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손에 들지 못하고 있는 책이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도서출판b, 2008)이다. 자세한 독해는 내달로 미뤄놓지만 일단은 리뷰라도 챙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3225.html).
한겨레(08. 06. 14) "종언도 결국 역사 속의 ‘반복’일 뿐”
일본의 사상가·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 주장으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역사와 반복>은 가라타니의 근대문학 종언론의 출발이 되는 저작이자 그 종언론의 진화와 확장을 살필 수 있는 저작이다.
이 저작은 다소 복잡한 경로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 책의 원텍스트는 <종언을 둘러싸고>라는 이름으로 1990년에 출간된 바 있는데, 1989년께 쓴 문학비평 논문들이 수록된 책이었다. 1989년이면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때였고, 일본에서는 쇼와 천황이 사망한 해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부류가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로 시대를 규정하던 때였다.
가라타니는 2000년대에 들어와 자신의 저작을 수정·증보해 다섯 권의 ‘정본집’으로 묶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2004년 다섯번째 권으로 출간된 것이 <역사와 반복>이다. <역사와 반복>에는 <종언을 둘러싸고> 말고도, 1990년대 후반에 쓴 두 편의 역사해석 논문이 포함됐다. 가라타니는 이 증보과정에서 원텍스트들을 대폭 고쳐 썼다. 따라서 <역사와 반복>은 2004년 시점에 쓴 텍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런 재편집 과정을 거쳤다 해도 이 저작에는 어쩔 수 없는 내적 균열이 있다. <종언을 둘러싸고>에 수록됐던 글들에는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일본 작가들과 대결함으로써 ‘근대문학의 종언’을 끌어내는 비평가 가라타니가 있다. 이와 달리 역사해석 텍스트에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주제와 씨름하는 사상가 가라타니가 있다. 이 두 모습이 균열된 채로 결합해 이 저작은 ‘종언을 포함한 반복’이라는 역사철학적 관점을 보여준다.
가라타니가 이렇게 역사에 대한 나름의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준거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하 ‘브뤼메르 18일’)이다. 마르크스의 이 저작은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1848년 2월혁명 뒤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다시 쿠데타를 거쳐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되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고찰한 글이다. ‘브뤼메르 18일’이란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날을 가리킨다. 이 저작은 ‘역사의 반복’이라는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저작이라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그 반복의 문제를 이 저작 첫머리에서 먼저 밝히고 있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할 때에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를 반복했다면, 루이 보나파르트는 다시 숙부 나폴레옹을 반복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의 겉모습만 흉내내는 광대짓을 하고 있다고 비꼬듯 쓰고 있는데, 가라타니는 여기서 그 풍자적 분위기를 걷어내고, ‘반복성’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이 저작이 “역사가 일종의 반복강박 안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반복강박이란 말은 본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용어로 만든 말이지만, 가라타니는 역사의 반복강박을 이해하는 데 굳이 프로이트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을 정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반복강박은 경제 영역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호황과 침체를 반복하는 ‘경기순환’이야말로 반복강박의 가장 적실한 사례인데, 가라타니는 정치 영역에서도 이 반복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때 경제의 반복은 정치의 반복의 조건을 이룬다. 일례로 1851년의 공황 때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정치적 반복을 설명하기 위해 가라타니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브뤼메르 18일>에서 분석되는 ‘보나파르트주의’다. 보나파르트주의는 노동자계급/자본가계급과 같은 적대적 계급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압하지 못하고 팽팽하게 균형을 이룰 때 등장하는 독재적 권력의 성격을 가리킨다. 더 중요한 것은 보나파르트주의가 보통선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민의 보통선거를 통해 독재 권력이 성립되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20세기의 파시즘들, 곧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나치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이 모두 이 보나파르트주의의 변종이라고 말한다. 또 미국 대공황기에 집권한 루스벨트 대통령도 보나파르트주의적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렇게 보면 보나파르트주의는 60년 정도를 주기로 하여 다시 등장한 셈이 된다. 이런 정치의 반복을 포함해 역사의 반복이 일국적으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나타난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그런 반복 속에 문학의 반복도 있다고 가라타니는 암시한다. 가라타니의 결론은 이렇다. “내가 생각하기에 ‘종언’은 역사에서의 ‘반복’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명섭 기자)
08. 0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