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현실에 어두운 한국의 경제학자들 얘기를 옮겨놓고 보니 조금이라도 위안거리가 없을까 찾게 된다. 마침 지난주에 출간된 송기호 변호사의 책 <곱창을 위한 변론>(프레시안북, 2008)에 눈길이 간다. 저자는 알다시피 지난 촛볼 정국 때 가장 돋보이는 활동을 펼친 바 있다. 프레시안에서는 우석훈씨의 발문을 옮겨놓았는데, 그걸 스크랩해놓는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1026155813). 생각해보니 곱창 전골을 먹어본 지도 오래됐다. 오늘처럼 좀 쌀쌀한 날씨엔 딱 좋은데, 어쩌다가 그런 사소한 즐거움도 포기하게 되었는지...

프레시안(08. 10. 26) "송기호는, 대한민국의 '에이스'다"

송기호 변호사가 <곱창을 위한 변론>(프레시안북 펴냄)을 펴냈다. 송 변호사는 이 책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일방적으로 추종한 결과 우리의 농업, 먹을거리가 얼마나 위기에 처했는지를 고발한다. 송 변호사가 고군분투하며 막으려고 애를 썼던 한국 정부의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그 결과일 뿐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때 "가난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평화를 해치는 차별의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북돋는" 통상법이 가능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지난 촛불 집회는 이런 통상법을 향한 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줬다. 송 변호사가 이 책을 다음 이들에게 받치는 이유이다.
  
"이 책이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을 바로잡는 정당한 활동을 하다가 부상당하고 연행되고 수배되고 처벌받은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특히 2008년 9월 9일 서울 조계사 앞에서 회칼에 피습을 당하신 분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큰 충격을 받았을 가족에게도 깊은 위로를 드린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주저앉는 소의 도축을 완전히 금지하는 입법예고를 하는 데 이바지한 <PD수첩>에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 나는 허물 많은 신앙인의 한 사람이지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발문' 전문이다. <편집자>

송기호는, 나의 벗이다
  
나도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알거나 친구를 사귀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만 보자면, 직장 시절부터 나는 '친구'와 '적', 이렇게 두 부류만으로 주변이 구성된 듯한 삶을 산 것 같다. 현대, 에너지관리공단, 총리실, 이렇게 안정된 직장들에 다니던 시절에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나는 하극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나의 상사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예의는 갖추었지만 거침없이 얘기를 하는 편이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수많은 적과 아주 약간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대인기피증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깊은 교류를 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기가 무섭다. 좌파로 살아온 사람들은, 크든 작든 나와 유사한 대인기피증을 삶의 증표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녹색당 창당 운동을 포기한 채 더 이상 활동가가 아니던 시절, 그래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조금씩 가르치고 글을 쓰던 시절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두 번의 직업 활동가로서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유학 가기 직전,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다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또 황당한 정부를 만나서 "이건 도저히 아니다"라고 글을 쓴 걸 보면 나도 곱고 편하게 산 편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스무 살 넘어서 싸운 기억은 잘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 편에 담고, 되도록이면 명랑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또 웃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는 편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그렇게 내가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으로, 직업 활동가로 일종의 정치운동을 하던 시절에 국회 토론회장에서 내 앞의 발제자로 처음 만났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일부러 누가 짠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토론회의 발제자로 여러 번 나서게 되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정부에서 주관한 토론회에 역시 앞뒤 순서의 발제자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송기호는 한국이라는 땅에서 내가 등을 기대고 쉬는, 거의 유일한 벗이고 동지인 셈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법률적 분석까지 떠맡아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이것저것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송기호 덕분이다. 그는 유능하고, 진지하고, 꼼꼼하다. 이 세 가지 전부, 내가 갖추고 있지 못한 덕목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무능하고, 장난기와 짓궂음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덜렁덜렁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는 나와는 정반대의 인간형이고, 법학과 경제학 이 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와 내가 같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식품은 안전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이 살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점이다. 전혀 다른 조건에서, 전혀 다른 학문으로, 그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로 각각 진화해왔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그는 농업이라는 문으로 들어왔고, 나는 생태학이라는 문으로 들어왔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쌀나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울 내에서만 살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서울 밖에 나가본 완전 '서울 촌놈'이다.


