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저호우(리쩌허우)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작년 봄 기사인데,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정사'란 타이틀에 비하면 판매실적은 매우 저조한 듯하다(나로서도 개인 도서관이나 마련되어야 꽂아둘 수 있을 듯하다).

한겨레(07. 03. 16) “조조는 영웅, 유비는 배신자”

“‘위지 동이전’만 보고 우리 고대사를 얘기할 수 없어요. <삼국지> 전체를 봐야 위지 동이전이 제대로 보입니다.” 공자님 말씀이지만 <삼국지> 완역자의 말이라 제대로 힘을 받는다. 네 권으로 나온 한글판 <정사 삼국지>(민음사)를 번역한 김원중(45) 건양대 교수(중국언어문화학과). 그는 중국의 24사를 번역해 우리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국가사업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학자 200여명을 동원해 <24사 전역> 88권을 낸 것을 생각하면 우리쪽은 미흡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조조의 위가 아닌 유비와 제갈량의 촉을 정통으로 삼음으로써 역사흐름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최근에 말썽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비틀리기 이전의 ‘원본 삼국지’를 갖게 된 셈이다. 중국의 한 평자는 <삼국연의>가 ‘칠실삼허’라지만 김 교수는 ‘삼실칠허’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는 명장면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관우가 술이 식기 전 화웅의 목을 베는 장면과 천리를 단기로 달리며 다섯 관문의 다섯 장군을 베는 장면,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유비를 구하는 장면,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화살을 빌려오는 장면과 남만의 맹획을 칠종칠금하는 장면 등은 허구라는 것. 정통성을 촉에 두면서 빚어진 현상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처럼 여긴다는 것.  

서진(西晉)의 진수(233~297)가 마흔여덟에 완성한 <삼국지>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은 기전체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와 함께 3대 중국 고대사로 꼽는다. 김 교수가 저본을 삼은 것은 1959년 중화서국의 표점본. 마오쩌둥이 중국 통일 뒤 사학전공자를 소집해 작업한 것이다.

 

 

 

 

이번 한글본은 1994년 초역본을 낸 이래 10여년에 걸쳐 재번역한 것이다. 김 교수는 <사기열전>, <사기본기>, <정관정요> 등을 번역하면서 안목을 높인데다 새로운 학문성과를 반영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번역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수십번도 더 들었다는 그는 교정 보는데만 1년반이 걸렸다고 넌더리를 냈다. 들인 품에 비해 빛이 나지 않는 일이 번역일. “논문이 100이면 번역은 50밖에 연구실적으로 인정을 안해 줘요. 힘은 거의 네 배가 드는데 말입니다.” 관점이 통일돼야 하기에 공동작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지론이어서 번역작업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고전 전공자가 적어 제자들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잘 자라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송지의 주석을 왜 번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걸 왜 해야 하느냐고 힐문했다. “그것이 소략한 원본을 풍부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번잡하고 초점이 없어요. 게다가 엄밀성이 떨어지고 흥밋거리를 많이 삽입해 원전의 의미를 흐렸다고 봅니다.” 한글판은 배송지가 아닌 김원중의 연구결과와 관점이 들어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배었다.

“우리도 번역에서 정본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1800년대에 이뤄진 제임스 레게의 유교경전 번역본을 정본으로 널리 인용하고 있어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것을 정본으로 삼아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논어만 해도 서로 인정하지 않아 번역본이 50여종이나 돼요. 그러니 엉뚱하게 양백준이나 리저허우 같은 이의 것이 판을 치는 거죠.”

다른 사서를 일일이 찾아서 만든 ‘삼국지 관직사전’은 독자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인덱스를 못 넣은 게 못내 찜찜하다면서 다음판에라도 넣고 싶다고 말했다. “조조?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전략이면 전략, 행정이면 행정, 냉철한 현실감각에다 시인이기도 하지요. 유비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고 배신자에다 부화뇌동자에 불과하죠. 그런데 영웅이라니요.” (임종업 선임기자)

08. 01. 21.

P.S. 참고로, 김원중 교수의 최근 번역은 <삼국유사>(민음사, 2008)의 개역판이다. 을유문화사판 <삼국유사>(2002)를 개정한 것인데, 이젠 <삼국유사>의 경우에도 '정본'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론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글방, 1999)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저렴한' 판본으로 읽어볼까 싶다.

한편, 기사에서 언급된 양백준과 리쩌허우는 각각 <논어역주>(중문출판사, 2002)와 <논어금독>(2006)을 가리키는 듯하다. 저자는 이들 중국학자들의 역주가 번역된 사실을 개탄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굳이 불쾌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논어역주>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논어금독>의 경우 인상적인 건 같은 중국어임에도 시대를 격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이 필요하다고 보는 저자의 태도였다. 가령, 리쩌허우는 '인(仁)'의 경우만 하더라도 '인덕(仁德)', '인애(仁愛)', '어진 마음(仁心)' 등으로 옮겨주며 '예(禮)'는 '예법(禮法)'으로 옮긴다. 과연 50여 종이 넘는 <논어>의 국역본 가운데 그렇게 '타자화'해서 옮긴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