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매인 일들만 없다면 가장 먼저 손에 들었을 법한 책은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이다. 저자는 이미 <욕망하는 식물>(황소자리, 2007), <욕망의 식물학>(서울문화사, 2002)란 책으로 소개된 바 있는 저술가이다(제목은 다르지만 뒤의 두 책은 같은 원서를 옮긴 것이다). 원저는 2006년에 출간됐으니까 일년 남짓만에 한국어로도 소개된 셈.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선정 2006 최고의 책"이라는 게 발빠른 소개의 이유가 되었음 직하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내가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을 떠올린 건 아마도 그런 사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겠다. 여하튼 대중성을 갖춘 양질의 교양서라는 점에서 모범이 될 만한 책들이지 싶다. 일단은 리뷰들을 챙겨놓도록 한다.   

문화일보(08. 01. 11)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해답없는 현대인의 고민

“당신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1755~1826)이 남긴 말이다.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상태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질 급한 사람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먹는 속도도 빠르다. 느긋한 사람은 천천히 식사하면서 반찬도 골고루 먹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먹는 것, 즉 음식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본능에서 성욕이 근본적이라고 하지만, 성욕보다 식욕이 더욱 강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섹스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지만 먹지 않고는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의 식욕은 여타 동물의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육식 동물이나 채식 동물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배 고픈 고양이 앞에 아무리 채소를 갖다 놓아도 고양이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소 앞에 고기를 덩어리째 던져 주어도 외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인간은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한다.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책은, 잡식동물로서의 인간이 갖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파고든다. 수십,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먹을거리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인들은 들판에 돋아난 수많은 풀들과 나뭇잎, 열매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식물의 독성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기나 생선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부위를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며 특히 상한 고기를 먹었을 경우엔 즉시 복통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손상을 감당해야 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시인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일단 맛을 보고, 몸에 이상이 없는지 일정 시간을 기다려본 후에야 마침내 ‘먹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식(火食), 즉 불에 익혀 먹는 방법을 찾아낸 이후 인간은 먹을거리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전엔 먹을 수 없었던 것들도 불에 익히면 얼마든지 섭취가 가능하게 됐다. 이에 따라 먹을거리가 훨씬 다양해졌으며,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틀을 세울 수 있었다. 지역마다 식문화가 형성돼 전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현대인은 다시 한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화학비료의 개발과 이에 힘입은 농산물의 대량생산, 숱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와 유전자 조작식품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이후 인간이 이뤄낸 먹을거리의 혁명은 가히 인류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대형마트 식품매장의 진열대 위에서 무엇을 집을 것인지 망설이게 됐다. 한국인이라면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 유기농 채소와 일반 채소를 놓고 과연 비싼 가격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 과자봉지에 ‘화학조미료(MSG) 무첨가’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는지, 유전자 조작 식품(GMO)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소위 ‘건강정보’는 또 어떤가. 온갖 학설과 이론에서부터 신문·방송 등이 쏟아내는 정보들, ‘카더라’ 통신의 유언비어에 이르기까지 음식에 대한 단정과 주장들은 차고 넘친다. 지방이 비만의 원흉으로 지목받다가 어느새 탄수화물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난무하는 ‘설’에 따라 현대인은 또다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딜레마를 직접 몸으로 추적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식사를 지탱하는 세 가지 음식사슬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다. 산업적 음식사슬, 전원적 음식사슬, 수렵·채집 음식사슬 등이다. ‘산업적 음식사슬’에서 저자는 옥수수의 비밀을 파고든다. 옥수수는 산업적 음식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중 하나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옥수수야말로 오늘날 식품매장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대표적 식품임을 알게 된다. 가공된 옥수수는 패스트푸드의 주원료이며, 우리가 청량음료를 마실 때 사실은 옥수수를 마시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또 ‘전원적 음식사슬’에선 우리가 과신하고 있는 유기농 식품이 사실은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음을 충격적으로 펼쳐 보인다. ‘수렵·채집 음식사슬’에선 보다 철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냥꾼으로서 말 그대로 선사 시대의 본능을 갖고 있다”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사냥을 통해 이런 본능을 일깨움으로써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멧돼지 사냥과 버섯 채집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본능과 먹을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책은, 단순히 오늘날의 식품산업에 대한 고발장만은 아니다. 저자가 직접 몸으로 부닥치는 체험들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속엔 철학과 생태학, 인류학 등 식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관점들이 녹아 있다. 또한 현대사회가 어떤 정치·사회·문화적 시스템 하에 돌아가고 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 책을 읽고나면 식탁에 올라 있는 먹을거리들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김영번기자)

경향신문(08. 01. 12) 뭘 먹지? 아니, 그게 옥수수였어?

