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서재)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가장 저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의 책이 출간된 건 오랜만이 아닌가 싶다. 이번주의 신간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부글북스, 2008)가 일단 반가운 건 그래서인데, 개인적으로 그 반가움은 이 책이 잠시 20년쯤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기 하다. 학부때 읽은 책의 표지와 책장의 감촉이 잠시 되살아난 것. '비싼' 책이어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구입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지금은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디지털타임스(08. 08. 21) 인간행동은 자율보단 환경이 좌우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미국 심리학계를 휩쓴 행동주의 심리학의 기본 입장은 생각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기억하는 `정신활동'은 직접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환경의 자극에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들에게 인간의 행동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유전적 자질과 외부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이 원래 목적적이고 자율적이라는 전통적 인간관은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이 책은 프로이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평가받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를 대중들의 뇌리에 사회사상가로 각인시킨 책이다. 스키너는 과학적 심리학에서 얻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과 문화관을 제시한다.
스키너는 자유와 존엄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분석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자유와 존엄을 누리는 인간 내면의 자율적인 존재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강화요인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다듬어나간다는 것이 스키너의 일관된 주장이다. 따라서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도 인간의 성격보다는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세계에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가 글로벌하다. 인구과잉, 자원고갈, 환경오염, 핵전쟁의 가능성 등이 그렇다. 이것들은 현재의 행동양식 때문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이다. 그러나 예상 결과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런 예상 결과들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1972년 스키너는 이 책으로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대중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은 맹공을 퍼부었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조직된 비영리기관인 `대학비교연구소'는 이 책을 20세기 최악의 책 50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런가 하면 노암 촘스키는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공격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행동의 원인을 순전히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책의 내용에 경악을 거듭했던 것이다.
인간행동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스키너의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는 전통적 관점이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행동이 인류문화의 생존을 돕는 쪽으로 다시 설계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거듭 강조한다. 읽어내기가 녹녹지 않은 분량에 몇몇 대목에서는 급진적인 성향도 보이지만 각종 사회현상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스키너의 일관된 주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이지성기자)
08. 08. 22.

P.S. 내가 읽었던 책은 심리학자 차재호 교수가 옮긴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탐구당, 1989)이다. 200쪽 조금 넘으니까 얇은 책이었는데, 대신에 딱딱한 하드카바였고 책값이 좀 셌다. 지금 확인해보니 알라딘에서도 1994년판을 판매하고 있다. 아직 품절되진 않은 모양이다(왜 같이 검색이 안되는지는 모르겠다).

스키너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를 고르라면 나는 레즐리(레슬리) 스티븐슨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이론>(종로서적, 1981)을 꼽겠다. 그 일곱 가지의 하나로 스키너의 행동주의가 다루어지고 있다. 스티븐슨의 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갈라파고스, 2007)으로까지 확장됐지만, 아쉽게도 스키너에 관한 장은 빠지게 됐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게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보다 전문적으론 임의영의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문학과지성사, 1993)을 참조할 수 있다. 기억에는 행정학 전공인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키너의 또다른 대표작 <월든 투>를 읽어야겠다(책의 이미지들은 편의상 사이즈가 맞는 걸로 가져왔다. <월든>이나 <월든 투>나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제목은 물론 헨리 소로의 <월든>에서 따온 것으로 스키너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그려내고 있다(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기 전에 영문학을 공부했다). 촘스키가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전체주의 사상"이라고 공격했을 때, 그 사정권 안에는 <월든 투>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젝을 따라서 이렇게 반문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체주의가 어쨌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