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제임슨의 <지정학적 미학>(현대미학사, 2007)에 대한 한 서평을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301). 지난 9월말에 읽을 만한 책 목록(http://blog.aladin.co.kr/mramor/1595932)으로 골라놓고서 아직 부분적으로밖에 참조하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론 러시아의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를 다룬 '소련의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장을 필독할 필요가 있어서 책상맡에 오랫동안 놓아두고 있는 책이다. 출간된 지 몇달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서평은 눈에 띄지 않던 차여서 반가운 마음에 챙겨둔다(이런 '이론서'의 독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문득 궁금하다). 한편, 그의 주저인 <정치적 무의식>이, 드디어, 근간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리므로 내년엔 '제임슨 읽기'도 따로 계획해둠 직하다(비록 '고난의 읽기'일 것 같은 예감을 떨치기 어렵지만)...

교수신문(07. 12. 10) '陰謀의 플롯’ 분석해 정치적 무의식 탐색

현대사회에서 영화는 모든 대중문화를 삼켜버릴 만큼 그 몸집이 비대해졌다. 뤼미에르 형제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차의 도착’을 상영한 이래 영화는 현대 대중문화의 절대강자로 군림한 것이다. 영화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산업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한국만 하더라도 적은 인구에 비해 천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은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영화산업이 문화산업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문화가 곧 산업이 되고 화폐가 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전방위적 사상가이자 문화평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제 영화를 말한다. ‘이제’라고 했지만, 『지정학적 미학』이 출간된 것은 1992년이니 ‘이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주장했던 정치적 무의식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인식적 지도그리기(cognitive mapping)는 인문학 분야에서 이미 일반적으로 통용된 지 오래다. 또한 그의 문장 자체가 매우 난해해서 포스트모던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악명을 떨친 지도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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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본주의의 질료, 영화
‘마지막’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며 세계 체제와 사회적 총체성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쳐왔던 그가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야말로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이며, 영화야말로 권력과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오롯하게 재현되고 있는 장르다. 지정학적 미학』의 추천사를 쓴 콜린 맥케이브의 말처럼, 영화는 “자본주의 초기단계의 완전한 발전을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가 불가능한 가장 적절한 포스트모던 예술”이자 “가장 세련된 산업생산의 산물”인 “최후의 기계”다. 따라서 모든 텍스트를 정치적 판타지로 해석하는 프레드릭 제임슨에게 영화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성을 분석하는 중요한 대상이 된다.

프레드릭 제임슨에게 후기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시간과 공간을 무너뜨리고, 그 시간과 공간의 분기점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컴퓨터 미디어 테크놀러지가 요동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의 총체성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텍스트가 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영화는 단순히 오락거리가 아니다. 그에게 영화는 “집단적 판타지의 심층적인 수준”을 파헤칠 수 있는 질료이다. 또한 영화는 전 지구적 세계 체제에서 벌어지는 “음모의 플롯”을 내장하고 있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미학』은 영화를 매개로 정치적 무의식을 탐험하려는 저자의 야심찬 시도이다. 또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각화 된 인식적 지도그리기’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제1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의 영화를 비롯해 소련의 SF영화, 프랑스, 대만, 필리핀 등 무수히 많은 영화를 대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재현의 문제를 거론한다.

이러한 영화를 읽어내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독법은 잠재적 징후들 속으로 파고들어 가서 그것을 현실의 장으로 끄집어내고, 그것을 세계 체제의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일이다. 그가 영화의 내러티브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정학적 무의식”이다. 지정학적 무의식이란 “우리의 새로운 세계-내-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민족적 알레고리를 하나의 개념적 도구로 재편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그것은 민족적 알레고리의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인 차원의 알레고리를 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음모이론’이다. 이는 그가 발 빠른 문화평론가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990년대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음모이론들이 유통되고 있었다. 1993년에는 ‘엑스파일’이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지정학적 미학』에서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대통령의 음모’, ‘비디오드롬’,  ‘콘돌’, ‘암살단’ 등에는 모두 우리의 일상 곳곳에 촉수를 뻗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더욱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장면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됨으로써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을 “독특한 역사 속에서 서로 묶어 며칠 동안을 하나의 거대한 집단성으로 이끌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유토피아적 공공영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프레드릭 제임슨에게 음모라는 서사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인간들, 즉 분열되고 파편화된 주체들을 전 지구적으로 묶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민족적 알레고리와 지정학적 무의식
이 순간에도 음모이론은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인류에게 매혹적인 내러티브를 제공해 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드(미국드라마) 열풍’의 일등공신이었던 ‘CSI’는 공중파를 타고 한국인들의 안방을 공습했다. 특히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이 테러를 당하자 곧바로 ‘CSI:뉴욕’이 제작돼 공중파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됐다. 더군다나 ‘CSI:뉴욕’의 주인공인 맥 테일러 반장은 해병대 출신이자 9·11테러로 아내를 잃었다. 뉴욕의 안전을 지키는 맥 테일러가 지칠 때 마다 찾는 곳은 ‘그라운드 제로’이고, 바로 그 ‘장소’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 10월 5일 방송에서는 또 하나의 신화가 탄생했다. 발칸반도 출신의 미국 유학생들이 플라스틱 폭탄으로 세계 평화의 상징인 UN본부를 테러하려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CSI:뉴욕’뿐만 아니라 ‘24’, ‘앨리어스’ 등은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점은 보이지 않는 ‘가상의 적’과 ‘음모’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라는 것이다. ‘CSI’의 과학수사대 요원, ‘24’의 대테러 요원(CTU), ‘앨리어스’의 CIA 요원 등이 한국의 ‘미드 폐인들’을 숨 가쁘게 음모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를 프레드릭 제임슨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사명감으로 거듭 태어난 미국의 재탈환”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드라마라는 미디어는 영화와 함께 우리의 인식을 점령하는 새로운 무기가 됐다. 할리우드 시스템과 미드 열풍이 ‘합작’해낸 ‘세계 문화산업의 미국화’라는 뻔히 보이는 ‘음모’에 맞설 수 있는 문화적 창조성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이승원 / 한양대 연구교수·국문학)

07. 12. 13.

P.S. 제임슨 읽기의 곤혹스러움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그걸 좀 덜어주는 국역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난삽한 문장들도 문제지만 이런저런 부주의도 거기엔 한몫한다. 가령 <지정학적 미학>의 경우에도 저자 서문의 첫번째 각주에 제임슨이 '다국적 자본주의 내에서의 제3세계 문학'이란 에세이에서 "아프리카 영화 <우스만 셈벤>에 대해서도 아주 간단히 다루었다."라고 해놓았는데, '우스만 셈벤'(1923-2007)은 영화명이 아니라 감독명이다. 그러니까 우스만 셈벤의 영화들에 대해서 몇 마디 적어놓았다는 얘기다. 나도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이 세네갈의 영화감독은 '아프리카 영화의 아버지'로까지 불리는 인물이다. 영화명으로 처리해놓고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이런 부주의가 번역서에 대한 신뢰를 침식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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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12-14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 페이퍼를 읽고 불현듯 드는 생각은, 태안 원유 유출 사고와 총기 탈취 사건이 괜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명예훼손이라고 할까봐 말은 못하겠지만,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고 구렁이 담넘어 가듯 넘어가려고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해서요...ㅎㅎ

로쟈 2007-12-14 08:34   좋아요 0 | URL
그게 사건마다 다 해명되지 않는 의문점들이 계속 남으니 음모론의 신세를 지더라도 도리가 없겠습니다. 그리고 음모론의 3%는 진짜라고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