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 번역 60년>(소명출판, 2008)이란 책이 지난달에 나온 걸로 아는데, 한국일보의 리뷰기사는 오늘 떴다. 광복절이란 시의성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 비교적 자세한 소개를 담고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8. 08. 15) 하루키·바나나는 한국문학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윤상인(53)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가 최근 출간한 <일본문학 번역 60년 : 현황과 분석>(김근성 강우원용 이한정 공저ㆍ소명출판 발행)은 1945~2005년 국내 출판된 일본문학 번역서 전체의 서지목록을 작성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담은 국내 첫 연구서다. 학술적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목록 자료만큼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자료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에서의 일본문학 수용 양상. 윤 교수를 만나 '일본문학 번역 60년사' 이야기를 들었다.

■ 현재 일본문학 붐은 60년대 붐의 재판
현재 한국 출판계의 일본문학 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부상한 1990년대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는 '장기 호황'이다. 하지만 이 호황은 해방 이래 일본문학 수용 역사에서 별쭝난 현상이 아니다. 60년대에 이미 '1차 부흥기'라고 부를 만한 일본문학 붐이 일어났고, 이후 90년대 '2차 부흥기'를 맞을 때까지 일본문학 번역 건수는 꾸준히 늘었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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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본문학 붐의 기점은 4ㆍ19혁명이었다. 이승만 정부의 강력한 배일 정책으로 50년대 소설 7편 번역이 전부였던 것이 급반전했다. 그 해 청운사의 <일본문학선집>(전7권) 등 4개 출판사에서 일본 주요 작가 중단편 선집이 나오고, 고미카와 준페이, 다니자키 준이치로, 이시하라 신타로, 하라다 야스코 등의 소설 단행본 13권이 출간되는 등 60년대에 걸쳐 641편(중복 번역 포함)의 작품이 번역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15개 출판사에서 중복 출간됐고,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68년에는 6권짜리 전집(실제는 선집)이 신속히 간행됐다. 그 번역자에는 한무숙 전광용 정한모 천상병 이호철 최인훈 등 작가들이 다수 포함됐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이른바 '중간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시자카 요지로의 장편은 63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 4, 6위를 차지했고, 65년 첫 출간된 미우라 아야코의 장편 <빙점>은 66~67년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점했다. 윤 교수는 그 요인으로 대일 문화정책 변화, 일본문학에 대한 호기심 증폭, 일본어 교육을 받지 않은 '4ㆍ19세대'의 출현 등을 꼽았다.

■ '독자 친화'적인 일본문학
윤 교수는 일본문학이 한국문학보다 앞서 변화하는 독자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왔다고 분석한다. 국내 문학의 기반 자체가 빈약했던 60년대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등의 작품은 읽을거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70, 80년대엔 추리소설 기업소설 애정소설 역사소설 등 오락성 짙은 대중소설이 쏟아져 들어왔다.


90년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 새로운 감성의 문학이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적 욕구를 만족시켰다. 윤 교수는 "88올림픽 이후 국내 독서대중은 10대 후반~20대 위주로 재편됐는데 이들은 사회역사적 책임감보다는 개인주의와 소비 욕구에 충실한 세대"라며 "여전히 거대담론을 중시하는 한국문학에 거리감을 느끼던 신세대 독자들에게 하루키의 쿨한 감각, 류의 도저한 상상력, 바나나의 만화 풍 소설이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에는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등이 산뜻한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중간소설 영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일본소설일까. 윤 교수는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러시아문학이 근래 들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비해 일본은 폭넓은 독서 욕구를 가진 독자들이 뒷받침하는 탄탄한 소설 시장이 있어서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하며 더 나은 작품을 써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근접성, 사회문화적 동질성 등도 요인으로 꼽았다.



■ 상업주의에 매몰된 일본문학 시장
윤 교수는 여타 외국문학과 달리 일본문학은 시종 출판사가 주도하는 상업출판의 형태로 국내에 소개돼 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번역작품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일본 내에서 문학상을 받거나 많이 팔린 작품을 실시간으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아쿠타가와 상의 경우 그 수상작은 60년대부터 거의 빠짐없이 국내 소개되고 있다.

윤 교수는 "이는 상업적으로는 안전할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출판계가 일본의 문화 유통구조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일본문학 전공자나 전문 번역자가 스스로 좋은 작품을 골라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 품질의 검증도 시급하다. 70, 80년대 횡행하던 날림번역은 90년대 들어 전문 번역가 군의 형성으로 많이 개선됐지만, 10명 남짓한 유명 번역가들에게 의뢰가 몰리다보니 질이 떨어지는 현상이 감지된다는 것. 윤 교수는 "60년대 번역 수준이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일본 문학 및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들이 번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이훈성기자)

08.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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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1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특히 60-70년대 대하역사물 번역목록을 봐야겠어요.
마지막 구절, 일어 번역의 질에 관해선 60년대에 김소운 씨가 했던 말과 똑같네요.로쟈 님은 일본 소설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로쟈 2008-08-17 00:37   좋아요 0 | URL
많이 읽지 않아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 정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 좋아하는 한국인이 굉장히 많군요.저는 이노우에 야스시의 역사소설 <풍도>와 <누란>입니다.둘 다 약소국의 비애를 그린 작품입니다.전자는 장편으로 고려말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이야기입니다.후자는 중편인데 누란의 위기라는 표현에 나오는 그 나라 누란의 비극적인 망국사입니다.한족과 흉노 사이에 끼인 나라의 운명.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참한 나라.우리나라는 거기에 비하면 강대국 사이에서 나름대로 운신의 폭이 넓은 나라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로쟈 2008-08-17 17:47   좋아요 0 | URL
이노우에는 처음 듣는 작가인데요.^^; 일본과 중국 소설들을 상대적으로 읽지 않은 편이어서 따로 견적을 내보고 있습니다...

2008-08-1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8-18 00:18   좋아요 0 | URL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