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부러 대형서점에 가서 구입한 책은 김철의 <복화술사들>(문학과지성사, 2008). 문지스펙트럼으로 나온 책인데(이 시리즈는 정말 뜸하게 나온다!) 어지간한 서점엔 들어오지도 않기에 제발로 찾아갔던 것. 사실 출간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지난주 한겨레21 기사를 통해서였다. 생각난 김에 그 기사와 저자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한겨레21(08. 03. 14) 일본어로 쓰인 조선문학의 정체

“(전선으로 물건을 왕복한다는 이야기를 죽을 때까지 믿은 어머니는) 내가 경성에 가 있던 5년 동안 수도 없이 전선을 바라보며… 아들 물건이 전선에 매달려 있지나 않을까 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1942년 한설야의 <피>라는 소설은 전선을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를 잘 보여준다. 염상섭의 소설 <전화>에서는 ‘덕률풍’(telephone)이 갈등을 조장하고 해결하는 중요한 물품으로 등장한다. “네모반듯한 나무 갑 위에 나란히 얹힌 백통 빛 쇠종 두 개”는 웬 건지 삼백원이나 하더니 기생이 전화해 남편을 불러내는 “난장 맞을” 것이다가 나중에 뜻밖의 횡재의 물건이 된다. 소설에서 식민지 시대의 풍경을 찾아 읽은 <복화술사들-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문학과지성사 펴냄, 문지스펙트럼 5-019)이 건져올린 이야기들이다.

책에는 국문학자이면서 ‘국어의 순수성과 단일성’을 공격해온 저자의 주장이 알기 쉽게 녹아 있다. 골치 아픈 역사 해석 문제는 거둬두고(저자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집진이다), 저자가 국문학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솔깃하다. 일제시대에 식민지 작가에 의해 일본어로 쓰인 소설은 한국 문학인가 일본 문학인가. 그 어떤 문학도 아닌가. 지금도 ‘성역’으로 지켜지고 있는, 한국문학이 한국인에 의해 한글로 쓰인 문학이라는 상식은 1936년에도 있었다. 잡지 <삼천리>는 ‘조선 문학의 정의’라는 특집 기사에서 ‘조선 문학은 조선글로 조선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여 쓴 것’이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대표 문인 12명에게 묻는다.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암흑기에 꿋꿋이 지켜진 신념이 아니라 통념과 달리 이 시기 ‘제국’의 필요에 의한 ‘위계화’ 덕에 조선어 착취가 심하지 않았다는 논의와 함께) 그는 위의 이 질문에 뭐라고 정확히 답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정의에 따르면 “일본어로 쓴 수많은 작품들은 암흑 속으로 잠기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로 연구하는 자의 ‘순박함’에서 연유하는 듯하다. 그는 더불어 이 시기가 ‘암흑기’ ‘공백기’가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 문학의 다른 가능성들이 모색되는 역동적인 시기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것들은 민족과 모국어에 대한 비겁한 배신 행위로밖에는 기억되지 않지만, 그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뜻밖에도 전혀 다른 모습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글의 맨 앞에 인용한 한설야의 <피> 역시 일본어로 쓰인 작품이다.

장혁주가 있다. 그는 식민지 시기 최초로 일본어로 소설을 써서 일본 문단에 데뷔한 작가다. 데뷔작은 좌익 문예지 <가이조> 현상 공모에 당선된 <아귀도>. 그의 등장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 문단에서 ‘지주 계급과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에 시달리는 조선 농민의 비참한 삶을 고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후의 문제작은 양쪽 문단에서 외면당하고 지금은 ‘친일문학론’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자는 “제국의 지배 아래서 제국의 언어로 발언하는 피식민지인은 일종의 복화술사(複話術師)”라고 말한다. (장혁주에 뒤이어 일본 문단에 데뷔한) 김사량이 쓴 <향수>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이 소설들의 상황을 은유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현’은 (망명한) 누이의 안내로 북경의 북해공원을 관광하던 중이었는데 누이는 저쪽 일본 군인이 나타나자 공포에 사로잡힌다. 가까이 가보니 일본 군인은 현의 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군인과 일본어로 이야기하다가 놀라 도망가는 누이를 발견하고는 ‘기다려’라고 말한다. 일본어였고 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일본어로 창작한 동기를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널리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장혁주)라고 한 작가들의 비극적인 운명인 셈이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하려니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한 김동인, 최초의 한글소설 <혈의 누>를 연재하기 전 한자에 조선말 음을 단 기이한 소설을 쓴 이인직. 이런 고뇌를 거쳐 근대 한국어가 만들어졌다. 한국어는 낯설고 ‘외래적’인 것이었다. 한국말이 수용한 근대화가 아니라 한국말이 근대화의 산물이었다.(구둘래기자)

부산일보(08. 03. 15) '복화술사들' 김철 연세대 국문과 교수

나는 '국어의 순수성' '국어의 단일성' 따위의 말을 결코 믿지 않으며, 더구나 '국어의 우수성'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보기를 '돌같이' 합니다."

