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과 국가폭력'(http://blog.aladin.co.kr/mramor/2160267)이란 페이퍼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주의적 국가이론'이 내게 떠올려주는 이름은 니코스 풀란차스(1936-1979)이다(알튀세르, 그람시와 함께 한동안 자주 언급되다가 국내에서는 '잊혀진' 이론가이다). 얼마전 한 대학원신문에 관련기사가 게재된 것이 그를 상기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일이지만 '국가이론'에 관한 책들이 앞다투어 나왔던 적이 있다. 사회과학 서적들이 여전히 대학가에서 읽히던 때의 일이다. 나는 풀란차스를 직접 읽은 적은 없고, 2차 문헌에서만 주로 보았지만 아래 기사를 읽으면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최근의 시국과 무관하지 않다. 기사는 학술저널 담비에서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rsec=&idxno=10089).

고려대 대학원신문(146호) 인용만 될 뿐 읽혀지지는 않는 이론가 풀란차스

이른바 ‘혁명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에서 ‘자본주의 국가이론’에 대한 논의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간간히 정치경제학이나 발전사회학에서 ‘개발국가론’을 필두로 국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는 상당부분 네오 베버리안들의 이론적 공헌에 힘입은 것으로, 이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자본주의’의 뚜렷한 속성 및 그것의 속살을 형성하는 계급관계에 주목하는 ‘자본주의 국가이론’이라 지칭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문제는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이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소멸되었을지언정, 한국의 자본주의 국가는 여전히 왕성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민주화 이후 ‘국가’의 역할, 운영, 그 외형에 투사된 다채로운 계급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졌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관한 이론들을 외우다시피 학습하다가, 정작 우리가 민주화되고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작동하게 된 현 시점에 와서는 ‘국가이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서구에서 더 이상 많이 논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덩달아 관심 없어하는 한국 학문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여기서도 예외없이 나타난다.



민주화이후,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걸쳐 민주세력들의 정부가 실패하는 것을 경험한 지금, 그리고 ‘노동’의 무기력함과 ‘삼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의 전방위적 위력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지금, 그리스 태생의 맑스주의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의 저작『국가, 권력,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른바 ‘상대적 자율성’의 이론가로서 혹은 알튀세르와 함께 ‘구조주의 맑스주의자’로서 풀란차스의 이름에 매우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해설서내지 논문에 언급된 ‘밀리반드와 풀란차스 논쟁’,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개념을 습득하는 데에 주력할 뿐, 그의 저작을 직접 읽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기자역시 글을 쓸 때, ‘자본주의 국가’나 ‘상대적 자율성’을 언급하면서, 몇 해 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떠듬떠듬 읽은 그의 초기저작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의 영문판을 기계적으로 '(Poulantzas, 1973)'으로 인용했던 기억이 있다.



영역이론에서 관계이론으로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 이론가의 이론내지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주저들을 꼼꼼히 읽어내야 한다. 풀란차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소개하는 그의 저작『국가, 권력, 사회주의』에서 전개되고 있는 풀란차스의 이론은 우리가 흔히 그의 이론이라고 알 던 것과 사뭇 다르다. 뛰어난 국가이론가이자 풀란차스에 대한 권위있는 해설서를 집필한 밥 제숍의 개념화처럼 풀란차스는 기존 자신의 ‘영역이론’이 ‘관계이론’으로 진화했음을 이 책에서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그의 출세작인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국가라는 정치적 상부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개념들의 복잡한 위계체계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 즉 특수한 생산양식에서의 국가의 영역이론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제숍의 지적처럼 국가는 자신을 위해 다양한 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권력을 획득하는 주체가 아니며, 국가를 초월해 자리잡고 있는 지배적 계급주체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도구적인 권력의 저장소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직하는 전략적 장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풀란차스는 권력은 관계적이라는 푸코의 지적을 상이한 인식론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수용한다. 계급갈등과 모순에 많은 방점을 둔 그는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국가는 헤게모니 분파의 정치적 책략에 유리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권력네트워크의 교차를 통해 형성되는 전략적 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인 국가
예의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국가’와 ‘경제’의 공간사이의 상대적 분리로(즉 정치와 경제의 형태분리) 논의를 시작하는(21p) 풀란차스는 먼저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에 있어서 물질적 틀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인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분업, 개체화, 법, 민족에 대해서 논술한다(61~162p). 맑스 특유의 ‘물신주의 비판’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적 분업에 따라 사람들을 계급이 아닌 법적-정치적 ‘민주시민들’로 개체화하면서도 민족의 이름으로 이들의 통일성을 구현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 후 그는 앞서의 물질적 틀을 만들어내면서도, 그에 영향받기도 하는 계급들과 계급분파들 사이의 세력관계를 고찰한다(162~204p). 자본주의 국가는 독자적인 정치현상으로 고찰되어야 하며, 상이한 국면에서 정치적 계급투쟁의 특유성과 관련지워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투쟁은 역동적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장치내에서 재생산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구조편향적이다’, ‘정치편향적이다’, ‘기능주의적이다’라는 풀란차스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많은 함의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후기저작까지 고려했을 때, 비판의 일정부분은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공부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그의 저작이 갖는 난점은 무엇보다도 ‘지독한 난해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고전이 쉽게 읽힌다면 그것도 좀 이상하다 할 수 있겠지만, 풀란차스 저작의 난해함은 도가 지나치다는게 기자의 판단이다. 일단 독해가 가능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하지만 설령 기자처럼 글의 절반 정도만 이해하더라도 지금 ‘한국의 국가’를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번역본의 절판’이라는 극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원우들에게 소개한다.(김경필 기자)

08.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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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1 00:24   좋아요 0 | URL
풀란차스가 왜 자살했는지 아시면 알려주세요.위키피디아에는 그건 안 나와 있네요.

로쟈 2008-07-01 13:17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찾아보시면 알려주시길.^^;

소경 2008-07-01 08:55   좋아요 0 | URL
"오히려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직하는 전략적 장이라는 것이다."는 오늘 사회를 꼭 찝어주는 군요. 응당 받아야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내용을 불식되고, 납득이 되지 않을 사항들을 정당화되게 하는 구도는 역시 국가의 전략적인 장에서 발효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네요......

로쟈 2008-07-01 13:18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론'만 가지고 현정부를 이해하려고 하면 애로가 많다는 뜻도 되겠죠...

han86866 2008-07-01 14:14   좋아요 0 | URL
카더라통신수준의 얘기라 올리기 민망하지만 풀란차스가 자살을 한것은 68이후 70년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맑시즘적 계급분석의 한계(사회계급스펙트럼의 다양화)와 계급혁명에대한 좌절과 회의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로쟈 2008-07-01 17:07   좋아요 0 | URL
이론가답게 자살 이유 치곤 좀 추상적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1 23:57   좋아요 0 | URL
그것 참...알 듯 모를 듯 하네요.70년대 들어서 스페인의 프랑코.폴투갈의 살라자르 등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다 죽어서 기쁠 듯한데...그리스 군사정권 때문인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