  
우리 모두는 송기호에게 빚지고 있다

송기호의 눈은 언제나 농업에 가 있는데, 나는 솔직히 농민보다는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과 같이 소위 '농업 생태계'에 먼저 눈이 가고, 그 후에 농민들을 보는 편이다. 송기호의 눈은, 나와는 달리 농민들을 먼저 보고, 그 후에 농업을 보는 것 같다. 그 차이점은, 우리가 걸어왔던 다른 길만큼이나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생겨난 농산물들이 유통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넘어가는 식품안전이라는 단계에서, 나와 송기호는 서로 등을 대고 지난 정권을 버텨왔다. 노무현 정권은 한국에서 최초로 '농업 포기 정책'을 공식화시켰고, 그 정권 내내 나와 송기호는 "농업이 뭐 그리 중요하냐?"라는, '타칭 좌파'―한나라당이 그렇게 불렀다―혹은 '자칭 진보 세력'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으며, 그 포위를 끝끝내 뚫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정권이 바뀌었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시점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문제가 터지면서 우리 사회는 중요한 변곡점 하나를 넘었다. 그 변곡점의 최정점에 바로 송기호가 서 있었다. 그 유명한 <100분 토론>에서의 미국 농림부 서류의 오역 사건에서부터, 농림부 장관 고시의 오타 사건에 이르기까지 송기호가 집어낸 것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공화국의,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양아치들의 난장판 사건에 대한 거울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전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단단히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믿어라, 그리하면 쇠고기는 안전해질 것이다"라고 외치는 나라에 살고 있었다. 쇠고기는, 어쩌면 다가올 한국의 비극에 대한 예비자, 마치 예수와 세례 요한의 관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모래 위에 성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협상 문헌에 대한 엄밀한 검토는 고사하고, 원문 번역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믿어라, 국민들아!"를 말하는 현실. 이 우울한 현실은 송기호의 손에 의해 하나씩 벗겨져 나갔고, 그 진실이 발가벗고 우리 앞에 현실로 드러났을 때, 내가 협상가로 참여하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이것은 실수라기보다는 우리나라 행정 자체가 그렇고, 협상도 그렇고, 무엇보다 지금 진행되는 많은 정책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엄청난 파국 앞에 혼자 서 있던 사나이, 그가 바로 송기호였다. 그가 보여준 현실의 드라마는 위대한 문학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송기호는, 한국의 에이스다
  
한국이 거대한 야구단이라고 한다면, 좀 미안한 얘기지만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혹은 고려대학교 교수님들의 그룹은 2부 리그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학문적으로는 20~30년 전에 은퇴하였지만, 그래도 시민 야구단에서는 강속구를 뽐낼 수 있는, 그런 2부 리그이다. 그렇다면 공무원 집단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국 야구팀의 에이스는? 류현진이다. 그는 카스트로도 감탄할 정도로, 세계 최강의 쿠바팀에도 '지대로' 통하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다. 정말 감탄스러운 투수이다. 그렇다면 진짜 한국의 에이스는 누구인가? 노벨문학상에 도전하겠다는 시인 고은인가, 아니면 노벨평화상 후보에 거론된 적이 있는 시인 김지하인가? 아니면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엄청난 공로를 세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의 에이스인가? 아닌 듯싶다.
  
제대로 된 연봉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팀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혹은 관객들이 충분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올해 한국에서 위기의 한국을 구해내고 다음 번 등판을 위해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리고 가장 많은 등판을 기록한 투수는 바로 송기호다. <100분 토론>을 비롯한 빅 매치들, 신문을 포함한 매체에 대한 기고, 그리고 실제 만루 위기를 병살타 처리한 깔끔한 명투구를 가장 많이 기록한, 한국의 실질적 에이스는 바로 송기호이다(이에 비하면, 나는 8점차 이상 차이 난 경기에서 패전 처리로나 가끔 등판하는, 꽈배기 변칙 좌완이다.)
  
그런 송기호가 맹활약했던 지난 게임에 대한 복기의 기록을 한국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선보인다.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어지간해서는 복기를 하지 않고 "진 것은 잊어버려" 혹은 "다음 게임이 더 중요하지"라고 말하는 좀 나쁜 습관이 있다. 진 게임이나 이긴 게임이나, 어떻게 졌고 어떻게 이겼는지를 잘 복기해서 분석하는 것은 에이스가 되는 투수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 중 송기호처럼 이기는 게임을 하고 싶고, 좋은 분석을 하면서 토론에서 절대로 소리 지르지 않고 상대방을 케이오시키는 게임을 하고 싶으신 이가 있다면, 한국의 에이스 송기호의 복기본을 잘 분석해보시기 바란다. 우리가 그의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은, 재미를 위해서나 감동을 위해서나 혹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송기호가 펼쳐 보인 지난 촛불 정국의 분석은 감동스러운 드라마이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흔히 말하듯 "팬들의 성원과 사랑" 덕분이 아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말하듯 "죽도록 열심히 했"기 때문도 아니다. 조용하지만, 그는 한국 최고의 승부사이고, 또한 최고의 국제 통상 분석가이다. 송기호는 통상 조문과 법적 절차를 분석하지만, 제발 여러분들은 송기호를 분석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팀을 꾸릴 만한 송기호 급의 에이스가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리그나 해외 리그나, 전혀 꿀림 없이 게임을 소화할 수 있는 좋은 선발 투수 혹은 좋은 수비수들이나 의미 있는 진루타를 칠 수 있는 선발 선수들이 독자 여러분 중에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명박 시대의 어둠을 딛고 흥미롭고 재밌는 게임을 펼쳐볼 수 있을 것 아닌가?(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88만 원 세대 저자)

08.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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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28 17:33   좋아요 0 | URL
농업보다 농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그러기가 쉽지 않죠.인류보다 인간 개인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듯이.

이중결합 2008-10-28 20:27   좋아요 0 | URL
'역사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한다'는 비유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로쟈 2008-10-28 22:55   좋아요 0 | URL
'송기호 휴머니즘'이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