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 관련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래전 기사가 눈에 띄어 (먼지를 털어내고) 옮겨놓는다. 97년(07년이 아니라!) 봄이니 10년도 더 전의 기사다.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인 고려원(대표 김낙천)의 부도가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란 기사와 나란히 떠 있으므로 세월의 더께를 짐작해볼 수 있다. 롤랑 바르트 전집의 첫권으로 나온 <텍스트의 즐거움>(동문선, 1997)을 소개하고 있다.
한겨레21(97. 04. 03) 텍스트의 즐거움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과 함께 90년대 한국의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랑스 현대 사상가의 대열에 한사람을 더 추가한다면 아마도 기호학자 롤랑 바 르트가 될 것이다. 특히 문화현상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이 크게 유행하면서 문학기호학의 창 시자인 바르트에 대한 지적 관심은 문학 분야뿐 아니라 비평계 전반에 걸쳐 증폭되어 왔다.
도서출판 동문선이 20여권이 넘는 바르트의 모든 저작을 출판키로 기획한 것도 이런 관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문선은 최근 `텍스트의 즐거움'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모두 28권으 로 이뤄진 ‘롤랑 바르트 전집’을 펴내기 시작했다. 첫권으로 나온 `텍스트의 즐거움'(전집12)은 바르트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출발점 구실을 하는 책이다.
바르트 후기 사상 이해의 출발점
문학기호학의 창시자이자 후기구조주의 사상가의 일원으로 알려진 바르트 의 학문적 편력은 기호학에 전력한 전반기와 이른바 텍스트 이론에 주력 한 후반기로 크게 대별된다. `텍스트의 즐거움'은 `사랑의 단상'과 함께 바로 후기 바르트를 대표하는 저서로 꼽힌다. `텍스트의 즐거움'은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 이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화두들, 즉 작품에서 저자의 위치, 독자는 누구인가, 작품과 텍스트는 어 떻게 다른가 하는 점 등 그의 문학기호학의 기본적인 논제들을 그 자신이 쓴 글과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책의 편집도 앞머리에 편역자인 김희 영 교수(한국외대 불어과)의 해제와 ‘저자의 죽음’(1968) ‘작품에서 텍스트로’(1971) 등 바르트의 짧은 글을 배치한 다음, 후기 작업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 유명한 저서 ‘텍스트의 즐거움’(1973)과 1977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 연설문 ‘강의’ 등을 수록해 독자들이 바르트의 텍스트 이론에 접근하는 데 용이하도록 했 다. 이 밖에 바르트가 생전에 출판을 허락한 유일한 일기 ‘심의’와 바르트 의 사유체계를 비교적 잘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세편의 대담 등을 덧붙이고 있다.
롤랑 바르트(1915~1980)는 40세 때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사회학 연구원이 된 뒤부터 기호학에 관한 많은 글을 발표하여 학문적 명성을 쌓기 시작해 1976년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선임됐다. `신화학' `모드의 체계' `사랑의 단상' `텍스트의 즐거움' 등 20여권의 저서와 글들을 남겼다.
유럽에서도 난해하기로 이름난 바르트의 사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기호학 이론이나 텍스트 이론 등은 자주 거론되고 인용되지만 정확히 그 의미를 파악하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인 텍스트 이론은 작품의 생산자인 “저자를 죽임으로써 ” 비로소 출발한다.
작품에서 작가를 죽여야 진정한 의미의 독자가 탄생한다는 그의 발언은 난해하다. 무슨 뜻일가? 바르트에 따르면 작품을 만든 저자는 “역사적으 로 보아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산물”이다. 따라서 진정한 글쓰 기는 “저자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독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텍스트 이론에서 저자의 개념은 그 지위를 상실 한다. 저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글쓰기를 배합하고 조립하는 조작자, 또 는 남의 글을 인용하고 베끼는 필사자가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없는’ 작품, 즉 텍스트는 무엇인가? 여전히 난해하기 는 마찬가지지만 바르트의 설명을 들어보면 “‘작품’이 단일하고도 안정된 기호체계라면, ‘텍스트’는 이런 고정된 의미로 환언할 수 없는 무 한한 시니피앙(기의)들의 짜임”이다. 작품이 “의미를 변경할 수 없는 고정된 것이라면, 텍스트는 의미생산이 무한하게 가능한 열린 공간”이라 는 것이다.
“작가는 합리적 자본주의 산물이다”
따라서 독자는 해독해야 할 의미가 사라진 텍스트의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텍스트를 만난다. 롤랑 바르트에게 텍스트란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구체적이고 관능적인 공간이고, 비로소 그 둘은 경이롭고도 소중한 욕망의 여행을 시작”하는 빈 공간이다.
바르트의 주장은 권력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언어는 파시스트적”이라며 언어 자체가 가지는 권력성을 갈파한다. 그의 텍 스트 이론에 따르면 “언어의 폭력성, 지배 견해의 폭력, 상투적인 것에 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사성의 회복과, 능동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 “언어가 권력을 행사하려고 들 때마다 그 언어를 버리고 다른 자리 로 옮겨가는 것”이다. 권력이 우리를 이용할 수 없는 곳으로. 그곳은 어디인가? 바르트는 그곳을 “도덕성 또는 소설적인 것”이라고 가리킨다. “진실의 불확실성을 깨닫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 불가능한 지평을 향해 나아갈 때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바르트 이론의 결론이다.(이인우기자)
08. 09. 21.
P.S. 알라딘에서도 검색이 되지만, 바르트의 책은 <텍스트의 즐거움>(연세대출판부, 1990)으로도 출간된 적이 있다. 그다지 즐겁게 읽히는 텍스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