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미술 전시회장에서 본 작품을 소재로 한 시를 옮겨놓는다. 작품의 제목이 '유리컵 안의 생'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여러 유리컵 안에 붉은 액체들이 들어 있었고 그 중 하나에는 깨진 유리들이 들어 있었던 듯하다. 그에 대한 감상을 적은 것이다.
![](http://images.google.co.kr/url?q=http://www.wishlist.com.au/images/Products/FH01/grgourmet5pcset_L.jpg&usg=AFQjCNGbNFX_n98qsYRPOp1TB3PwBcj96g)
유리컵 안의 생
안국동 어딘가에서 한 여자는 유리컵마다에 붉은 포도주를 담아 진열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스물넷이나 서른셋의 유리컵일는지도 모른다. 유리컵들은 저마다의 앙칼진 꿈으로 무장하고 깨진 유리 조각들을 제 몸의 변두리로 밀쳐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간혹 속살을 파고드는 미물들을 껴안고 오래 고민할는지도 모른다. 생의 바깥과 안을 구별하느라 오래 주저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널브러져
주정할는지도 모른다. 안국동 어딘가에서 한 남자는 유리컵 속에 담긴 붉은 포도주가(아니면 또 어떤가) 내내 남의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고만고만하게 생을 담은 유리컵들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배회하기도 하고 차가 막히게도 하고 취해 쓰러지기도 한다는 사실에 미련이 남을는지도 모른다. 하여 유리컵들은 저마다의 오해로 제 몸을 지탱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는 너무도 투명하여 믿어지지 않는다.
안국동 어딘가에서 한 여자는 유독 한 유리컵에 깨진 유리 조각들을 담아 놓을는지도 모른다. 유독 맨 정신의 유리컵은 온통 제 살점을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유독 한 유리컵의 생만이 유난한 것일까. 나는 내내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국 언제부턴가 나 또한 인육(人肉)을 먹고 있었던 거라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이 너무도 분명한 사태가 믿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08. 01. 19.
P.S. 유리컵 이미지들은 시에서 묘사하고 있는 작품과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