카르펜티에와 미구엘 아스투리아스가 파리에서 유럽과의 마찰로 더 고유한 문학을 창출해낼 수 있듯이, 각 문화의 산물은 시장을 통해 원심력적으로 혹은 구심력적으로 왔다갔다 하며 자신의 문학을 창조적으로 교환하고 생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임슨의 홀베르상 수상은 우리 사회의 진보지식인에 대한 냉소적 시각에 균형을 가져다 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백낙청 교수가 수상식 전날 같은 곳에서 개최되는 홀베르상 학술대회에서 페리 앤더슨 같은 5명의 저명한 학자들의 일원으로 논문을 발표한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서 우리 학계의 세계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우리 지식인들과 문학인들이 자기 고유의 국가적 상황에 기초한 텍스트를 창조하면서 전지구적 복수성의 일원으로서 세계문학의 무대에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신명아/경희대 교수 영문학)

■ 홀베르상은

2003년 노르웨이 국회에서 작가 홀베르(1684~1754)의 이름으로 제정된 이후 줄리아 크리스테바, 위르겐 하버마스, 쉬무엘 아이젠스타트, 로널드 드워킨 같은 세계적 석학들에게 수여된 상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진다.

08. 11. 13.

P.S. 주저인 <정치적 무의식>이나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형편인지라 제임슨에 대해서 따로 뭘 기대한다는 건 사치에 불과하겠지만, 그의 신작 가운데 SF문학을 다룬 <미래의 고고학>(2007)이나 출간예정작인 <변증법의 가치>(2009) 등은 소개되면 좋겠다. '노벨상' 수상 이론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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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14 13:28   좋아요 0 | URL
20대 30대 인문학 연구자들,특히 문학이론 연구자들이 요즘도 제임슨을 많이 읽나요?

로쟈 2008-11-14 22:47   좋아요 0 | URL
제가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편이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대학원 강의실에서는 더러 읽히는 것 같습니다...

책사랑 2008-11-15 05:39   좋아요 0 | URL
"미래의 고고학"은 현재 두 번역자에 의해(한 명은 제임슨 제자) 번역중에 있으며, "변증법의 가치"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로쟈 2008-11-15 16:44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소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