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마음산책, 2006)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의 소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2003)이 근간될 예정이다. 러시아어 고유명사의 교정 일 때문에 원고를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가령 '올리가 몰리소브나'를 '올가 모리소브나'로 고치는 일이 그 '교정'이다), 부록으로 실린 대담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미리 옮겨놓는다. 한번쯤 음미해볼 만하다. 대담자인 이케자와 나츠키는 <이라크의 작은 다리를 건너서>(달궁, 2003)의 저자다.   

■ 사회주의는 인간을 상품화하지 않는다

이케자와 ‘사회주의’라는 말은 이제 시들해진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역시 저는 젊었을 때 사회주의를 믿었고 이상주의의 깃발로서 사회주의는 분명이 있었어요. 이 책에서는 그것을 단점도 포함해서 자세히 쓰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알제리에서 온 아이가 자신의 나라가 해방되어 식민지에서 벗어나게 되어 돌아가잖아요. 식민지로부터의 탈피라든가, ‘자유’와 ‘해방’이라는 말이 이렇게 빛을 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요네하라 최근 이라크의 전쟁 상황이 좋지 않고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진 미국의 백악관에서 그 옛날, 프랑스에서 상영금지가 되었던 <알제리 전투>가 상영되었다고 하는데, 그 <알제리 전투> 영화를 보면 언제나 알제리의 알렉스를 떠올립니다. 영화 마지막에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획득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그때 프라하의 학교에서 기뻐했던 일이 떠올라요. 베네수엘라의 게릴라의 아들은 부모님과 귀국한 뒤 바로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소리 내어 울었어요. 소련이라는 나라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국의 일원적 지배가 아니라 그것에 대항하는 존재가 있음으로써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 운동체가 아주 활발하게 활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이 이상한 짓을 하면 소련이 뭐라고 하고, 소련이 이상한 짓을 하면 미국이 뭐라고 하는 냉전시대는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좋은 면도 있던 것 같습니다.

이케자와 적어도 자본주의적인,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는 것을 체크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구조라는 것은 기능하고 있던 거죠. 점점 무너졌지만요.

요네하라 그리고 예를 들면, 발레같은 예술이 서방으로 가면 상품이 되어버리죠. 상품이 되어 교태를 부리며 망가져 가요. 소련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리고 재능에 대한 오해와 질투가 거의 없었어요. 세계 최고의 첼로 연주가라는 로스트로포비치의 통역을 한 적이 수차례 있는데, 그가 망명한지 16년이 되었을 때, 죽어도 좋으니까 러시아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는 콘서트가 끝난 뒤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우는 겁니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은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좋아하고 지지해줬는데, 서방으로 온 순간, 엄청난 방해와 질투가 있고, 자신은 이러한 세상을 몰랐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재능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죠.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 들어가서 자신은 별로 연습하지 않는데도 아주 잘 켜고,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도 자신보다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거라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지만 이것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기에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인 거죠.

이케자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나요?

요네하라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프라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는데, 노래나 그림이 뛰어난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당신들 일인 양 호들갑스럽게 기뻐하고 학생들도 그 아이와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공기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 아주 행복해지거든요. 열등감을 갖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아주 기뻐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 느낌이 일본으로 돌아온 순간 없어졌어요. 종이에 써진 시험지로 모두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잖아요. 객관식이나 ○×로, 누가 대답을 해도 똑같은 답이 되요. 자신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각을 갖지 않도록, 절대 갖지 않도록 일본의 교육은 만들어져 있어요. 기계도 채점할 수 있는 시험을 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은 개개인이 모두 다르니까 그것을 발견해주는 것은 선생님과 반 학생들의 역할이죠.

이케자와 하긴 그것이 이 나라의 답답한 점이죠. 경쟁사회가 지닌, 사람이 자로 측정된다는 전제의 답답함. 모두 숫자로 바뀌어 버리죠….

요네하라 사람을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점이 사회주의의 좋은 점 같습니다.

갑자기 왜 이 대목이 생각이 났나 짚어보니 아침에 읽은 서경식 교수의 칼럼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의 눈'에 연재된 '인간의 ‘기계화’에 저항하기 위하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1276.html)에서 필자는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 2007)의 서문을 한번 더 떠올리고 있는데, 아래의 대목이다.

“… ‘기계화’ ‘야만화’의 추진력은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적인 경쟁원리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원리가 관철되는 사회에서는 학력이 살아남기와 사회적 상승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경향에 작금의 신자유주의적인 조류가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든 업적을 수치화하고 단기간에 평가하며, 그것으로 불합격 낙인이 찍힌 사람은 무자비하게 낙오당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원칙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라 아마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한국의 독자에게 읽히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을 ‘기계화’하고 ‘야만화’하는 추세에 대한 저항을 꾀하는 것이므로. … 한국 국민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과 시민혁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과는 다르다고 나의 한국 지인들은 말한다. 그러기를 바라지만 과연 안심해도 괜찮을까? 한국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한 인간의 ‘기계화’ ‘야만화’로 발밑의 대지가 급속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요네하라 여사의 발언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기계도 채점할 수 있는 시험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알다시피 지난달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국단위 일제고사가 치러졌는데, 그 또한 기계로 채점하는 시험이었을 것이다. 이미 OMR 카드 등을 이용한 시험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부터도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은 일이다! 편의상으로나 여러 가지 사정상 그게 불가피하다 치더라도 그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상실한다는 것은 얼마나 '교양 없는' 일인가. 아이의 시험성적에 일희일비하는 대다수 학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무엇이 진짜 교육인가에 대해서...

08. 04. 13.

P.S. 책은 <올가의 반어법>(마음산책, 2008)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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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4-13 22:20   좋아요 0 | URL
서경식 씨가 얼마 전 한국은 이제 민주화 경력이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며 개탄하던데...참..착잡하더군요.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은 정말 대단하던데요.역시 동유럽이나 구 소련 권에 대한 책들에 대한 좋은 정보가 많아서 좋더라구요.로스트로포비치의 회고는 경청할 만하네요.대체로 망명한 공산권 예술가나 지식인... 하면 뭔가 공산권을 비난할 건수가 없나 하고 그런 식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데...로자 님이 요네하라 여사의 책의 교정을 보게 되었군요.그런데 이 분은 좀 일찍 저 세상에 가셨더군요.아직 한참 일할 나이인데...

로쟈 2008-04-13 22:27   좋아요 0 | URL
네, 그게 좀 애석한 일입니다...

사량 2008-04-15 12:59   좋아요 0 | URL
'집값'과 '자녀의 학벌'에 미쳐 있는 이 나라 "대다수 학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볼"지 의심스럽습니다. -_-;

로쟈 2008-04-15 21:42   좋아요 0 | URL
자녀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