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주목한 신간 중의 하나는 유럽 중심주의 역사학자 여덟 명을 호명하여 비판한 제임스 블로트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푸른숲, 2008)이다. <리오리엔트>의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랭크에 따르면, "블로트는 마치 사격장에라도 온 듯, 막스 베버의 고전적인 주장에서부터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데이비드 랜디스가 쓴 그것의 최신 베스트셀러 버전에 이르기까지 유럽 중심주의의 대표적인 옹호자 여덟 명의 ‘이론으로 가장한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쏘아 맞출 뿐 아니라 철저하게 해부하여 완전히 무너뜨린다." 거기에 한국어판 서문을 쓴 서양사학자 최갑수 교수에 따르면,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이해를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그것의 극복을 바라는 이들에게 소중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적어도 문제의 과녁이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줄 듯싶다...

한국일보(08. 08. 30) 유럽문명만이 우월?… '반쪽 사관' 일뿐!

"왜 그 많은 문명중 유럽문명만이 자본주의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역사의 승자인 서구의 역사가들은 물론,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20세기 들어서야 근대국가를 세운 제3세계 역사가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많은 서구 역사가들이 제시한 해답은 유럽 사회의 '특수성'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과학은 오직 서구에서만 발전단계에 있으며, 체계적인 신학을 끝까지 발전시킨 종교는 기독교 뿐"이라고 저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서문을 장식한 막스 베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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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명의 '합리성'을 근거로 서구 근대화의 필연성을 주장한 베버 이후 다양한 유럽중심주의 이론들이 등장했다. 삼포식 돌려짓기와 무거운 쟁기사용 등 농업혁명은 오직 유럽에서 성취됐으며 이것이 자본주의화의 길로 이어졌다고 보거나, 야만적이고 약탈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평등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에서만 경제발달을 가능하게 한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이론 등이 그것이다.

남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유럽 식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역사가이자 베트남전 반대운동,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제임스 블로트(1927~2000). 그는 베버로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로버트 브레너, 보수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랜디스에 이르는 8명의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들을 호출한다.

그는 유럽인들은 비길데 없이 창의적이거나, 홀로 독창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거나, 홀로 민주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이 지식인들의 역사서술 인식 태도를 협애하기 짝이 없는 '터널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가령 베버는 지중해의 도시들 같은 교역도시가 유럽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블로트는 인도양이나 남ㆍ동중국해에도 큰 교역도시가 있었고, 비유럽의 문명에 대해 무지한 베버는 지적으로 불성실한 논리를 전개했을 따름이라고 공격한다.

저자는 유럽의 환경이 다른 지역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았으며,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특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발흥의 원인은 오직 다른 지역의 해운 중심지보다 유럽의 그것이 아메리카로 향한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력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명쾌하고 다양한 논거를 사용해 세계적 석학들의 이론적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그의 반론에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은 저자가 탈식민화된 세계사 서술을 위해 기획했던 3부작'식민주의자들의 세계이해'의 두번째 책. 다음 작업으로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대두와 세계화를 설명하는 저술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완결짓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미국지리학자협회는 2000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제임스 M 블로트 혁신적 저작상'을 제정했다.원제 'Eight Eurocentric Historians'(2000)(이왕구기자)

08. 08. 30.

P.S. 비판대상이 된 여덟 명의 역사학자 중에는 '유로 환경결정론자'로 지목된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주로 타겟이 된 책은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은 <총, 균, 쇠>이다.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의 역자 박광식씨는 줄곧 <총기, 병균, 강철>이라고 옮겼는데, 따로 이유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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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30 20:54   좋아요 0 | URL
저는 로버트 브렌너를 어떻게 비판했을까 궁금하네요.

로쟈 2008-08-31 12:04   좋아요 0 | URL
목차에도 있지만, '유로 마크스주의'로 지칭하네요. 내용은 '유럽 확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니까 대동소이할 듯...

노이에자이트 2008-09-01 21:44   좋아요 0 | URL
제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 때 브레너의 논문이 경제사 쪽에서 꽤 유명해서 번역본을 봤는데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번역자들 중 지금은 자본주의 이행논쟁의 전제 자체-서구의 근대화 및 합리성-를 의심하는 학자로 바뀐 이가 있더라구요.

로쟈 2008-09-02 08:29   좋아요 0 | URL
'학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변호들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