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오늘자 신문을 펴들었다. 마침 어제 도서관에서 일부를 복사한 계간 <문화과학>(2008 여름호) 소개기사가 실려있기에 옮겨놓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새삼스레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고, 오전에도 잠시 그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다. '국가와 정치'를 특집으로 한 잡지의 글들과 좌담도 생각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경향신문(08. 07. 04) 2008년 대한민국,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플라톤 이래 이어져온 철학적인 화두이지만 촛불집회가 두 달 가까이 진행 중인 요즘 부쩍 많은 한국인들이 던지는 물음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사먹지 않으면 된다’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서, 또는 자신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온 몸이 흠뻑 젖는 경험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반면 한 언론사의 기자는 자신의 신문 사옥 앞이 촛불집회 시위대가 버리고 간 쓰레기로 넘쳐나거나 자사 현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정부는 청와대만 지키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2008년 한국의 국가는 어쩌다 ‘샌드위치’가 된 것일까.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국가는 지식인을 포함한 상당수 대중에 의해 강하게 ‘욕망’되고 있다. 촛불 대중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 요구 시위는 국가를 부정하기는커녕, ‘나쁜 국가’가 아니라 ‘좋은 국가’이기를 바라는 저항에 가깝다. ‘청와대만 지키는’ 국가를 꾸짖었던 그 기자도 나름대로 ‘좋은 국가’의 상을 그리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다만 양측이 바라는 ‘좋은 국가’의 내용이 달랐을 뿐.

그러나 현실의 국가는 두 가지 다른 요구 사이에 후자를 택했다. 지난달 27일 경찰 저지선을 조선·동아일보 사옥을 보호하는 선까지 확장하며 촛불집회에 대해 한층 강경하게 진압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해당 기자가 있는 언론사를 찾아가 위문했다. 그렇게 하는 데 큰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국가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문화이론 전문계간지 ‘문화과학’ 2008년 여름호(제54호)가 마련한 특집 ‘국가와 정치’가 그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어줄지도 모르겠다. ‘문화과학’ 편집위원 고길섶씨는 여는 글에서 “지금 국가가 문제인 것은 유독 이명박 정권의 국가여서가 아니라, 이전 민주화된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것은 “항상적으로 삶의 위기를 구조화하는 자본주의 국가이고, 더 광범하게 비극적 삶을 체제화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은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에서부터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국가론의 요체다. 시장의 효율,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국가는 규제를 최소화하며 작아질 수 있는 대로 작아져야 하지만, 그것을 해치는 무언가가 등장할라치면 단호하게 ‘치안’을 강조하며 개입한다.

이러한 국가의 상은 장·단기적으로 계속 이어왔다. 이 책에서 임동근 공간연구집단 연구원은 자유주의 통치성을 분석하는 푸코의 논의를 빌려와 자유주의-케인스주의-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꾸준히 유지되는 통치기제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이러한 국가 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들어선 모든 민주 정부에서 한 번도 부정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연속성은 “국가가 이른바 ‘공공선을 상징하든,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이든, 그것의 개입 없이 자본주의 사회는 한 순간도 재생산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화과학의 논의는 이진경, 정성진, 조정환, 곽노완 등 한국사회 대표적 좌파 이론가들의 좌담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를 넘어서자는 맥락애서 ‘국가, 자본주의, 코뮌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어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론과 베네수엘라 혁명 사례를 통해 국가에 대한 변혁 작업의 예들이 제시된다.(손제민기자)

08. 07. 04.

P.S. 보다 구체적으로 '대체 지금 대한민국이란 어떤 나라일까?'를 질문하게 하는 기사도 옮겨놓는다. 촛불집회에 평화주의자로 참가했다가 경찰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함민복 시인에 관한 것이다.

한겨레(08. 07. 05) 비폭력 외친 시인을 짓밟다니

전경1이 진압봉으로 그의 팔을 쳐서 쓰러뜨린다.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그를 뒤따라 오던 전경2가 방패로 어깨와 등을 찍어 다시 쓰러뜨린다. 앉은 채로 뒷걸음질쳐 도망가는 그에게 이번에는 전경3이 다가와 수평으로 눕힌 방패로 가슴과 관자놀이를 힘껏 가격한다.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져 신음하는 그에게 전경4와 전경5가 욕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하며 지나간다….

인터넷 한겨레(hani.co.kr)의 동영상 뉴스 ‘경찰 ‘무차별 폭력’ <한겨레> 생방송 요약’의 한 장면이다. 6월 29일 시청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야만적인 폭력에 소름이 끼치고 치가 떨린다.

피해자는 당시 과격시위를 벌이던 중이 아니었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그는 시민들에게 고립되어 있던 전투경찰 한 명을 구출해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평화주의자이며 시인이라고 안심시키자 전투경찰은 자기도 대학에 다니다가 입대했노라면서 울먹이더라고 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길 한복판에서 열 명 정도의 전경이 진압대원들에게 쫓기던 시민들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 비폭력을 외치며 다가서다가 전경이 벗어던진 철모에 얼굴을 맞고 코에서 피를 흘리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지하철 출구 쪽으로 비틀거리며 도망치던 그가 시위대를 쫓던 전경들의 먹이가 된 것이다.

이 불운한 피해자가 다름 아니라 시인 함민복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퍼뜩 든 생각은 ‘왜 하필이면 함민복인가?’라는 것이었다. 함민복이 누구인가. ‘한국판 <우동 한그릇>’이라고나 할 시 <눈물은 왜 짠가>의 시인이 아니겠는가. 설렁탕 한 그릇을 두고 가난한 모자와 배려심 깊은 식당 주인이 펼치는 감동의 무언극에 코끝이 찡해졌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혹시 그에게 진압봉과 방패를 휘두른 전경들 중에도 있지 않을까). 사십대도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강화의 버려진 집에서 시만 쓰고 사는 ‘천상 시인’이 바로 함민복이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긍정적인 밥>)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경계하는 사람,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뻘>)며 “말랑말랑한 힘”을 예찬한 이 평화주의자에게 야수적인 폭력이 웬말이란 말인가.

현재 그는 왼쪽 관자놀이 부분이 심하게 부은데다 정신도 혼미한 상태이고, 오른쪽 어깨가 결리고 허리 통증도 심해 거동이 불편한 처지라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전경들을 고발하고자 피 묻은 셔츠와 시청 응급진료막사에서 찍은 사진, 인터넷 한겨레 동영상 등을 피해자 진술서와 함께 제출해 놓았다. 시인으로 하여금 시 대신 피해자 진술서를 쓰게 만드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

‘꽃의 시위’(flower movement)란 말이 있다. 무력한 시인을 짐승처럼 짓밟은 저들에게 그가 쓴 시 한 편을 시위 삼아 들려 주고 싶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봄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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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7-07 08:56   좋아요 0 | URL
네, 동감입니다...

수유 2008-07-06 12:38   좋아요 0 | URL
기사일부 가져가요.. 시인의 쾌유를 빈다고 막상쓰려니 가슴 아프네요.

로쟈 2008-07-07 08: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래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