'복화술사들-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문학과 지성사/6천원)을 쓴 연세대 국문과 김철 교수의 말은 거침이 없다. 그의 책을 읽어내려가면 초창기 근대소설에서 한글이 차지한 위상이 너무도 초라했음에 놀랄 수밖에 없다. 한글이 세종대왕 이래로 쭈욱~ 지금과 같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음을 믿는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한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왔던 백성들에겐 상실감마저 안겨준다. 그의 언변은 상대방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는 고려하지 않은 듯 매몰차다.

"한국어가 뭔데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되레 머쓱했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되 쓰기는 조선글로 썼다'는 김동인의 고백과 순한문에서 순한글을 거쳐 영어로 일기를 쓴 윤치호의 고백이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여기서 설명이 조금 필요하겠다. 윤치호는 4년 남짓 순한글 문체로 일기를 쓰다 1889년 12월 돌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한글이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더랬다).

이어지는 그의 말. "한문이 제1 언어였던 윤치호 같은 조선 사대부에게 한글은 되레 어려웠을 겁니다. 윤치호는 한문으로 표기하는 게 더 쉬웠을 거고, 일본어를 통해서 소설을 접했을 김동인도 일본어로 구상하는 게 더 쉬웠겠죠. 근대 한국어와 한글은, 근대와 처음 대면했던 모든 한국인들에게 근대가 그러했듯이 낯설고 외래적인 것이었죠. 근대문학초창기 작가들의 한국어 글쓰기는 실상 외국어로 글쓰기와 다를바 없었지요."

그래도 한글이 어려운 외국어처럼 다가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모든 언어는 배우기 어렵습니다. 쉽다 어렵다의 문제를 떠나서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한문의 언어적 지배력이 붕괴됐고, 그 틈에 새로운 언어들이 그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경합했다는 게 중요하죠. 어떤 표기체계들이 우위권을 잡느냐의 문젭니다."

한글도 영어 일본어 등과 함께 한자의 독점적 지위가 붕괴된 틈에 경쟁하는 '새로운' 여러 언어 중의 하나였다는 말로 들렸다. 허망하긴 하지만 결국 권력과 언어의 문제였다. "언어가 권력입니다. 언어 자체의 내적인 원리가 아니라 권력 자체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거죠. 서울말이 표준어인 것은 서울이 가진 권력 때문이고, 영어가 세계공용어인 것도 권력 때문입니다."

이광수의 소설 '재생'에서 여주인공 순영이 백만장자인 백윤희의 초대를 받고 별장에 간 날 거기 모인 남자들을 보고 혼자 속으로 하는 품평이 그랬다. '윤은 못난 듯하고 음흉해 보이고, 최는 남자다우나 더퍼리다. 그런데 백은 라운드(둥글고) 스무우스(미끈하다). 진실로 애리스토크래틱(귀족적)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한국어 단어로, 긍정적인 부분은 영어 단어로 사용한 이광수의 작품에서 영어의 우월적 지위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가.

도대체 그는 뭘 말하려고 한 걸까? "'한국어는 순수하지 않은데, 다른 언어는 순수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만의 순수함과 단일함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낳고 남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과도한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진보적인 바탕입니다."

책 제목이 '복화술사(複話術師)'다. 일본어로 글을 쓴 조선 작가들에게 그가 붙여준 이름이다. 조선어와 일본어, 두 개의 혀를 가진 자들이다. 국어와 국문학의 정체가 실로 의심스럽다는 그의 일관된 주장과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는 그의 위치도 아마 복화술사의 비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지 모른다. '아슬아슬한 게임에서는 그들 스스로도 분열되고 파멸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모어의 자연성, 국어의 정체성, 국민 문학의 경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가 된다.' 그런 칼날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상헌기자)

08.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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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8-03-22 01:0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요즘 "'국어의 순수성' '국어의 단일성' ... '국어의 우수성'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며, 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까요? "국어와 국문학의 정체가 실로 의심스럽다"는 문제의식이야 한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많이들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오히려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 톤만 높여서 되풀이하는 모양새가 수상해 보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필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들도 조금 유난을 떤다는 느낌.-_-;

로쟈 2008-03-22 01:08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건 책에 묶인 글들이 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새국어생활>에 연재됐었다는 사실인데요, 저자도 좀 의외였던 것 같습니다. 책은 주장보다는 '팩트'들이 나열돼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언젠가 고종석의 책에 발문을 쓰기도 했는데, <감염된 언어>와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량 2008-03-22 01:18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제망매]에 발문을 썼을 겁니다. 지금의 김철 교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랑말랑하고 센치한 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로쟈 2008-03-22 21: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