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고금변증설'이란 꼭지가 있다. 오늘에야 알았는데, 강명관 교수의 칼럼란이다. 주자학과 돈에 대한 이번주 꼭지를 '사회적 독서'에 옮겨놓는다. 말미의 소회처럼 나도 주기적으로 우울하기에.

한겨레(08. 01. 05) 조선엔 ‘주자학’ 현대엔 ‘돈’이 교주님

1653년 윤7월 21일이었다. 송시열과 유계, 윤선거는 충청도 강경의 황산서원에 모였다. 송시열이 연기에서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 유계를 방문하고 여러 사람을 초청해 뱃놀이를 했는데,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황산서원의 재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윤휴의 학문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이야기가 번졌다. 송시열은 윤휴가 주자의 경전 해석에 반기를 든 이단이라 못을 박았다. 윤휴는 송시열만큼이나 주자학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또 정통했기 때문에 주자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윤휴의 학설은 곧 성리학의 발전인 셈이다. 그는 단지 경전의 해석에 있어 주자와는 다른 주장을 내세웠을 따름이다. 문제는 송시열의 경직된 주자 옹호였다. 송시열은 윤선거에게 윤휴가 이단이라면서 계속 그와 관계를 끊으라고 다그쳐 왔지만, 윤선거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날 밤 송시열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윤휴는 이단이다. 나의 말에 동의하고, 윤휴와 관계를 끊어라!” 윤선거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또 박절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송시열의 말을 듣고 이내 수긍하지 않는다. 송시열의 말이 더 거세게 나갔다. “하늘이 공자를 이어 주자를 세상에 낸 것은, 실로 만세의 도통을 위한 것이다. 주자 이후 드러나지 않은 이치가 한 가지도 없고, 밝혀지지 아니한 글이 한 구절도 없다. 그런데 윤휴는 감히 자기 견해를 내세우며 제 하고 싶은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대는 성혼 선생의 외손이면서도 도리어 그의 편을 들어 주자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의 졸개가 되고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송시열에 의하면 모든 진리는 주자에 의해 밝혀졌기에 더는 진리에 대해 시비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송시열이 살아 있다면, 그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묻고 싶다. 모든 진리가 주자에 의해 완전히 밝혀졌다는 그 말이 요지부동의 진실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이다.

사실 진리가 주자에 의해 완전히 밝혀졌다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자신, 곧 주자의 말을 진리라 설하는 자신의 말이 곧 진리라는 말이다. 어찌 좀 수상하다. 어쨌거나 송시열의 호된 다그침에 윤선거는 윤휴를 비난하는 말을 몇 마디 내뱉었다. 한데 내심 승복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더 깊은 이야기를 하면, 윤선거는 송시열에게 항변했다. “의리란 천하의 공적인 것이다. 지금 윤휴에게 감히 말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주자 이후에는 딴 말을 할 수 없다면, 진순과 진역과 같은 학자들은 어찌하여 경전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의리란 천하의 공적인 것’이란 말은 진리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참여해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주제란 말이다. 이 말은 윤휴의 주장이기도 했다. 윤휴는 일찍이 “주자만 천하의 이치를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라고 말한 바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말이야 맞지 않은가.

윤선거의 항변에 송시열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지만 근거 없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송시열은 황산서원의 모임 뒤에도 윤선거에게 편지를 보내 윤휴와 단절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 이면에는 아마 윤휴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윤선거는 송시열에게 “윤휴는 너무 뛰어난 인물이다” “그대가 윤휴를 너무 겁내고 있는 것이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송시열이란 이름에 접할 때마다 나는 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를 떠올린다. 다른 수도사가 이단의 서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그 늙은 수도사 말이다.

황산서원에서 모임이 있었던 그해(1653)는 조선 건국(1392)으로부터 거의 2세기 반 뒤였다. 조선은 그로부터 2세기 반이 지나 망한다. 말하자면 그해는 조선조의 꼭 중간이다. 나는 그해 그 모임이 조선 역사를 전후로 가르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송시열의 발언 이후 주자학은 조선에서 절대 진리가 되었다. 조선 전기의 다양한 문화와 사유가 무너지고 성리학의 이념적 독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사회와 국가가 쇠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리다. 하지만 진리가 독점적인 절대진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인간에게 족쇄를 채우고 인간을 압살한다. 호르헤가 지키고자 했던 기독교가 진리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했던 것처럼, 성리학 역시 같은 구실을 하다가 역사에서 퇴장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독교의 신이 진리가 아닌 지금, 성리학의 진리가 더는 진리가 아닌 현재, 진리란 이제 없는가. 혹여 그 진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상대주의가 편만한 세상이니, 진리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리석은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인간 행위의 준칙이 되는, 인간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숭배하는 유일한 진리는 지금도 존재한다. 바로 ‘돈’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여 ‘화폐’이고 ‘자본’이다. ‘돈’ ‘화폐’ ‘자본’은 이 종교의 삼일일체이고, ‘유전천국(有錢天國)’ ‘무전지옥(無錢地獄)’은 그 교리의 핵심이다. 인간은 이제 더는 다른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갖고 있는 화폐량과, 그 화폐에 의한 소비능력으로 평가될 뿐, 윤리적 실천, 진리를 향한 기원 따위는 서푼어치의 값도 없다. 우리는 물신교라는 신흥종교의 충실한 교인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직 물신교를 철저히 섬기겠다는 공약만을 보았다. 정말 우울하다.(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08. 01. 05.

P.S. 같은 지면에 실린 기사 '도덕성이 밥먹여 주냐'(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1055.html)도 같이 읽어둠 직하다. 현단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누가 도덕성을 담지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8-01-05 12:2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정말 닮았네요. 무섭고 비겁한 것두요.

로쟈 2008-01-05 18:27   좋아요 0 | URL
송시열과 호르헤 말씀이시죠. 물신교를 대체할 무엇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좀 비관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