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인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2008)에 대한 것이다. 몇몇 책을 두고서 내내 저울질하다가 결국은 지난주 목요일에 배송받은 이 책을 부랴부랴 읽고서 작성한 글이다. 분량상 요지만을 나대로 간추렸는데,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진단서이자 고발장이다.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면 '한국인을 위한 사회경제학'이나 '우석훈식으로 본 한국경제론'. 그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지만 나는 맨 처음으로 읽는 게 전체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결론을 미리 알면 싱거우려나)...

시사IN(08. 10. 04) 대한민국 경제 살릴 '위대한 선택'은?

‘희망’ 대신에 ‘명랑’을 말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펴냄)이 출간됐다. 작년 여름에 나온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해 그가 쏟아낸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자 대단원을 장식하는 책이다. “하나의 불행이 끝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는 저자의 상황인식을 전제로 썼기에 이 시리즈에는 ‘공포 경제학’이란 별칭도 붙었다. 요즘 같아선 실감나는 공포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 대통령’ 이명박의 재임기간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1990년대 겪은 것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는다면 한국이 파시즘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도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면서 주거공간에서부터 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은 차츰 공고하게 분리돼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반화하면서 탄생하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레비아탄’, 곧 ‘괴물’이다. 이 괴물의 다른 이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이다.

한국사회에서 이 괴물의 탄생은 2007년 ‘경제’란 구호와 함께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함으로써 빚어진 일이 아니다. 우석훈의 진단으로는 2004년 혹은 2005년 사이에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한국경제 자체는 지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부자 되세요”란 덕담이 오가던 시기에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경제’라는 한마디밖에 모르는 좀비로 변해감과 동시에 한국의 국민경제는 죽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늦게라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이제라도 정상적인 국가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석훈은 비록 상황은 절박하지만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좁은 길”이 살짝 열려 있다며 명랑하게 충고해준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의 요체는 ‘제3부문’이다. 경제학에서 제1부문이란 기업을 말한다. 그리고 제2부문이 가리키는 건 정부 혹은 국가라는 공공 부문이다. 저자의 도식에 따르면, 이 제2부문이 제1부문을 자기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회주의(혹은 ‘국가독점 자본주의’)이며, 거꾸로 제1부문이 오히려 정부를 장악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좌파, 우파라는 이념적 견해는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정해졌다. 하지만 ‘명랑 좌파’ 우석훈의 대안은 제3부문이다. 이것은 국가나 대기업에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부문인데, 경제학에서도 잘 이론화되어 있지 않기에 ‘사회적 경제’ ‘증여의 경제’ ‘연대의 경제’ 따위로 불린다. 경제학자로서 우석훈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의 선진국 국민경제란 바로 제3부문이 활성화돼 있는 국민경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이 제3부문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제3부문을 형성하는 경로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교기관 같은 전통적인 사회기관이 생활협동조합의 ‘구심점’이 되어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에서 주로 그런 것처럼 대기업들이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혹은 독일의 경우처럼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3부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경제, 그리고 국민경제의 생태학적 전환이 가능해지리라고 우석훈은 전망한다. 그러한 전망은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위대한 선택’을 통해서이다.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위대한 선택이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한 취향과 사회적 행동을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의 수만큼 물려줄 30평짜리 아파트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집이 없거나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다.

08. 09. 29.

P.S. 지면기사에 맞게 초고의 몇몇 대목을 수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의 '30평짜리 아파트'는 그대로 두었다. 책에 그렇게 적혀 있을 뿐더러 지면기사에서처럼 99m2라고 적는 것이 좀 어색해서다(나는 그런 식의 도량형 통일을 '선진화'라고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다). 개인적으로 <괴물의 탄생>을 지난 여름에 나온 <촌놈들의 제국주의>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잔뜩 우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재미있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May humor be with you...'라고 저자가 명랑하게 기원하고 있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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