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서 김영명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한국에 한국 경제학자가 있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2370604)란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에 한국 정치학이 있는가?'란 물음도 가능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문의 정체성'이란 화두가 꽤 오래전 '유행'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껏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이는 현실은 이래저래 씁쓸하다. 가을 탓만은 아닐 것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국일보(08. 10. 29) [김영명 칼럼/10월 29일] 짝퉁 장사

"4ㆍ19 이후 50년 동안 서울대가 한 일이라곤 반역사적이고 비도덕적인 엉터리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를 하거나 외국 이론을 들여와 '짝퉁 장사'를 한 것밖에 없다." 김지하 씨가 서울대 세미나에서 한 발언(한국일보 10월 10일자)이다(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10/h2008101003005722020.htm).

아직 요원한 학문의 정체성 확립
동감이다. 글쓴이도 꽤 오래 전부터 한국 지성계의 짝퉁 장사를 비판해 왔고, 자기 나름대로 대안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김지하 씨는 자신이 모색하는 생명사상을 학계에서 알아주지 않아 섭섭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는 유명인사이니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내가 <신한국론>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단일사회론'은 아는 사람조차 없다.

그런데 실상 우리 학문의 정체성을 찾자는 소리는 옛날부터 있었다. 철학자 박종홍(朴鍾鴻ㆍ1903~1976) 선생이 젊었을 적인 1933년에 이미 그런 말을 하였다. 그 뒤 75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무것도 없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말은 하는 사람들이 좀 늘었다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서양 중심주의 고발, 탈식민성 모색 등의 담론들은 무성하다. 쉽게 말하여 "이런저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렇게 해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드물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왜 그럴까? 답은 위 김지하 씨의 말에 다 나와 있다. 권력과 명성과 지위에 도움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것을 옮기지 않으면, 다시 말해 짝퉁 장사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장악하고 있는 지식 권력에서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탈식민성 모색'이라는 담론 자체가 탈식민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식민적'인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김지하 씨의 생명사상이 한국에서 힘을 얻으려면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먼저 알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한국인들이 그게 좋은 것인가 보다 하고 관심을 쏟을 것이다. 그래서 김지하 씨도 글을 영어로 써야 한다, 이렇게 되나?

학문의 식민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학자들이 비겁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무능해서 그렇기도 하다. 남의 것을 베끼거나 옮기지 않고 자기 것을 만드는 일은 원래 어려운 법이다. 자기 이론이나 철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분석틀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어렵게 만들어놓은 분석틀을 미국 사람 것이 아니라고, 또 주류 학계의 것이 아니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더더욱 힘은 빠지게 되어 있다.

또 다른 까닭은 능력에 비해 턱없이 눈만 높아졌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치밀한 미국 이론들을 보니 이에 필적할 만한 자기 이론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나의 분석틀도 이런 점에서는 유치한 수준인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만들어 놓으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다듬고 덧붙이고 하는 일을 하면 된다. 아무도 시작을 하려 하지 않으니 우리 것이 나올 리가 없다.



자기 것ㆍ우리 것 모색 실행해야
우리 것을 만들자고 하는 말을 지금 있는 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무슨 대단한 이론을 만들자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외국 학문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속에서나마 우리 것을 가미해 볼 수도 있다.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것이 조금씩 나올 수 있다. 정치학자인 글쓴이는 외국 사람에게 내놓을 만한 '한국 정치학'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다. 다른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런 모든 말들이 다 부질없다.(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08. 10. 29.

P.S. 우리 이론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다면 외국의 이론이라도 한국적 현실에 제대로 적용하고 활용하는 일이 차선책은 되지 않을까 싶다. 강준만 교수의 신간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 때문에 든 생각이다. 책의 부제가 '지방자치.지방문화.지방언론의 정치학'이다. 한국 사회의 '지방'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강교수가 끌어오고 있는 것은 '내부 식민지' 이론이다.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것이다.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남미의 도시화를 ‘종속적 도시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남미의 도시 형태는 남미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잉여가치의 송출구 역할을 함으로써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 남미에서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 또는 ‘내적 식민지’ 이론이 대두되었다. ‘제4의 식민지(the 4th colony)’ 또는 ‘식민지 속의 식민지(colonies within colonies)’라고도 한다.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록 내부식민지론이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저자는 그것이 지금의 지방문제를 들여다보는 데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적용이 이론의 보강/강화로 나타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이론적 시야를 확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학문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한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좀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