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약간 과음(?)을 한 탓에 오늘이 주말이란 걸 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봐야 '열심히 일한 당신, 주말엔 더 열심히!'족에 속하는지라(나름 천민이군!) 별로 득이 될 만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덕분에 주말 북리뷰들을 다소 뒤늦게 둘러보았다. 정신이 확 깨게 하는 책은, 이번주에도 없었다. 나올 만한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을 뿐이고, 덕분에 안 읽은 책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따름. 책마다 사정은 다 달라서 별로 읽을 일이 없어보이는 책이지만 그래도 리뷰는 챙겨두고 싶은 책도 있다. 이번주에는 김석수 교수의 <한국 현대 실천철학>(돌베개, 2008) 같은 책이 그렇다. 한겨레에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5808.html). 

한겨레(08. 06. 28) 우리들의 일그러진 실천철학

“우리의 철학은 우리의 현실 속에도 없었고,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철학 속에도 없었다.” 조선의 신문학사는 이식문화의 역사라는 임화의 주장이 숱한 문학연구가들을 번민케 한 것처럼, 한국 현대철학사도 그렇다. 서양철학이 한반도에 들어온 지 100여년이 지났거니와, 그 시발점이 되는 기간이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은 문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통의 단절이라는 ‘사상의 크레바스’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폭압적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혁명하는 심장과 개혁하는 두뇌”를 필요로 했으므로 현실-이론의 거리를 좁혀 치열한 성찰을 하도록 사유의 형식을 빚어냈으나, 민족주의에 과도한 부하를 얹게 됨으로써 수입된 서구 이론에다 작위적으로 당대 현실을 끼워 맞추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것은 철학의 근본 정신인 자유가 훼손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며 “현실의 한을 푸는 일에 철학이 동원되어 버리게 되면, 철학은 그 본래의 고유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기가 십상이다.” 자유와 비판 정신을 잃은 실천철학이 철학적 실천에 나설 때 어떤 결과를 불러들이는가. 지은이가 꼽은 문제적 인물은 열암 박종홍(1903~76)이다.

박종홍은 한국 실존주의의 효시라고 평가받는바 “어중간한 철학은 현실을 떠나버리지만 완전한 철학은 현실을 인도한다”라는 카를 야스퍼스의 문장을 인용하며 현실 참여를 부르짖었다. 6·25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그는 실존주의를 끌어왔다. 그는 무엇보다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홍이 내세운 ‘힘 있는 철학’은 현실의 모순을 관념적·주관적으로 극복해선 안 되며 ‘신체적 노작(勞作)’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실존철학의 주관성을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향내·향외(내향·외향)이며 “향내적인 자각을 통하여 무(無)에 부딪쳐 다시 향외적으로 돌아오는 창조의 길”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 실용주의, 실존주의의 한계를 긋고 이것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원전 분석을 통한 문헌학적 전문연구가 미흡했고, 학문의 본질에 대한 반성적 탐구에다 인접 학문과의 유대도 부족했다는 등의 한계가 있음에도 당대의 철학자들은 빈곤한 현실에 맞서 고군분투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박종홍이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박종홍의 철학적 행보는 자율이 아니라 억압, 활력이 아니라 권력,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앞세우는 데 다다랐다. “눈물 바가지를 부숴버리고 열등감을 벗어나, 새날을 위해 싸워야 하며, 전진해야 한다”면서 ‘유신은 민족 중흥을 실현하려는 과제’라고 서슴없이 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철학적 파탄은 그가 제출한 ‘힘 있는 철학’에서 도출된 것으로 건설·창조의 논리가 민족주의·반공주의·국가주의와 궤도를 같이한 점에 원인이 있다.

극도로 가난하고 불안에 처한 조국을 근대화하려면 힘이 필요하며 그것은 국민의 의식을 ‘개조’해야 한다는 정열은 그 자체 현실 부정의 논리이지만, 이를 추동했던 박정희 정권의 정책과 부신(符信)처럼 들어맞으면서 역설적으로 유신의 정신적 토양에 밑거름이 돼 버린 것이다. 그 극단에 국민교육헌장이 있는바, 현실의 모순을 혁파해야 한다는 부정과 창조의 정신이 “새로운 사회적 인간 형성, 새로운 민족의 창조”로 굴절되고 만다. 이를 이어받은 것이 전두환 정권 아래서 “우리에게는 저항해야 할 체제가 없고 다 함께 옹립해나가야 할 국가가 있을 뿐”이라며 국민윤리 교육론을 부르짖은 이규호와, 북한이라는 미친개를 때려잡기 위해 몽둥이(무력)를 준비해야 한다며 새마을 운동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상응혁명으로 일컬은 김형효다.

1·2부 가운데 앞부분이 이와 같은 한국 현대철학자들의 서구 실천철학 수용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들이다. 개인이 국가에 포섭돼 ‘자기 보존’(conatus essendi)을 위협받는 상황의 극명한 사례로 박종홍을 지목한 지은이는 그 대안으로 자율·인정·연대·자치의 개념을 제시한다. 칸트 전공자답게 그는 자신의 의지가 세운 주관적 원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하고 그 법칙을 존경하며 지키는 ‘자율’(autonomy)의 원리를 거듭 강조한다. “스스로 법칙을 세워 그 법칙을 스스로 수행하는 자율의 세계야말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 및 자립이 확보되는 사회”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종홍이 멸사봉공을 말했다면 칸트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 살아나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을 지지한 셈이다. 지은이는 이 밖에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의 재해석, 신합리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철학 사조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80년대 이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는 글들을 2부에 모았다.(전진식 기자)

08. 06. 28.

P.S. 서점에서 잠깐 책의 목차를 볼 때도 든 생각인데, '한국의 실천철학'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리뷰를 읽고나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표적인 '실천철학자'들에 대한 소개/비판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의 재해석, 신합리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철학 사조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80년대 이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는" 것이 어떻게 병치될 수 있을까?(그런 대입도 '실천철학'인가?) 교재형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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