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한주 남았다. 다행히 지난주는 별로 부담스럽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다. 지갑을 털어갈 만한 책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은 탓이다. 대신에 전쟁에 관한 책 두 권 정도는 눈도장을 찍어두도록 한다(사랑에 관한 페이퍼를 올려놓고 나니 왠지 전쟁에 관해서도 몇 마디 해야 균형이 맞을 듯해서). 도서관에 들어오면 혹 챙겨볼지도 모르겠다. 한권은 너무 두툼하고(때문에 비싸고) '전쟁과 젠더'를 다룬 다른 한권은 적어도 소개상으론 너무 나이브하다...  

중앙일보(07. 12. 23) ‘올바른 혁신’ 군사력보다 강하다

#1. 컴퓨터는 현대 첨단기기의 상징이지만 사실 제대로 된 첫 전자디지털 컴퓨터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왔다. 암호해독과 포탄 탄도측정 등에 필요한 미국은 애니악, 영국은 클로서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영국은 전후 보안을 이유로 이를 파기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더욱 키워 마침내 정보혁명 시대를 열었다. 반대로 영국은 산업화 시대에 누렸던 우위를 정보화시대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그만 놓쳐 버렸다.

 

 

 

 

 

 



  

 

#2.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전차군단은 기동전으로 영국·프랑스·소련 군대를 유린했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무기체계’는 1915년 영국이 창작물인 것은 물론, 기갑사단의 원형인 기계화사단도 27년 영국군이 처음 창설했다. 하지만, 영국은 유화정책에 젖어 혁신을 중단하는 바람에 30년대 들어 히틀러의 독일에 우위를 내줘버렸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국가안보분야 선임연구원인 지은이는 이런 사례들을 들면서 역사에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라의 흥망과 전쟁의 승패는 지도자가 변화의 맥을 정확히 짚고 정부와 군대를 제대로 혁신했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대로 읽고 변혁의 바람을 주도한 자는 승자나 강국이 됐고, 이를 놓친 이는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비범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용했는지 여부도 국가의 흥망과 결부됐다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인용하는 17세기 스웨덴의 드라마는 혁신의 교과서 같다. 당시 스웨덴은 속령이던 핀란드를 합쳐도 인구가 130만을 넘지 않은 소국이었지만 국력, 특히 군사력은 유럽 최강이었다. 구스타프 아돌프 국왕이 왕실이나 귀족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대대적인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관료들이 운영하는 근대적인 정부조직을 만들고, 조세제도를 정비했으며, 징병제를 실시했다.

구리와 철의 채광권은 물론 심지어 군수산업 독점권까지 외국 자본가에 팔아 거액의 외자를 들여왔다. 그 덕분에 충분한 군비와 무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스웨덴은 이를 바탕으로 한 세기가 넘게 유럽의 패권국가가 된다. 군사적으로는 물론 과학과 산업도 덩달아 발전하게 됐다. 혁신이 강국을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한 것이다.

러시아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끈 표토르 대제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그는 1700년 6배가 넘는 병력으로도 스웨덴군에 참패하자 되려 적국인 스웨덴의 부국강병책을 적극적으로 베꼈다. 그 결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설욕할 수 있었다. ‘흑묘백묘론’의 원조 격이다.

지은이는 강한 군사력이나 국력이 무기나 군사기술, 생산력 같은 물질적인 것만으론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17세기 유럽의 또 다른 패권국가 스페인을 물리치고 해상강국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이 시장경제와 대의제가 일찍부터 발전한 나라라는 데 주목한다. 국민이 진정으로 충성하고 희망을 가질만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히틀러가 2차 대전 초기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결국 과도한 욕심과 비도덕성으로 전쟁에선 패배했다는 지적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방대한 군사·전투·전쟁 이야기 속에서 강대국의 조건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채인택 기자)

세계일보(07. 12. 23) 혁명의 프리즘 통해 전쟁과 문명의 역사 읽기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자동차회사를 세운 1903년 무렵은 차가 다닐 만한 도로도 거의 없을뿐더러 시속 30㎞ 정도의 속도도 위협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시끄럽고 고장도 잦은 고가 사치품’이라는 데 머물러 있던 때에 자동차를 만들겠다며 대출을 신청하자 은행장은 조용히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렇게 많은 마차들이 아무 문제없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자동차 같은 게 왜 필요하죠?”

“항공기와 전차는 병사들과 말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나는 잘 기른 말이 훨씬 더 쓸모 있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게 되리라 확신한다.” 영국의 육군원수 더글러스 헤이그 경의 이런 신념은 1930년대까지도 영국 육군을 지배하던 일반적인 의식이었다.

문명은 이런 저항을 거쳐 오늘까지 왔다. 신기술과 새로운 시스템에 무지했던 영국이 그 오판의 대가로 히틀러의 군홧발 아래 유럽이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포드는 신기술과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해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열어나갔다. 이로 인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대량생산 시대는 자연스럽게 대량소비 시대로 연결되었다.

역사에는 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고, 그 포인트를 제대로 읽은 개인과 조직과 국가에서부터 역사는 다시 출발했다. ‘Made in War 전쟁이 만든 신세계’는 역사가 받아들인 이들 변혁의 포인트 중 전쟁이 ‘기여’한 부분에 주목한 책이다. 인간과 인간성까지를 포함해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해온 질 나쁜 ‘행위’지만, 그러나 그가 창조하고 발전시킨 것을 부정한다면 이 순간 당연한 듯 누리는 문명세계의 상당부분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오늘날의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은 미군이 수많은 타깃을 추적하는 것뿐 아니라 월마트의 넘쳐나는 상품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였지만, 전장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의 모습도 바꾸는 이 정보혁명이 어디서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전투방식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어놓은 화약혁명, 1차·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혁명이라는 네 가지 대혁명의 프리즘을 통해 전쟁과 문명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부산한 세밑에 현재진행형의, 스케일 큰 역사책 한 권 권해 드린다.(이도겸 플래닛미디어 편집팀장)



세계일보(07. 12. 08)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

인간은 공격성이라는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전쟁은 그 본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는 통설은 전쟁을 운명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정말 그럴까. 가와무라가쿠인여자대학 인간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서 전쟁은 불가피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들은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제에서 벗어나야만 전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물학자 콘래드 로렌츠에 따르면 동물 세계에는 같은 종(種)끼리 서로 상처 입히고 죽이는 것을 막는 행동생리학적 구조가 있다. 동물들은 공격 본능과 함께 동족을 살상하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가지는데, 이러한 억제 장치는 자기와 같은 크기의 동물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큰까마귀나 늑대는 단번에 동족을 죽일 수 있는 반면 억제 장치 역시 가지고 있기에 멸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끼나 비둘기, 침팬지는 같은 크기의 동물을 죽이지 못하므로 억제 장치도 필요없다. 인간도 본래 비둘기나 침팬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무기의 발명은 인간을 큰까마귀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손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어버렸다.

무기가 도달하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는 사람의 감정에 와 닿지 않는다. 선량한 한 가족의 아버지가 폭탄 투하 장치의 버튼을 눌러 수천명의 아이들을 향해 융단폭격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들의 전쟁론은 전쟁을 긍정하고 유지해왔다. 그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젠더인 여성들이 전쟁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박태해 기자)

0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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