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북리뷰들을 둘러보다가 눈에 띈 기사를 옮겨놓는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출판인포럼에 참석차 내한한 일본의 한 원로 편집자의 인터뷰 기사다. 일본 출판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표적인 인문서적 출판사인 헤이본사의 대표편집국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출판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저렇게 안면을 튼 편집자들이 열명은 되고, 나 역시도 '편집간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서 그가 던지는 '위대한 편집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란 물음에 흥미를 느낀다. 대답은 간명하다. 읽는 것! 그가 참여했다는 '독서회'가 우리 출판계에도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한겨레(08. 11. 08) “위대한 편집자는 끝없는 독서가”

한국출판인회의가 창립 10돌을 맞아 기획한 세계출판인포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서울 세종호텔에 여장을 푼 류사와 다케시(63·사진) 전 헤이본(평범)사 대표편집국장의 손에는 노란 포스트잇 딱지들이 잔뜩 끼워진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정말 좋은 책이어서 두 번째 읽고 있다”는 그 책은 <조선전쟁의 사회사>,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쓴 <전쟁과 사회>의 일본어 번역본이다.

편집자는 무엇보다도 ‘읽는’ 존재다. 그밖에도 다양한 역할과 중요한 일이 편집업무에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편집의 진정한 핵심은 ‘읽는 것’이다. 그게 거의 대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쓴이가 하지 못하는 것, 글쓴이 이상으로 편집자에게 가능한 것, 그것은 읽는 것이고 정독하는 것이며 비평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편집이라는 끝이 없는 일의 출발점이 아닐까?”

이번 포럼에서 발표할 글의 주제인 ‘위대한 편집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대답을 그는 ‘읽는 것’,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전세계 출판인 50여명이 함께한 이번 포럼에는 출범 4년째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제7차 대회의 확대판으로 세계편집자포럼도 함께 열렸다.

게이오대학 경제학부에서 사상사를 전공한 그가 일본의 대표적 인문서적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헤이본사에 입사한 건 1968년. 신출내기 편집자 시절부터 담당했던 대표적 혁신계 사회과학자요 인문학자인 후지타 쇼조(5년 전 작고)를 따라 대여섯명 규모의 독서회에 참가했다. 고전학자 사이고 노부쓰나와 함께한 또다른 독서회는 그가 지난 1월 타계할 때까지 37년간이나 계속했다.

일본 고전과 구미의 고전 중에서 번역되지 않은 문학이론이나 역사이론서들을 “한 줄 한 줄 소리내어 가며 매우 엄밀하게 읽었던” 독서회는 매월 1회 일요일 오후에 6시간씩이나 이어졌다. “매번 준비하고 사전조사를 하는 게 몹시 힘들어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직무상의 일과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라 여겼고, 거기서 읽는 일의 즐거움과 깊이를 느꼈다. “30여년이나 계속된 독서회는 아마 드물겠지만, 헤이본사 내에도 독서회가 여럿 있었을 정도로 일본 출판계엔 70년대까지는 그런 모임이 상당히 많았다. 그게 일본 출판계 힘의 원천이었다.”

2000년까지 32년간 헤이본에 근무하면서 8년간 편집일 전체를 총괄하는 이사로서 대표편집국장직을 맡았고 방대한 백과사전의 디지털화라는 선구적 작업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충실한 ‘읽기’가 바탕이 됐나 보다. 근대 일본의 발전은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이에 조응한 방대한 서책(書物) 발간의 상호 상승작용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그는 말했다.

“1960~80년대까지만 해도 이와나미 신서의 권당 10만부 판매 여부가 성패의 척도가 될 정도로 책이 많이 읽혔다. 대형 출판사들은 매년 대졸자들을 5~6명씩 뽑았고 그들의 월급은 일반 대기업 사원들보다도 월등 높았다. 그들은 최고급 지식인들이었으며 유명작가들도 편집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조락의 기미가 보이더니 90년대 들어서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와나미, 주오고론, 고단샤에서만 나왔던 신서들도 여기저기서 출판됐으나 비슷한 기획들로 차별성이 없어졌으며, 그나마 괜찮다는 이와나미 신서 초판이 1만여부 판매 수준으로 졸아들 정도로 기운은 쇠락했다. 탈활자화가 무섭게 진행됐다. “2000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신문연구소의 후신)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신문 읽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5% 정도가 손을 들었다. 호세이(법정)대 강의 때도 매년 그렇게 물었는데 손 든 사람은 3~5%밖에 되지 않았다.”

편집자들도 여유가 없어졌다. “예전엔 편집자 한 사람이 연간 6~8권의 단행본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그때의 2배인 10여 권이나 된다.” 부수가 적더라도 수십년 이상 꾸준히 읽히면서 영향력이 지속되는 좋은 책이,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지라도 단기간에 그 영향력이 끝나버리는 매체나 책보다 훨씬 더 낫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편집자를 소모품처럼 취급해서는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

독서행위 자체를 지식과 사람들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공동행위’로 파악하는 그는 과잉 시장화·상품화가 부른 출판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공동전선’을 결성해 반지성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은 공동전선이 필요한 것이다.

1년에 3~4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독재체제 아래서 한국 젊은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 해적판을 구해 읽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한 놀라운 사실에서, 만든 이들의 손을 떠난 순간 읽는 이의 것이 돼버리는 책의 엄청난 침투력을 새삼 실감했다”고도 했다.(한승동 선임기자)

08. 11. 07.

P.S. 독서행위 자체가 지식과 사람들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공동행위’라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일종의 '독서 코뮤니즘' 아닌가? 음미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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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8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8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량 2008-11-08 10:53   좋아요 0 | URL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의 표지가 참 인상적입니다. 찾아보니 국내 디자인 팀의 작업이네요. 이래저래 책은 영물인가 봐요. 덕분에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8-11-08 16:42   좋아요 0 | URL
책만한 물건도 드물죠.^^;

노이에자이트 2008-11-08 15:43   좋아요 0 | URL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엔 정말 재미있는 일화가 많아요.소련 지식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구요,칼 쇼르스케가 일본 방문한 이야기도 있어요.한때 일본에 함스부르크 황혼기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로쟈 2008-11-08 16:4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08 15:49   좋아요 0 | URL
독서회에 모여서 저렇게 책을 읽는군요.정말 대단한 직업의식입니다.

로쟈 2008-11-08 16:42   좋아요 0 | URL
저런 모습이 '스탠다드'라면 좋을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1-08 17:33   좋아요 0 | URL
저도 80년대의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번역본들을 90년대부터 헌책방에서 꽤 사모았죠.지금도 도움이 많이 된답니다.그리고 광주의 모 도서관에는 아사하라 쇼코(오옴 진리교 교주)의 저서<최후의 해탈자>도 있답니다.이 이야기를 광주사는 일본 남성에게 했더니 와...한국 대단하다고 하더라구요.

로쟈 2008-11-08 19:51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어지간한 대학도서관에도 없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1-09 15:44   좋아요 0 | URL
아사하라 쇼코가 광주에 오옴 진리교 한국지부를 두려고 그랬을까요.

로쟈 2008-11-09 20:52   좋아요 0 | URL
ㅎㅎ 광주 분위기가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