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8/01/021162000200801100693008.html). 올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이상수의 <한비자, 권력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2007)이었고, 이 글은 그 독후감이다. 분량 때문에 못다 적은 말들도 있어서 따로 리뷰를 쓰려고도 했지만 다른 일들에 밀리고 있다. 대저 리뷰를 쓰는 일이 생계를 책임져주지 못하는 탓이다. '못 쓰면 말지'란 태도는 아마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겠다... 

 

한겨레21(08. 01. 10) 목숨이 붙어 있다면 개혁가가 아니다

중국에 ‘내법외유’(內法外儒)란 말이 있다고 한다. “겉으로는 유학의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법가의 사상과 학술과 방법론을 신봉”하는 걸 가리킨다. 이른바 표리부동이다. 스스로를 진시황에 빗대기도 한 마오쩌둥이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숭상한 것도 법가라고 하니 중국사를 이해하는 데 유가, 도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법가가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중국만 그러할까? ‘동방예의지국’은 어떠한가?

얼마 전 대선에서 40% 가까운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침묵’으로 표시했다. 일부 정치적 냉소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겠다. 마땅한 후보? 국민을 움직이고 국가조직을 이끌 진정한 리더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후보들만의 탓이겠는가. 자업자득은 아닌가. 한국 사회의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이, 그리고 진보 진영이 진정한 정치적 리더를 양성하는 데 소홀하거나 인색했던 것은 아닌가.

이상수의 <한비자, 권력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새해 벽두에 읽으며 여러 차례 무릎을 쳤다. 저자는 제왕학과 리더십의 교과서로서의 한비자, ‘법가의 집대성자’로서의 한비자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며 재구성해놓았는데, 그게 우리의 당면한 고민들과 무관하지 않다. 전국시대의 한 사상가가 했던 고민들이 피부에 와닿는 걸 보면 사회의 기본구조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무엇이 기본 구조인가? 권력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다. 한비자가 살았던 절대군주 치하의 궁정사회에서 이 구조는 군주와 개혁가, 권세가라는 세 항으로 구성된다(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이 군주의 자리에 ‘국민’을 갖다놓으면 되겠다). 대망을 품은 개혁가라면 자신의 뜻을 펼쳐보기 위해서 일단 군주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유세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필요한 것이 권력의 심리학이다. 군주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라면 아무리 좋은 말을 늘어놓아도 귀에 들어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비자는 유세객 또는 개혁가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 실행되도록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만만치가 않다. 개혁가와 권세가, 곧 기득권 세력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군주는 이러한 권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것을 뚫고 군주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만 모함과 누명을 뒤집어쓰기 일쑤다. 한비자는 형리의 처벌에 죽지 아니하면 반드시 자객의 칼에 죽게끔 되어 있는 게 개혁가의 운명이라고 단언해놓았다(한비자 또한 진시황과 대면할 기회를 가졌지만 곧 모함을 받아 자진했다). 개혁을 말하는 이들이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면 “제대로 된 진정한 개혁론이 아직 헌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한비자의 일갈이었다.

이러한 곤란 속에서도 개혁가에게 기회가 없지 않은 건 군주와 권세가들의 이해 또한 상충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보기에 신하들은 오로지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여차하면 세력을 규합해 군주의 자리까지 넘보는 자들이다. 군군신신(君君臣臣)이니 군신유의(君臣有義)니 하는 건 유가의 한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군주와 권세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개혁가의 생존전략이다.

왜 구태여 그런 어려움을 자처하는가? 예컨대 공자는 군주가 나의 말을 들어주느냐 마느냐에 노심초사하지 않았다(알다시피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게 군자라고 하였다). ‘아니면 말고’가 공자의 유세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비자는 달랐다. ‘목숨 걸고’가 그의 유세관이다. 그는 500년에 한 번 나온다는 유가의 ‘성인 대망론’을 믿지 않았다(우리는 5년에 한 번씩 대선을 치른다!). 한비자는 ‘중간치 수준의 통치자’ 혹은 ‘평범한 지도자’가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 혹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08. 01. 11.

P.S. 책은 고전 '리라이팅'의 탁월한 모델이 될 만하지만 약점도 없지는 않다. '리더'란 말이 '개혁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군주'를 가리키기도 해서 빚어지는 혼선이 그것이다. 가령, 각 장별 주제이기도 한, 리더에 대한 일곱 가지 요구 가운데 첫째 "리더는 용의 등에 올라탄다"에서 리더는 개혁가를 가리키지만, 둘째 "리더는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에서는 그냥 모호하게 '지도자'를 뜻하고 일곱째 "리더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진다"에 이르면 주로 군주를 모델로 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대목은 '용'이 아니라, '용'의 등에 올라탄, 올라타야 하는 개혁가-리더를 다루는 장들이다. 그 개혁가-리더와 군주-리더가 그냥 똑같이 '리더'로서 동일시될 수 있을까? 개혁가의 유세론을 다룬 전반부를 나는 '한비자의 발견'이라고 일컬으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나는 이런 대목에서만큼은 한비자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군주의 리더십을 다룬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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