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대형서점에 잠시 들렀다가 손에 든 책은 아론 구레비치(1924-2006)의 <개인주의의 등장>(새물결, 2002)이다. 예전에 '개인'과 '개인주의'를 주제로 한 몇 권의 책을 꼽으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책이긴 했는데, 출간 당시에는 너무 비싸 보여서 구입하지 않았다. 5-6년을 흘려보내니 그래도 '정상' 가격으로 다운된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론 단테의 <신곡>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하다는 '핑계'에다가 저자가 최근(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도 고려했다. 책은 유럽의 5개 출판사에서 기획한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됐는데, 국역본의 경우 댓 권에서 목록이 더 늘어나지 않는 걸 보면 주줌하고 있는 모양이다(아직도 스무 권쯤이 더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완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몇년 전 관련서평과 구레비치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붙여둔다.   

한겨레21(03. 05. 08) 개인은 진화하고 있다

‘개인’(individual)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서양의 개인은 유일신 앞에서 얼굴을 감추고 엎드려 있어야 했고, 동양의 개인은 가족과 친척, 사회의 제도윤리에 칭칭 감겨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각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러시아의 역사가 아론 구레비치는 <개인주의의 등장>(이현주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복잡다단한 개인의 역사를 파헤친다.(*아래는 책의 스페인어본.)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사람’(person)이란 말조차 없었다.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과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무대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한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쓰며 그 가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프로소폰 또는 페르소나는 한명의 개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성격(character)과도 유사한 개념의 페르소나는 제도와 사회가 정해준, 외부에서 결정된 정체성이었다. 프로소폰·페르소나가 한명의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중세 기독교 때였다. “그리스도 교회의 세례를 통해 인간(human being)은 한 사람이 된다”고 13세기 문헌은 말한다.

그러나 물론 이때의 사람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 아니다. 아론 구레비치에 따르면 개인은 “씨족적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여러 제한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개인의 전형이 르네상스 시대 때 갖춰졌다는 많은 역사가들의 지적을 거부하고, 중세 이전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전통까지 거슬러올라가 곳곳에서 출몰한 개인의 계보를 더듬는다.

고대 노르웨이 서사시에는 뛰어난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중 대표적 영웅인 ‘에갈’은 거친 바이킹이자 세련된 궁정시인, 자애로운 아버지, 부와 선물을 기대하는 남자이며 충성스런 친구 등 모순적인 성격의 인물로 나타나는데, 에갈이 구현하는 개인성은 집단의 윤리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적 겸손함을 요구하는 기독교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지만, 중세 시대에도 역시 개인의 탐구는 계속됐다. 이 중 <고백록>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기독교 안에서 개인의 ‘내적 공간’을 탐구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 방종한 생활로 젊음을 탕진하며 살다 어느 날 진정한 신을 발견하게 된 그는 “나는 운명도 아니요, 숙명도 아니요, 악마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창조자를 대면하는 에고”였다. 중세의 다른 저자들이 스스로를 이교도, 성서적 영웅, 복음서·역사·문학의 인물에 비교하는 것과 달리, 아구구스티누스는 자신에 대해 묵상하고 본래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글을 쓰는 지식인 집단말고도 개인은 여러 계급에서 발견됐다. 8세기의 한 조각가 밀라노 대성당의 황금 제단 위에서 왕관을 씌워주는 성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로 자기를 묘사했으며, 다른 장인들 역시 곳곳에 자기의 서명을 남겼다. 기독교 윤리에 직업의식이 덧씌워지면서 기사와 상인 역시 각자 소명대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개인성을 형성해나갔다.

지은이는 “개인은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린다. ‘개인’은 중세 이전부터 싹을 틔웠지만, 자아에 대한 개인의 태도, 자각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두어 ‘self’는 종교개혁 이후에야 등장했다. ‘개인’은 느리고 더디고 힘겹게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돼온 것이다.(이주현 기자)

08. 01. 08.

P.S. '러시아의 역사가'로 소개된 아론 야코블레비치 구레비치는 러시아의 저명한 중세사가이면서 문화학자이다. 이 분야의 전공자에 따르면 중세 연구 분야에서 드미트리 리하초프, 보리스 우스펜스키와 함께 러시아의 3대 석학으로 꼽히는 대학자이다(현재는 우스펜스키만 생존해 있다). 아래는 그의 사후에 출간된 두 권의 선집.

Арон Гуревич Арон Гуревич. Избранные труды. Культура средневековой ЕвропыАрон Гуревич Арон Гуревич. Избранные труды. Древние германцы. Викинги

<개인주의의 등장>은 구레비치가 이 시리즈의 책임자인 자크 르 고프의 의뢰를 받고 쓴 것이다(구레비치의 대표작은 <중세의 세계>, <중세의 역사인류학>, <중세의 민중문화> 등이다). 그가 서론격인 1장에서 토로하듯이 "개인은 파악하기 힘"든데, 그럼에도 개인주의의 기원을 '고대 스칸디나비아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유럽의 개인주의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으면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같은 주제를 다룬 여타의 책들과 같이 읽어보면 도움이 되겠다. 참고로, 국역본은 영어본을 옮긴 것이고, 영어본은 또 러시아어본을 옮긴 것으로 돼 있다. 한데, 러시아본의 실물이 어떤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영어본을 대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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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8 22:4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강의하시는 '신곡'이라니. 강의 들으시는 분들 정말 부럽네요!

로쟈 2008-01-08 22:53   좋아요 0 | URL
전공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심도 있는 강의는 어렵고요, 다만 '대표 독자' 역할을 맡은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