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자주 눈에 띈다 싶었지만 '대박'이 난 줄은 모르고 있었다. <잉글리시 리스타트>(뉴런, 2008) 시리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껏해야 나의 관심은 저명한 문학비평가 'I. A. 리처즈'의 이름을 이제 사람들은 <잉글리시 리스타트>의 저자로 기억하겠구나 정도였는데, 한겨레21의 '베스트셀러 워스트리더' 꼭지를 읽어보니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무시무시한' 영어 욕망일 것인가! 알고보면, 원제가 <그림으로 보는 영어>이고 한번 나왔던 책이 다시 나온 것이다. 아마도 올해의 가장 '기이한'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싶다(출판사회학의 연구대상이다)...

한겨레21(08. 10. 31) ‘무시무시한’ 영어 욕망

신기한 물건 하나가 등장했다. 원래 있던 겉표지를 어디에 두고 온 듯한 노란색·파란색·초록색의 단순명료한 디자인, 한글 제목은 귀퉁이에 둔 과감함, 우유 한 갑 무게도 안 되는 가벼운 종이, 듣기용 MP3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1만원이 안 되는 가격…. 가벼운 책이 무겁게 베스트셀러를 가격했다. <잉글리시 리스타트>(I. A. 리처즈·크리스틴 깁슨 공저, 뉴런 펴냄)가 터졌다.

<잉글리시 리스타트>의 ‘BASIC’편은 발간(7월2일) 한 달 만인 8월2일 인터넷서점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9월4일에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다. ‘어학’ 부문이 아니다. 종합베스트셀러다. 이후 연속 7주 종합 1위를 지키고 있다. 10월 둘쨋주 교보문고에는 ‘ADVANCED1(스피킹편)’이 종합 2위, ‘ADVANCED2(리딩편)’가 종합 6위에 올라 있다. 편집부에서 전하는 판매부수는 30만 부(인쇄는 35만 부). 첫 쇄는 3천 부를 찍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영어 교재’가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지음, 사회평론 펴냄)의 2000년 2~4월 총 9주, <해커스 토익>의 2006년 7월 첫째·둘쨋주 총 2주가 있었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가 ‘학습법’에 관한 것이라면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본격 영어 교재’를 표방한다. <해커스 토익>의 베스트셀러 등극이 대학 여름방학 초기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토익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머리를 동여맸음을 보여준다면,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한국 일반인들이 영어 공부를 하려는 욕구가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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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낸 뉴런은 ‘전략적’으로 가볍게 만들었다. 홍은숙 대표는 영어 원제인 ‘그림으로 보는 영어’(English through Pictures)를, 타깃을 명확히 가다듬으면서 ‘리스타트’로 바꾸었다. 1997년 <그림으로 보는 영어>(창문사)로 국내에서 한 번 나왔다가 사라진 타이틀이 일신한 것이다. 그리고 카페를 통해 학습그룹을 조직했다. 카페 가입자는 현재 6만4천 명을 헤아린다.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앞부분 ‘학습법’과 ‘소감’을 덧붙인 글을 제외하고는 시작되는 첫 장부터 해답까지 모두 영어와 그림으로 돼 있다. ‘I’와 ‘YOU’로 시작한다. 단어 아래 철사로 만들어진 단순한 남자가 자신을 가리키고 상대방을 가리킨다. 장이 끝나면 연습문제가 있다. 책을 딱 반으로 나눠서 뒷부분은 연습문제로 이뤄진 ‘워크북’이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일반인이 몽땅 영어로 된 한 권의 책을 읽어내려간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한 경험일 것”이라고 말했다.

책 표지엔 제목보다 크게 ‘영어 한 달만 다시 해봐’라고 쓰여 있다. 능률영어사 대표인 이찬승씨는 “영어 공부에 손을 놓았던 일반인들이 책을 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영어를 할 필요도 없고 생각도 없던 사람들이 요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어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능률영어사 홈페이지에는 65살 할머니가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영어를 배우는 사연을 적어놓기도 하고, ‘발음을 배우고 싶다’고 문의를 해오기도 하는데, “옛날에 없던 분위기”다. 이명박 정권의 ‘영어 몰입’도 한몫했고, 해외여행이 많아지는 환경도 더해졌을 것이다.

이 폭발은 일반인들에게 ‘영어에 대한 욕구’가 무시무시하게 잠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영어 학습 시장은 점점 분화돼왔다. 쓰기, 말하기, 읽기, 단어, 문법 등. 이런 조류는 영어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이들을 위한 시장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학습서 시장이 존재해오긴 했지만 미미하다.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이런 조류를 역행한다. ‘영어 공부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어 교재 시장의 여집합 ‘영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공략했다. 그 부분은 ‘영어 공부 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방대한 시장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의 여건 또한 완성된다. 베스트셀러의 기본 조건은 ‘누구나 집어든다’이다. 그런 면에서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본격’ 영어 교재를 표방하긴 하지만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일반인이 보는 영어책’이라는 욕구와 비슷하다. <잉글리시 리스타트>의 키워드는 ‘제너럴’이다. 영어책을 겨냥하고 있지만 핵심은 ‘누구나’다. 아주 특수한 분야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키워드는 ‘일반인 독자’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영어 학습은 효과가 있을까. 이찬승씨는 지금 아무런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검증된 건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수천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에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까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은 어쨌든 책이다. 책은 단순 지식이지 사용과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영어교재’이다. 머리말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문구도 나온다. 출판사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원서에 나온 말을 옮겼다고 한다. 10월23일 현재 미국 ‘아마존닷컴’의 이 책 순위는 ‘26만2788’. 2005년판인데 ‘템포러리 아웃오브 스톡’(일시 품절)이다. 원서의 출판연도는 1945년, 성경 이후로 가장 오래된 영어교재인지도 모르겠다.(구둘래 기자)

08. 11. 02.

P.S. 이미 적은 대로 <잉글리시 리스타트>에 대한 나의 반응은 'I. A. 리처즈'(보통 그렇게 읽었다)가 이런 책도 썼나 하는 것이었다('썼다'기보다는 '만들었다'는 게 맞겠지만). 이 저명한 신비평가의 책으로 현재 구할 수 있는 건 <문학비평의 원리>(동인, 2005)와 <수사학의 철학>(고려대출판부, 2001)이 있다. 모두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문학비평의 원리>는 예전에 <문예비평의 원리>(현암사, 1981)로 출간된 적이 있고, 내가 갖고 있는 것도 이 현암사판이다.

리처즈의 책으론 고전인 <시와 과학>(을유문화사, 1947)이 고 이양하 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적도 있다(저자가 'I. A. 리차아드'로 표기됐다). 그리고 또 하나 C. K. 오그든과의 공저 <의미의 의미>(현암사, 1987; 한신문화사, 1990)도 예전엔 많이 읽히던 책이다. 물론 독자는 주로 어문학 전공자들이었지만...

영미비평사 3 - 뉴 크리티시즘 : 복합성의 시학

미국의 신비평(뉴크리티시즘) 얘기가 나온 김에 정평있던 연구서도 적어두도록 한다. 영문학자 이상섭 교수의 <복합성의 시학: 뉴크리티시즘 연구>(민음사, 1987)가 그것인데, 나중에 <영미비평사3 - 뉴크리티시즘: 복합성의 시학>(민음사, 1996)이라고 재출간됐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듯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책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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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0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자가 문학비평가로군요.몰랐네요.

로쟈 2008-11-03 22:22   좋아요 0 | URL
네, 나름 저명한 비평가이면서 대학 영문학과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틀을 마련한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