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줌 경기가 바닥이라는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9월 위기설'이 진정되는 듯하지만 세계경제 자체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한국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310241.html 참조). 오늘자 뉴스만 하더라도 "전세계 경기의 급속한 위축으로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이미 침체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로지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일본은 같은 분기에 -0.6%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경기후퇴 국면에 집입했다."고 전한다(설상가상으로 우리에겐 7%를 꿈꾸는 이명박정부가 있다!). 상황이 그러한지라 보통 경제서에 눈길이 가는 일은 드물지만 최근에 나온 책 두 권에 관한 기사는 아무래도 챙겨두어야 할 듯싶다. "빈곤을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따로 준비할 것도 없긴 하지만). 

한겨레(08. 09. 13) 한국 경제, 분배로 갈까 성장으로 갈까

‘9월 위기설’의 실체는 이 두 책의 가운데 어디쯤 있을 것이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빈곤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성장과 번영에 대한 기대를 접으라는 이야기다. <거짓말 경제학>은 “비관론을 퍼뜨리지 말라”고 말한다. 여전히 성장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앞의 책은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고, 뒤의 책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한국 경제의 갈 길이라고 한다.

나란히 출간된 두 책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지은이가 모두 ‘재야’ 경제학자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을 쓴 김재인은 기업·은행 근무를 거친 경제분석컨설팅업체 대표다. <거짓말 경제학>을 쓴 최용식은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경제칼럼니스트다. 기성 경제학자에 대한 비판을 벼리면서 세계 경제의 미래를 암담하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진단에서도 일치한다.

그러나 두 지은이가 서 있는 인식지평은 다르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앞세운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배타적·이기적·소비적·전투적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다.” <거짓말 경제학>은 정확히 반대편에서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를 배척하는 것은 국가경제를 쇠락으로 이끌고 국민들을 경제난에 시달리게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암울한 예측을 도발적으로 내놓는다. “대한민국의 풍요는 끝났다. 지구의 풍요 또한 끝났다. 종말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빈곤을 준비하라. 빈곤이 싫다면 종말을 맞이하라.” 최근의 경기하락은 세계경제의 순환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며 영속적인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역을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 결별한다. “한 국가가 50% 성장 혜택을 본다면 다른 국가는 반드시 50% 손실을 보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제로섬’의 시대다. <빈곤 경제학>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신자유주의 비판이 아니다. 지은이는 식량과 화석연료를 포함한 자원의 고갈에 주목한다.

“지구상의 자원이 고갈되면서 이제 모든 경제활동은 국가적 차원으로 전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는 극단적 신보호주의로 전환됐다.” 지구 차원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도달했고, 미국 경제 역시 붕괴 직전에 있다. “이제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바라는 만큼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어려워졌다. 우리 경제라고 이런 흐름에서 동떨어져 7%에 이르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야말로 무지의 소치다.”

<거짓말 경제학> 역시 ‘성장 신화’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지은이가 보기에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 경제는 “성장 지상주의를 내세우면 위기가 오고, 경제 안정주의를 내세우면 상황이 개선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패착은 “세계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환율 인상 정책 등으로 무리하게 경기를 부양”한 데 있다.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정권이 외환위기를 일으켰던 길을 비슷하게 걷고 있다. 현재의 경제정책을 유지한다면 파국적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짓말 경제학>의 비판은 ‘반신자유주의’를 향한다. “기업 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해도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한국 경제의 분위기가 극도로 비관적이기 때문”이며 그 선봉에는 민영화·개방화 등을 비판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나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이 있다. 책 제목이 지목하는 ‘거짓말 경제학’의 주역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배척하고도 경제가 번영한 나라가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있는가”라고 묻는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배척이 오히려 강자승리와 승자독식을 부른다”고 분석한다. 일자리를 잃어도 가난한 자가 먼저 잃고, 사업이 망해도 영세업체부터 망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장의 콘텐츠가 없는 진보”는 여전히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지은이는 좌파 경제학자 출신인 카르도주 전 브라질 대통령과 노동당 출신의 룰라 현 브라질 대통령이 개방화·민영화 노선을 채택해 성장을 일군 브라질의 사례를 여러 차례 거론했다. <거짓말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진보 노선을 제시하는 셈이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빈곤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거짓말 경제학>은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경제정책으로 선진국 진입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파국을 면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라고 두 책은 입을 모은다. 형편이 이런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이명박 정부에 묻는다.(안수찬 기자)

“내수시장 안정이 최우선”…대기업 투자 주문도
신자유주의, 민영화, 시장 개방 등에 대한 두 책의 입장은 날카롭게 대치한다. 시각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점이 없지 않다. 우선 내수 시장 안정이 최우선 정책이라고 제시한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고용시장 안정과 분배 정책을 통해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할 소비자들을 안정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거짓말 경제학>은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대기업 투자 활성화 문제에 대한 주목도 닮았다. <빈곤의 카운트다운>은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우선 정책이 대기업 투자 활성화를 틀어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들은 막대한 투자 여력을 설비 투자가 아니라 앞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공기업 인수에 쏟아부으려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 경제학>은 민영화의 적극 추진을 주문하면서도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처럼 영업이익을 금융이익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거나 일본처럼 해외 부동산과 기업 인수에 매달린다면 미국의 악전고투와 일본이 빠진 미궁이 우리 몫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수 시장 안정화의 정부 정책과 재투자를 위한 대기업의 행보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안수찬 기자)