인간이 코알라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우리를 괴롭혀온 고민 하나가 해결된다. ‘무엇을 먹을까’라는 고민 말이다. 코알라라면 유칼립투스 잎만 찾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잡식동물인 인간은 다르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결정하는 일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낳는다. 특히 눈앞의 먹거리가 병을 일으키거나 목숨을 앗아갈 가능성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다.

풍요로 넘쳐난다는 오늘날 이 딜레마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어쩌면 전 세계-은 ‘국가적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모두 날씬해지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비만 인구는 늘어만 간다. 먹거리를 살 때마다 ‘저지방’ ‘저칼로리’ ‘트랜스지방 제로’ 등의 문구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음식들은 넘쳐나지만 ‘무엇을 먹을까’라는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같은 일이 생겼을까.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음식에서 너무 멀어져서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무관심해서다. 그래서 ‘음식사슬’(먹이사슬)을 따라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기원을 추적한다. 거대 농업기업을 의미하는 산업적 음식사슬을 비롯해 산업 유기농, 초유기농, 수렵·채집 음식사슬이 그 대상이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끝나는 산업적 음식사슬의 시발점은 ‘옥수수’다. 원래 풀을 먹는 소를 비롯해 닭, 돼지, 칠면조, 양, 메기, 심지어 연어의 사료로 쓰인다. 치킨 너깃·탄산음료·프렌치프라이 등 인간 식욕의 한계를 시험해온 온갖 가공식품과 치약·화장품·기저귀 등 일상용품도 옥수수 투성이다. 슈퍼마켓에 있는 4만5000가지 물품 중 4분의 1 이상에 옥수수가 들어있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가공된 옥수수”라 할 만하다.

문제는 옥수수가 엄청난 규모로 재배되면서 다른 식물들과 동물들, 심지어 사람들까지 농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점. 또 옥수수 재배를 위해 뿌려진 합성비료는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자연선택에 의해 풀을 먹어야 할 소가 옥수수를 먹고 집중가축사육시설에서 자라면서 소는 물론 이를 먹는 인간의 건강에까지 해를 끼친다.

그렇다면 유기농은 괜찮을까. 유기농도 농업 기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원래 자신이 대체하고자 했던 산업시스템을 똑같이 닮게 됐다. 유기농 인증 사료를 먹는다는 사실만 빼면 유기농 소나 닭이 다른 소나 닭과 다르게 사는 것 같지도 않다. 푸른 들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닭과 소의 모습은 제품포장에나 인쇄되어 있는 ‘슈퍼마켓 목가극’이다. ‘산업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 아닌가. 결국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문명과 음식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는 ‘산업의 논리’다. 이 논리에서는 균일성, 기계화, 예측가능성, 교환 가능성, 규모의 경제가 중시된다. 다양성, 복잡성, 공생 같은 생태학적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소떼가 목초지에서 집단가축사육시설 안으로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업의 논리’는 또한 끊임없이 화석 에너지를 고갈시켜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사슬은 선형이다. 하지만 자연의 ‘효율’은 모든 것이 연결되는 원형을 지지한다. 저자가 일주일간 고된 노동을 한 버지니아의 폴리페이스 초유기농 농장은 후자에 가깝다. 캘리포니아 숲 속에서의 야생돼지 사냥도 마찬가지다. 그곳에는 태양·흙·참나무·돼지·인간으로 이뤄지는 음식사슬이 작동한다.

저자는 “음식은 오늘날 위협받고 있는 모든 가치의 강력한 상징”이라고 역설한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건강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산업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상실한 모든 문화적 가치들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것은 우리 삶과 세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다.

인간 음식문화의 양극단에는 슬로푸드와 패스트푸드가 있다. 슬로푸드는 자연의 다양성을 반영하지만 패스트푸드는 산업의 창의력을 반영한다. 패스트푸드의 가격은 싼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비용은 숨겨져 있다. 이 비용은 자연이나 공중 보건, 공적 자금, 미래가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비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음식은 예전에는 언제나 그랬지만 슬로푸드나 패스트푸드가 아닌 그냥 푸드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여기서 책은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되었는지, 그리고 정말로 얼마만한 비용이 들었는지 잘 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식탁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몸이다.”

저자 마이클 폴란은 사람과 식물간의 욕망과 진화의 역사를 그려낸 ‘욕망하는 식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저널리스트다. 이번 책에서도 음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과 정치·경제·문화·생태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을 자유롭게 풀어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맛깔나게 요리된 책이다.(김진우기자)

08.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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