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 북리뷰에서 '처리'해야 할 책들이 몇 권씩은 된다. 이번주엔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21세기북스, 2008)도 그 중 하나다. 생소한 저자나 흔한 책 제목은 전혀 눈길을 끌지 않지만,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라는 광고문구는 호기심을 유도한다. 독일 사람들이 열광(?)하는 책은, 특히나 철학책은 어떤 것일까, 란 궁금증. 저자는 학술 저널리스트라고 한다(흠, 저널리즘적인 '글발'에 기댄 책인가? 하지만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국역본은 저자의 사진을 띠지에 크게 박아놓았는데, 젊은 저자의 '외모'로도 승부를 보려는 심산인가 보다. 아동틱한 독어판의 표지와 대비된다...

경향신문(08. 10. 11)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와 뇌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서로 가는 길은 달랐지만 가고자 하는 곳은 같았다. 연구 분야는 달라도 그들은 평생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렸다. 데카르트가 찾은 인간이해의 열쇠가 ‘이성’이었다면 다마시오가 발견한 답은 ‘감정과 느낌’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철학이라 부르는 학문은 데카르트를 논하고 이성에 천착할 뿐 다마시오를 거론하거나 감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독일의 학술저널리스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사진)가 볼 때 인간을 이해하는 데 이성과 감정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성과 감정을 아울러야 ‘나라는 존재’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철학은 뇌신경과학의 성과를 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철학과 뇌신경과학은 따로 논다. 심리학, 생물학에 대한 철학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배워왔던 철학의 틀만으로 인간 이해에 다가갈 수 없다고 여긴다. 책은 ‘육체적인 나’에서 ‘도덕적인 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나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남을 돕는 것일까’ ‘도덕은 타고 나는 것일까’ ‘조물주는 계시는가’ 등 살면서 한번쯤은 부닥쳐 봤을 법한 질문 34가지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기존 철학 교육이 불만이었다. 지나치게 사상의 역사적 서술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철학 교육이 학생의 지적 창의성과 사색을 북돋우기보다 암기 능력만 키워주는 아카데미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루하지 않은 철학 입문서를 쓰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다양한 학문과 주제를 넘나들며 철학의 원초적 질문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흡사 딱딱한 철학 개론서에 강렬한 한 방 펀치를 날리는 듯하다.

가령 미국 TV시리즈 <스타트렉>의 등장인물 미스터 스폭을 통해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나열한다. 스폭은 감정이 거세된 채 이성적 사고만 하는 외계인이다. 저자는 스폭을 통해 감정과 이성의 차이·양면성을 알기 쉽게 드러낸다. 그러나 결코 유치하지 않고 논리가 정연하다. 또한 동물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피터 싱어를 통해 ‘동물을 먹어도 될까’라는 윤리적 질문에 다가간다. 고래의 고통을 꼼꼼하게 설명하면서 환경보호론에 담겨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더듬어보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34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어렴풋이 손에 잡힐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취하는 철학의 태도는 ‘장르 파괴’이자 통섭이다. 철학 고유의 문제의식만으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문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소유욕에 대해 성찰할 때 게오르크 짐멜 못지않게 로빈슨 크루소를 주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안락사, 배아 복제, 자살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도 적지 않다. 이 책이 여타 철학 개론서와 다른 점이다.

이 책은 지난해 독일에서 철학 입문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등극, 1년간 45만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풍부한 일화를 통해 철학에 쉽게 다가가게 만드는 글솜씨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학년 논술교재로도 괜찮을 듯하다.(서영찬기자)

08. 10. 12.

P.S. 독일에서도 인정받은 글솜씨가 어떤 것인지 한번 '구경'해봐야겠다. 타이틀만 놓고 보자면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가는 책은 작년에 같이 나온 책 <Lenin kam nur bis Lüdenscheid>이다. 좌파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시절을 다룬 자서전인 듯싶다(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http://www.lenin-film.d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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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의 생각
    from sanghyun's me2DAY 2008-10-13 02:59 
    철학 교육이 학생의 지적 창의성과 사색을 북돋우기보다 암기 능력만 키워주는 아카데미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hahaha 2008-12-12 18:18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보고 싶네요! /ㅅ/ 언젠가 들어오려나?

로쟈 2008-12-12 23:29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을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