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일이 있어서 근무 없이 '재택'만 하고 있는데, 점심에 졸음이 쏟아진 탓에 한두 시간을 혼수상태로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잔뜩 흐린 날씨에 아직 비는 오직 않고 있다. 해야 할일들이 너무 많아 정신줄 대신에 할일들의 줄을 놓고 싶지만, 어디 형편이 또 그런가. 그런 형편에 또 잠시 신문 사이트들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신간 소식은 없지만, 그럼에도 기사 한 토막 정도는 스크랩해놓는다(견적이 나오는 페이퍼들은 다룰 수가 없으니 궁여지책의 '알리바이'다). 한일 역사학 원로들이 털어놓은 고백담을 묶은 <역사가의 탄생>(지식산업사, 2008)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일보(08. 09. 22) '나는 왜 역사가가 됐는가'

2001년부터 매년 가을 서울과 도쿄에서는 양국의 역사학자들이 참가하는 '한ㆍ일 역사가 회의'가 번갈아가며 열리고 있다. 한국사, 일본사, 서양사를 망라하는 양국의 대표적인 역사연구자들이 상호이해를 심화시키자는 취지로 여는 권위있는 학술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2회(2002년ㆍ도쿄) 때부터 일종의 전야제 행사로 "나는 왜 역사가가 됐는가?" 를 주제로 양국의 대표적 역사가들이 진행하는 자전적인 공개강연회가 관례화했다. 본회의도 의미있지만, 이 강연은 양국 역사학자들의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역사연구로 이어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어 사학계는 물론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왔다.

최근 발간된 <역사가의 탄생>(지식산업사 발행)은 2002~2007년 펼쳐진 이 공개강연을 묶은 책이다. 강연자들의 면면만으로도 양국 역사학계의 계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노대가들이 강연회를 진행했다. 한국측에서는 작고한 이기백(1924~2004), 고병익(1924~2004)과 김용섭(77) 등 6명의 학자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식민사관과 유물사관의 극복, 서양사 방법론의 한국화, 내재적 발전론의 입론 등 각 분야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학자들이다. 이타카키 유조(板垣雄三),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와다 하루키(和田春木) 등 일본측 발표자 7명도 중동사 연구, 근현대 한일 관계사, 북한 현대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들이다.

이들은 왜 역사가가 되었을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파시즘 시기에 '군국소년'으로 유년기를 보냈던 많은 일본 사학자들은 전전의 일본적 가치가 전면부정된 '전후 격동기'의 경험이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역사학 연구의 길로 이끌었다고 털어놓았다.

독일 사회주의운동사의 대가인 고 니시카와 마사오(西川正雄ㆍ1933~2008) 센슈대 교수는 종전 직후 "전차 안에서 한 중년 여인이 '우리는 도죠한테 속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까지 사용하던 교과서에서 군국주의적인 문장을 모두 먹물로 칠해 지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당시의 정신적 혼란기를 회상했다.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여자대 명예교수는 "전쟁 전부터 천황제에 굴복하는 일 없이 비전향을 고수했던 스승 야마베 겐타로 씨로부터 일본 근대사 연구에 있어서 조선 문제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역사학자들은 좌우대립,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숨 돌릴 틈 없었던 근ㆍ현대사의 체험이 역사가의 길로 인도했다고 자서(自敍)했다. 고 이기백 서강대 명예교수는 " 절망의 수렁 속에서도 오산학교의 전통이 민족에 대한 책임을 저에게 일깨워주었다"고 회고했으며,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어와 일본사를 국어, 국사라는 교과서로 공부했던 역사적 슬픔은 충격이었다"고 적었다.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전쟁의 원인이 한말 일제하 이래 계급문제, 사회모순의 집약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며 농업사 연구에 투신한 계기를 밝혔다.

그들을 역사의 길로 이끈 것은 '시대의 불운'이었으나 역사학계에는 축복이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도쿄대출판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이왕구기자) 

08. 09. 22.

 

 

 

 

 

 

 P.S. 신간 소개를 접할 때마다 기억력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역사가의 탄생>이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하는 식. 아무래도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에코리브르, 2001)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주제는 제목과 같은,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이 책은 역사가들이 쓴 것이지만 논문 모음집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적인 고백이나 자서전도 아니다. 이 책은 역사학에 있어 하나의 실험이다. 책을 엮은 피에르 노라는 이에 '에고 - 역사(ego-d'histoire)'라는 새로운 장르 개념을 부여하였다. 역사가들은 마치 다른 연구 대상의 역사를 기록하듯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들이 다른 연구 대상을 향해 던졌던 종합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말이다."라고 소개되는 책(나로선 아직 소장하고 있지 않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지난주에 다른 경로로도 떠올린 바 있다. 부르디외의 <호모 아카데미쿠스>(동문선, 2005)를 필요 때문에 잠시 손에 들었는데 서론에 해당하는 1장의 '이 책을 불태울 것인가?'의 에피그라프로 부르디외는 샤를 페기(1873-1914)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이 책을 불태울 것인가?'는 영어로는 "A 'Book for Burning'?"을 옮긴 것이고, '불태워야 할 책'은 이지의 '분서(焚書)'를 가리키므로 <호모 아카데미쿠스>는 부르디외의 <분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가들이 하는 식의 역사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역사적 세부사항의 무한성을 철저히 고찰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이러한 세부사항의 무한성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역사적 서열 속에서 자신들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마치 의사가 아프거나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샤를 페기, <돈 속편>)

여기에 인용한 것은 영역본과 비교해보니 첫문장이 오역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가들이 하는 식의 역사를 원치 않는다."는 영역본에 따르면 "Historians don't want to write a history of historians."를 옮긴 것이다. 곧 "역사가들은 역사가들의 역사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어 원문에 '그들'이라고만 돼 있다 하더라도 문맥상 그들이 '역사가'라는 것 정도는 옮겨줘야 이 인용문의 의미가 살아날 텐데, 일단 국역본은 그러질 않았다. 게다가 '역사가들의 역사'를 '역사가들이 하는 식의 역사'로 잘못 옮겼다.

샤를 페기가 지적하는 것은 마치 의사들이 자기가 아프거나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역사가들은 자신을 역사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모 아카데미쿠스>에서 부르디외가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학문세계와 대학제도 분석이다. 이것은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속해 있는 세계/제도이다(부르디외는 <강의에 대한 강의>에서 자신의 사회학 강의에 대한 사회학을 시도한 바 있다). 페기의 글을 인용한 맥락이다.

<역사가의 탄생>이나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는가>가 다루고 있는 '에고-역사'이면서 '역사가의 개인사'이다. 그것이 보다 확장된다면 '역사가의 역사'가 될 수 있겠다. 요즘 나의 관심은 그러한 자기 반영적/반성적 인식에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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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30   좋아요 0 | URL
샤를르 페기가 한 말을 에드워드 카도 한 적이 있죠...역사가는 마치 자신들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저 높은 산정에서 산 밑을 고생하며 걸어가는 이들을 여유있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자신 역시 보통사람들처럼 터벅터벅 걸어가는 대열 속의 한사람일 뿐이다...

로쟈 2008-09-22 22:41   좋아요 0 | URL
자신도 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 의사들처럼 역사가들도 스스로를 열외로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건 다른 분야들에서도 일반적인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