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신간 가운데는 마이클 하트의 <네그리 사상의 진화>(갈무리, 2008)도 들어 있다. 저자나 제목이나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아서 들춰보지도 않았는데(게다가 요즘 나오는 좌파 사상서들에는 왜 다들 '우파적 책값'이 붙어있는지!), 리뷰를 읽어보니 나름대로 흥미를 끄는 책이다. 가령 출판사측의 이런 책소개는 어떤가.

2004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대규모 포럼에서 ‘이탈리아 효과’가 진지하게 검토되었다. 이 포럼의 주요 내용은 철학의 주도권이 이전의 영미철학에서 1990년대에는 프랑스철학으로, 21세기의 벽두인 2000년대에는 이탈리아 철학으로 옮겨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1968혁명의 철학자들인 프랑스의 들뢰즈, 기 드보르, 푸꼬 등이 모두 사망한 후 안또니오 네그리, 빠올로 비르노(<다중>), 조르조 아감벤(<호모 사케르>), 마우리찌오 랏짜랏또(<비물질노동과 다중>), 프랑꼬 베라르디 등 이탈리아 철학의 흥기 현상을 주목하였다. 최근 한국에도 ‘이탈리아 효과’가 거세지고 있으며, 이 뿌리에는 안또니오 네그리의 사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그간의 한국 내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이러한 네그리 사상을 한눈에 밝혀주는 입체적 조감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요점은 '이탈리아 효과'의 한 기원인 네그리 사상의 입체적 조감도를 제시해준다는 것이 <네그리 사상의 진화>가 갖는 의의이겠다.

겨레(08. 10. 11) 참한 학자, 성난 전복자…젊은 네그리의 두 얼굴

마이클 하트(미국 듀크대 교수)는 아우토노미아(자율)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와의 공동작업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지적 동지이자 스승인 네그리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노동> <제국> <다중>을 집필함으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하트가 93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 후반부를 번역한 책이다. 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젊은 네그리의 이론적·실천적 투쟁을 추적한 것이 이 책이다.

하트의 박사학위 논문 전반부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갈무리)라는 이름으로 먼저 번역돼 나온 책에 소개됐다. 이 부분도 역시 질 들뢰즈 사상의 형성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두 권의 책으로 나뉘어 나온 셈인데, 그런 만큼 두 책을 묶어 함께 읽는 것이 하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

하트가 들뢰즈와 네그리의 초기 작업에 공통으로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헤겔 변증법’에 대항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니체를 통해서, 네그리는 레닌을 통해서 헤겔 변증법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왜 이들이 반헤겔·반변증법의 기치를 올렸는지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 서론에 간명하게 서술돼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어떤 ‘부정’도 부정 자체로 놔두지 않고 지양을 통해 종합에 합류시켜 버리는데,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배체제를 부정해도 결국에 또다른 지배체제로 포섭되고 마는 변증법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 변증법적 부정에 맞서 들뢰즈와 네그리가 공히 내세우는 것이 ‘비변증법적 부정’이다. “비변증법적 부정은 더 단순하고 더 절대적이다.” 이 비변증법적 부정을 하트는 ‘절대적 부정’ ‘총체적 부정’ ‘근원적 부정’이라고 부른다. 종합으로 지양되지 않고 부정 그 자체로 끝나는 부정, 완전한 파괴·소멸·폐허만 남기는 부정, 그리하여 그 빈터에서 새로운 존재의 구성으로 이어지는 부정이 네그리와 들뢰즈가 말한 부정이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말하자면, 이 비변증법적 절대 부정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트는 먼저 1960년대의 네그리가 이론과 실천에서 보였던 내적 긴장에 주목한다. 오페라이스모(노동자주의)라는 이탈리아 이론운동에 몸담았던 당시의 네그리는 흔히 ‘두 명의 네그리’ 혹은 ‘분열된 인격’으로 묘사된다. 이론의 영역에서 네그리는 지적이고도 성실한 학자였다. “지적 도야와 사상의 모험에 매료된 순수한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네그리는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학습하고 그들의 사보타주를 선동하는 “전의에 찬 성난 전복자”였다. ‘훌륭한 교수’와 ‘사악한 교사’ 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네그리는 찢겨 있었다.

이론의 영역에서 네그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숨에 극복할 방안을 찾지 못했지만, 실천의 영역에서는 노동자들의 전복적 투쟁을 옹호했다. 둘 사이의 분열과 긴장은,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자면, ‘지성의 비관주의’ 대 ‘의지의 낙관주의’의 갈등이었다. 하트는 이 긴장이 1970년대에 들어와 극도로 커진 뒤 파열·폭발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 폭발이란 노동자들의 힘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자본의 변증법’을 깨뜨리는 길로 나아간 것을 말한다. 노동자들을 포섭하여 그 힘의 분출을 봉쇄하는 자본의 변증법적 운동을 폐지해버리고, 노동자들의 실천적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때 네그리는 선언했다. “변증법은 끝났다. 헤겔은 죽었다.”

하트는 네그리가 이 비변증법적 부정의 지평을 발견한 것이 레닌을 재해석한 결과라고 말한다. 새롭게 해석된 레닌은 이론 자체보다 혁명 주체의 실천을 앞세우는 레닌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때의 레닌이 니체와 다르지 않다는 하트의 해석이다. “니체와 레닌 사이의 유사성은 주체의 힘이 모든 논점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든 것은 주관적일 뿐이다’라는 초라한 표현을 쓰지 말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작품이다’라고 하자.” 주체가 기존의 세계를 없애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니체와 레닌은 “파괴적 계기, 곧 그 파괴적 힘이 너무나 격렬하여 사물의 현재 상태를 완전히 깨부수면서 현재의 지평 전체를 무너뜨리는 힘”을 제시한다. 이런 레닌적 국면을 거쳐 네그리는 이후 아우토노미아 운동으로 나아간다.(고명섭 기자)

08. 10. 10.

P.S. 기사에서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하트가 93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 후반부를 번역한 책이다."라고 했는데 착오이다. 93년은 학위논문의 일부를 발전시킨 <들뢰즈 사상의 진화>가 출간된 해이고, 하트의 박사학위논문은 1990년에 나왔다. 그 제목이 <조직화의 예술: 질 들뢰즈와 안토니오 네그리에서 정치적 존재론의 기초(The Art of Organization: Foundations of a Political Ontology in Gilles Deleuze and Antonio Negri)>(워싱턴대학, 1990)이다. 철학박사논문이 아니라 문학박사, 비교문학박사논문이다(그러니까 들뢰즈와 네그리를 '비교'한 논문인 것). 하트는 듀크대학의 이탈리아어문학과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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