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관한 책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앨리엇 애런슨 등이 지은 <거짓말의 진화>(추수밭, 2007)은 사실 작년말에 나온 책이어서 신간은 아니다. 그때 한창 BBK 사건이 사회적 관심사였는지라 나름대로 시의성 있는 책이란 생각이 했었다. 이번에 나온 <거짓말의 딜레마>란 책 때문에 다시 불려나온 듯하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건 '거짓말하는 권력'이다. 아마도 필자 또한 그 점을 의식했을 듯싶고, 기사를 옮겨놓는 나 또한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현정부는 '경제위기=촛불책임론’을 거론하며 프레임화하고 있다(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대로 "경제활동이 중단된 것도 아닌데, 촛불집회 때문에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김 전수석과의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071801375&code=210000 참조). 앞으로도 5년내내 그런 거짓말에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교수신문(08. 07. 07) 속임수와 변명, 자기정당화가 번성하는 이유

오늘의 날씨처럼 다들 ‘오늘의 거짓말’을 갖고 산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전철 바퀴도 기꺼이 펑크 나고, 미처 답장 못한 메일은 스팸 편지함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 연인 앞에서 남자들은 모두 개과천선한 왕년의 ‘짱’들이고, 여자들은 모기만큼 먹어도 언제나 배가 부르다. 취업 준비생들은 ‘뽀샵질’로 위장한 사진을 갖다 붙이고, 자기 소개서를 메워 줄 장점으로도 읽힐만한 단점을 자신에게서 찾아낸다. 자국에서마저 리콜당한 미국산 쇠고기는 싸고 맛 좋고 안전할 수밖에 없으며, 그걸 모르는 국민 대다수는 배후 세력에게 ‘속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피노키오의 코를 가졌다, 온갖 거짓말에도 결단코 길어질 리 없는. 하루 거짓말의 횟수는 200번. 10분 대화에서 대략 2번. 이 ‘거짓말 같은’ 거짓말에 대한 진실로 『거짓말의 딜레마』는 시작한다. 물론 정확한 수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날마다 거짓말을 하며 생각보다 훨씬 자주 한다는 것.



일상적인 거짓말의 상당수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일종이다. 예컨대 ‘어떻게 지내요?’같은 질문에 ‘고마워요, 잘 지내요’라는 대답은 가장 의례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이것은 옷가게 점원의 미소마냥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 노릇을 한다. 또한 인생극장에서 우리들은 관계 양상에 따라 번갈아 다른 가면을 쓴다. ‘페르소나(persona)’는 인간됨의 조건이다.

저자가 인용한 알데르트 브리지에 따르면, 거짓말 뒤에는 복합적인 이기적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의 심리 실험에서 거짓말의 50퍼센트는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고 조롱당하지 않으려는 이기적 이유를 깔고 있다. 그리고 25퍼센트는 이타적 이유였는데, 가령 친구가 과음으로 결석했는데도 강사한테 친구가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다. 나머지 25퍼센트는 ‘친사회적’ 이유에서다. 머리 모양이나 옷에 대한 칭찬은 흔히 작은 선물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 자체가 쾌감과 더불어 우월감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만우절 거짓말이나 몰래 카메라의 인기 비결이다.

‘여자는 기만적인 종족’이라는 악의적인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거짓말 횟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남녀 간에는 거짓말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여러 심리학자들은 ‘여자들은 남들을 위해, 남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하는 편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여성의 거짓말이 집단 내에서 공격적 태도와 갈등을 방지하고 안정과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종의 장구한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도 거짓말은 학습된다. 아이들은 만 네 살 전까지는 거짓말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남을 속이려면 타인이 무엇을 알고 기대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은 그러한 전제 조건을 결여하고 있는 탓이다. 저자가 소개한 정신의학자 찰스 포드는 고유의 정체성을 키우고 부모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서 거짓말이 아동의 발달과 사춘기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거짓말의 딜레마』는 자기기만, 거짓말쟁이들의 술수, 거짓말 탐지기 체험담 등 거짓말에 대해 궁금할 법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거짓말의 백과사전’같은 이 책의 저자 클라우디아 마이어는 “거짓말은 삶과 인간 존재의 일부이다. 거짓말은 진화의 원동력이고 생존 전략이며 일종의 사회적 윤활제이다”고 말한다.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거짓말의 진화』는 ‘자기정당화’라는 심리적 갑옷의 형성과 해체에 충실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 정당화는 흔히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짓말과 달리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호텔 기물 파손 사실을 숨기는 짓은 이미 숙박비에 부주의한 고객들로 인한 비용이 포함돼 있으므로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세금 신고 시 소득 누락 역시 정부의 세금 낭비 형태를 감안할 때 정당한 나의 권리에 속한다.

이러한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 즉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드는 에너지는 1957년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창안한 ‘인지 부조화’라는 불유쾌한 감정이다. “인지 부조화는 ‘나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흡연은 어리석은 짓이다’와 ‘나는 하루 두 갑을 피운다’처럼 상반하는 두 가지 인지 요소(사상, 태도, 신념,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하는 긴장 상태다 … 사람은 부조화를 해소하기 전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앞의 예에서, 흡연자가 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흡연이 해롭지 않다, 긴장 이완이나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 등의 여러 구실을 들어 흡연에 대한 부작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신경 과학자들은 이러한 편향된 사고가 뇌의 정보처리 방식 그 자체에 내장돼 있다고 말한다. 뇌를 핵자기 공명 장치(MRI)로 관찰한 결과, 부조화 정보에 접했을 때는 피험자들 뇌의 추론 영역이 거의 정지돼 있고, 조화가 회복됐을 때에는 뇌의 정서 회로가 환하게 밝혀졌다.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자기 정당화는 시간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불편이든 선택에 동반된 비용이 클수록 그리고 결과를 되돌릴 수 있을 가능성이 낮을수록 강력해진다. 큰 거래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바로 전에 그와 관련된 선택을 한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지 말라고 저자들은 충고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선택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당신을 설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기정당화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오만과 편견을 키울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마저 왜곡하고 재구성한다. “기억은 우리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정당화에 종사하는 역사가 노릇을 한다 … 듣고 싶지 않은 정보는 가차 없이 지우고, 여느 파시스트 지도자들처럼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

추억은 그래서 늘 과도하게 달콤하거나 쓰라린 법이다. 기억은 과거의 자신을 지금의 긍정적 자아상을 위해 미화하기도 하지만 폄하하기도 한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현재의 모질거나 별 볼일 없는 삶을 역경에 대한 빛나는 승리로 바꾸어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사법 전문가, 정치인, 결혼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자기정당화의 분석에 비해 저자들의 대안은 다소 소박한 편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자기정당화에 따른 미래의 폐해를 깨닫고, 인지 부조화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마다 ‘오늘의 거짓말’을 갖고 산다 해도, 오늘의 날씨와 달리 ‘화창한 거짓말’들을 만들어갈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역사에서 ‘큰 거짓말’들이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독재자들의 공통분모라는 것 또한 증언해 준다. 거짓말이 모듬살이의 조건이자 사회의 윤활유가 되려면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악의적인 기만이나 자기정당화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김창한 객원기자)

08.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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