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의 박석무 원장과 한국문학번역원의 윤지관 원장이 번역의 의미와 두 번역원의 과제 등에 대해서 나눈 대담을 스크랩해놓는다. 눈길이 가는 건 '번역에 대한 처우와 번역가 양성' 쪽이다. 우리 고전과 문학 번역에만 한정시킬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08. 03. 10) "우리고전 세계에 알리려면 두 번역원 협력해야죠”

한국고전번역원이 지난해 12월 공식 출범했다. 박석무 초대 원장이 부임해서 그동안 민족문화추진회 이름으로 해 왔던 고전 국역 사업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고전의 대중화·생활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애쓰고 있다. 한편 지난 2001년에 문을 연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학작품의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의 해외 소개에 주력하고 있다.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장과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이 지난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나 두 번역원의 현안과 상호 협력 방안, 번역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 및 개선 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 번역의 의미와 고전의 세계화

박석무(이하 박): 먼저 번역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얘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사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전쟁과 독재의 회오리 속에서 우선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다 보니 삶의 질을 논할 수 있는 바탕은 매우 취약했다. 70년대 이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비로소 문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같은 맥락인데, 2001년에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것이라든가, 그에 앞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 국역 사업을 펼친 것은 역시 삶의 질과 문화를 찾는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시대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지관(이하 윤): 박 선생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좀 더 보충하고 싶다. 문화의 측면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일방적으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처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쌍방향적 소통의 중요성이 좀 더 부각되게 되었다. 양쪽 다 넓은 의미의 번역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40년 전부터 민족문화의 현대화 작업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 한국문학번역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이 긴밀히 협조해야 할 분야가 바로 우리 고전의 세계화 작업이다. 사실 현재의 고전 번역 수준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고전 번역은 시, 문,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이 두루 결합된 종합학문에 가깝다. 그만큼 까다로운 것이다. 다산 같은 걸출한 학자가 거의 외국에 번역돼 있지 않은 것은 그런 어려움 때문이겠지만,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다. 다산을 비롯한 소중한 우리 고전의 해외 소개를 위해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윤: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학번역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기관이지만, 고전번역에 대한 지원 역시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지금은 인문·사회 분야만이 아니라 한국어로 된 모든 텍스트의 해외 번역 및 소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문 고전을 제대로 한국어로 옮겨 놓은 게 드물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한국고전번역원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본다. 2003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고전 번역 권장도서 100권의 목록을 작성, 발표한 적이 있는데 사실 목록 작성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맡는 식의 분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 번역에 대한 처우와 번역가 양성

박: 번역이 어려운 것은 양쪽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느 한쪽만 능통해서는 훌륭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번역을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평가하는 데 인색하다. 내 얘기를 해서 안됐지만, 내가 번역한 다산 책들을 참조해서 쓴 논문들이 숱하게 나왔다. 그것으로 박사 되고 교수 되는 이들은 많아도 내 번역은 학문적 업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내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학진에서는 번역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도록 제도를 만들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도 성균관대나 고려대 등과 협력관계를 맺어서 번역을 연구업적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윤: 저 역시 영문학자이면서 번역도 하는 처지에서 박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제대로 된 번역을 하나 하는 데 웬만한 논문 몇 편 쓰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번역이 기초학문이라면 논문은 일종의 실용학문이라 할 수 있다. 번역의 바탕이 있어야 논문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각 전공 분야의 학자 중에서 유능한 번역 인력이 나올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돼 있는 형편이다.

박: 번역이 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질 높은 번역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그러기 위해 시급한 것이 번역자 양성이다. 나는 한국고전번역원장 일을 맡으면서 어떤 사업보다 번역자 양성과 교육에 치중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당장 몇 권의 번역서를 내는 것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번역 역량을 갖춘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국의 한학자들을 수배해서 그들이 젊은 세대를 직접 교육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윤: 저 역시 처음 한국문학번역원 일을 맡았을 때, 임기 동안 당장 드러나는 성과가 없더라도 번역가 양성을 위한 토대는 마련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외국인 번역자 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영어에 10명 이내, 불어와 독일어도 각각 다섯 명을 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9월 가칭 번역아카데미라는 번역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얼마 전에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 번역 평가와 국가적 번역 관리 시스템

윤: 역량 있는 번역가 양성과 함께 필요한 것이 기존 번역에 대한 평가 작업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영미소설번역평가 사업을 시행한 적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을 맡고 나서도 평가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우선 영어로 번역된 소설 50종과 주요 시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하기로 했다. 소설에 대한 결과는 이미 나와서 곧 공표할 예정이고, 시 부문의 결과도 올해 말까지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 한국고전번역원 역시 번역 평가는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예산도 필요하고 평가 전문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큰 일이다. 올해 안에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윤: 한국문학번역원은 우리 문학과 문화의 해외 번역 소개에 관한 유일한 정책기구로 구실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번역에 대해서야 어느 정도 역량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는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국립극장과 관광공사,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번역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박: 그 때문에 유관 기관끼리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만 해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국사편찬위원회, 학술진흥재단 등과 사업 중복 여부와 용어 통일 문제 등을 논의할 협의체가 필요한 실정이다. 더 나아가 북한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과 협조관계를 맺을 필요도 있다. 특히 북한과는 양쪽의 번역 역량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회가 닿으면 북한 사회과학원을 방문해서 쌍방의 고전 번역 성과물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도를 논의하려 한다.

윤: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에서도 북한과 협력할 일은 많다고 본다. 북한은 특히 과거 소련 및 동구권 국가 출신 번역자들을 양성해서 우리 고전을 번역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쪽의 유능한 한국문학 번역자들은 북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전남대 법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3, 14대 국회의원과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성균관대 석좌 초빙교수로 있다. 번역서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산문선> <역주 흠흠신서>(공역) 등이 있고, 저서로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1, 2>가 있다.

■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번역서로 <톨스토이냐 도스토옙스키냐> <오만과 편견>(공역) <이성과 감성> 등이 있고, 저서로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과 평론집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리얼리즘의 옹호> 등이 있다.

08.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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