경향신문(08. 09. 06) 한국경제 ‘빈곤의 시대’ 대비하라

‘9월 위기설’이 증폭되면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실물경제마저 휘청이고 있다. 정부는 위기설이 과장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정말 대한민국에 위기가 닥친 것일까. 정부와 언론, 그리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펀더멘털이 튼튼하고 저력이 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다. 세계 경제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진정되면 1~2년 후에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단기비관, 장기낙관’이라는 전망은 수백년을 지속되어온 경제전문가들의 화법이다. 경제는 보통 회복과 침체의 사이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경제가 앞으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경제학이란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학문’이다. 저자는 자원이 ‘정말로’ 유한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경제학자들은 이르면 30년 내에 고갈될 석유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를 논의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의 유가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1999년에 배럴당 20달러에 불과했던 원유가격은 2006년엔 60달러, 2007년엔 80달러, 올해엔 130달러를 넘어섰다. 원유는 2010년 즈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고갈될 것이란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석유는 자동차를 굴리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료를 만들고 플라스틱을 제작하고 컴퓨터를 켜는 데도 이용된다. 현재와 같은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원유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동반한다.

달러화 가치의 하락도 위기의 징후다. 미국은 달러화를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 만듦으로써 엄청난 부를 누렸다. 세계 각국이 달러화 보유에 힘쓰는 상황에서 미국은 그저 달러를 찍어내고 다른 나라의 물건을 사오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정부의 누적적자 규모는 9조달러에 이르렀다.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낸 것이다. 달러화를 찍어낼 수 없게 되자 미국경제가 위축됐고 이는 미국에 소비재를 공급해온 중국이나 한국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은 이미 붕괴상태이며 실업률도 높기 때문에 내수경제를 살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어느 나라보다 미국과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급률은 3%대에 불과하며 경제는 물론 정치·문화·사회적으로도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경제를 살려야 하며 자원 수급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 절반이 한 달 117만5000원(2007년 기준)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서비스분야에서의 비정규직은 더욱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는 더욱 악화됐다. 이미 거품이 낀 부동산을 통해 내수 경기를 진작하려 하고 환율을 상승시켜 내수보다 수출중심의 경제를 지향했다. 국민이 통합해 위기를 헤쳐나가도 부족한 마당에 종교간, 계층간 갈등을 유발하고 민영화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심화시켜 사회안전망을 파괴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에 마지막 남은 희망은 북한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북한은 산업화가 덜 이뤄져 매장된 각종 천연자원이 남한의 수십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관계마저 악화되고 말았다. 중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북한을 원조하면서 각종 자원의 발굴권을 가져가는 동안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솔직히 조언한다. 빈곤을 준비하라고. 자동차의 크기를 키워서도 안 되고 넓은 집을 탐해서도 안 되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난 뒤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하는 삶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불황은 경기사이클에 의한 일시적 빈곤이었다면 앞으로의 빈곤은 상시적인, 절대적 빈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너무 우울한 전망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보다는 훨씬 진실에 가까워 보여서 더욱 암담해진다.(김준일기자)

08. 09. 15.

 

 

 

 

P.S. 기사를 읽으며 떠올린 건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득실표(대차대조표)이다. 그라면 문제는 '대한민국 경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문명' 자체라고 진단할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에서 그는 자본주의가 누구에게 득이 되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전체 가운데의 비율로 보아 특권계층의 규모가 역사적 자본주의하에서 상당히 커졌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확실히 더 잘살게 되었으며, 건강이나 삶의 여러 기회들이나 소수 지배집단에 의한 자의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도 더 나아졌다. 이들이 정신적으로 더 나아졌는가 하는 데에는 다분히 의문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마도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146쪽) 하지만, 이 특권계층이 세계인구의 다수는 아니다.

"그러나 스펙트럼의 다른 한쪽 끝에 위치한 사람들, 다시 말해 특권의 수혜자말고 세계인구의 50-85%에 해당하는 이들의 경우, 그들이 아는 세계는 이전에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알았던 세계보다도 확실히 더 나빠졌다. 기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질적으로 더 빈곤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체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 문명의 세계는 양극화된 그리고 양극화해나가는 세계다. 그런데도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시켜주었던 것은 개혁이 증가되고 결국엔 격차가 메워지리라는 희망이었다.(...) 자본주의 문명은 비단 성공적인 문명이었던 것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문명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희생자들과 반대자들까지도 매혹시켜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현혹/매혹의 약발이 다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끄트머리에 있는 선택지는 ('빈곤의 종말'이 아니라) '빈곤이냐 종말이냐'다. 월러스틴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모든 역사적 체제들이 예외없이 제한된 수명을 누리며 끝내는 뒤를 이을 다른 체제에 길을 터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세계체제 또한 영속적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일단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전에 '역사적 자본주의'의 종말/파국과 함께 '자본주의 이후'를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08-09-17 17:01   좋아요 0 | URL
역시 신자유주의 비판은 비교우위론 비판을 기본으로 하는군요.공병호도 장하준을 비판하더군요.역시 두 개의 경제학은 화합할 수가 없군요.저도 어제 맨큐어 올슨<국가의 흥망성쇠>를 헌책방에서 구했는데 시장주의를 택하는 것이 국부에 좋다는 책이죠.마지막 장에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도 있고 해서 구입했어요.이미 소장하고 있는 셔먼<스태그플레이션>이 급진경제학 쪽 시각이라서 시장주의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해서 올슨 것을 샀지요.
이번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봐도 역시 세계경제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로쟈 2008-09-17 17:37   좋아요 0 | URL
듣자하니 그 금융자본이 결국엔 사고를 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