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인문사회학적 대안을 찾아서'란 부제를 가진 <현대사회학과 한국 사회학의 위기>(길, 2008)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57). '중도우파'를 자임하는 저자 민문홍 교수는 뒤르켐(뒤르케임) 전공자로 예전에 <사회학과 도덕과학>(민영사, 1994) 같은 책을 낸 적이 있다. 뒤르켐 전공자가 많지 않았던 때라 눈길이 갔던 책이다(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연대와 열광>(창비, 1998)의 저자 김종엽 교수 정도다. 중도좌파쯤 될까. 두 사람의 뒤르켐 표기가 각각이다. 게다가 보통의 사회학 책에서는 '뒤르켕' 혹은 '뒤르껭'이라고까지 표기하는 탓에 어지럽다). 돌이켜보니 꽤 오래전 일이다. 서평은 저자가 진단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와 제시하는 '대안'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교수신문(08. 06. 30) 서구이론에 기댄 과장된 기술 … 저자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이 책은 프랑스의 현대 사회학자 부동, 고전 사회학자 토크빌과 뒤르케임의 학문적 세계를 소개하고 한국의 사회학 연구 동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의 중도 우파 사회학을 소개함으로써 지나치게 진보 일색으로 좌편향된 국내 학계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즉, 아직도 한국 사회과학자의 발목을 잡는 최대의 걸림돌인 이데올로기 문제를 보수파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진보 논객들에게 고차원의 이념 논쟁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부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해 역사적 관성이나 구조가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의지와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행위가 구조를 창출한다는 시각에서 고전 사회학을 재음미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 민주화 운동권이 표방하는 사상적 입장도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유교자본주의론이나 아시아적 가치론, 기독교적 가치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구 사상사에 등장하는 각종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국내 학계에 실용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한국의 지적 풍토를 비판하며 제기한 폭발성 쟁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민주화 운동권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반독재 투쟁이라는 정당성을 주장하며 무비판적으로 서구의 각종 신좌파 이론을 받아들여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으며 특히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하버마스가 지배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지적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물론 과장된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버마스의 이론을 가장 부지런하게 국내에 소개한 연구자 집단이 계급투쟁을 선도하거나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중간계급을 주체로 한 건전한 시민운동의 육성과 제도적 민주주의 확립을 중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저자가 우려하는 사상적 혼란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대학가를 휩쓸었던 사회구성체 논쟁, 국가론 논쟁, 엔엘(NL)과 피디(PD)로 알려진 변혁운동 노선 논쟁 등을 말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식인 사이에 운동 노선을 둘러 싼 논쟁이 있었다는 것과 실제로 민중이 지식인들의 담론을 신봉했느냐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저자가 우려하는 프랑스 좌파 국가론의 영향은 거칠게 말해 남한이 식민지인가, 아니면 제한된 자율성을 가진 국가인가를 둘러 싼 논쟁이었으며 여기에는 풀란차스, 알튀세르의 국가론 연구자들이 실제로 한 몫 했다.

신좌파이론 수용,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
물론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적, 역사적, 사상사적 맥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최신 사상을 무작정 도입하는 통폐가 신좌파 이론의 수용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적 자유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점이 오히려 사회과학적으로는 중요한 사실이다. 기존의 주류 사회학 이론이 격동하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보수파 학자들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유린하는 군사정권의 횡포를 방관하고 있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대안적 사회이론 체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간과하고 있다. 즉, 여기에는 한국 진보운동권의 사상투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계급운동과 민족운동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저자는 계몽적 차원에서 현대 프랑스 좌파 이론의 배경과 내용을 앙리 르페브르, 피에르 부르디외, 알렝 투렌의 학문 세계를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 내용은 한국의 지적 균형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면에 논리적 단절을 무릅쓰고 프랑스의 지적 논쟁과 한국 학계의 생경한 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병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1968년에 선진 자본주의 사회를 휩쓴 청년의 반란과 지성사적 맥락을 연결시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현재 한국에서 기존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무력화시키고 있는 평범한 청소년과 시민의 촛불 집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외래 이론의 현실 적합성을 지식사회학적으로 고찰해야 된다는 기준은 저자 자신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교적 가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한국의 지적 정상화의 지표로 파악하는 저자의 시각은 치열한 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치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는 일본과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성공과 무관치 않으며 특히 일본 보수파의 캠페인과 결합돼 있다는 정치적 현실을 놓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에서도 동일한 사고 구조가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관심을 촉구하는 긍정적 효과도 가지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중도 우파의 사회과학적 문제제기 신선
총체적으로 보아 이 책의 가치는 생소한 프랑스의 사회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한국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저자가 프랑스의 68년 5월 혁명에 비추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시도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지식인 사회에서 사회학과 사회운동의 관계라는 고전적 논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인다. 저자가 중도 우파의 사회과학자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백하게 천명하며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도 독자에게 신선한 지적 충격을 주고 있다. 보수 논객의 내실화는 진보파에게도 경각심을 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지적 풍토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이종구/ 성공회대·사회학)

08. 07. 05.

P.S.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저자가 제시하는 중도우파 사회학의 계보는 에밀 뒤르켐에서 레이몽 부동으로 이어지는 계보다. 부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이며,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책은 <무질서의 사회학적 위치>(교보문고, 1990)이다. 그리고 이후에 소개된 책이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기파랑, 2007)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알랭 투렌 등의 좌파 사회학자들과 분할하고 있는 사회학의 이론적 지형은 피에르 앙사르의 <현대 프랑스 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92)에 소개돼 있다. 서지사항만을 확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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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7 23:55   좋아요 0 | URL
뒤르켐의 출생지가 알사스의 독어 불어 공용지역이었어요.랍비인 아버지는 독어로 아들을 불러서 뒤르카임이나 뒤르켐이 맞답니다.하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에콜 노르말 출신이네요.저는 고교 사회교과서에서 기계적 연대 유기적 연대 외우면서 처음 접한 인물.


그런데 뒤르켐은 마르크스나 베버와는 달리 사회사상사에도 잘 안 나오고 사회학사나 사회학이론서에만 나오는 게 특이해요.아마 그 자신이 대학에서 분과학문으로서 사회학을 정착시키려 했기때문에 넓은 의미의 지성사적인 의미에서 사회사상가로 취급되진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토크빌은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예요.<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을 읽었습니다.프랑스 혁명사의 고전이지요.을유문고의 토크빌 평전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8-07-08 00:21   좋아요 0 | URL
학부 2학년때 사회학강의를 들으면서 친숙해진 이름이고요, 저는 기든스의 <뒤르켐>을 읽었던 거 같습니다. 제 분야에서는 소쉬르하고 뒤르켐이 주로 같이 언급이 됩니다. 코저의 <사회사상사>도 뒤르켐을 포함하고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김종엽 교수의 <자살론> 해설을 읽으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토크빌은 아직 손을 못대고 있는 인물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08 00:41   좋아요 0 | URL
그 무렵 인물들은 다들 1848년에 대한 반응들이 볼만한데 토크빌,마르크스,엥겔스,게르첸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로쟈 2008-07-08 01:0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