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형서점에 둘러본 신간들 중에 유일하게 '예기치 않았던' 책 한권은 일본인 편집자의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 2007)이다. 얼마전에 나온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마음산책, 2007)이 '대단한 독자'를, 계속 소개되고 있는 다치바다 다카시가 '대단한 저자'의 대표적인 상이라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의 저자 오쓰카 노부카즈는 '대단한 편집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인 저자들과 저서명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책은 손에 들었다가 놓았는데, 저자인 오스카는 그 이름도 유명한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암파서점)의 사장이었다고 한다(그러니까 어제는 책갈피도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셈이다). 일반독자들에겐 별로 흥미를 끌 책은 아니지만 편집자나 출판기획자들에겐 아주 유익한 교과서 같은 책이겠다(나는 어느쪽인가?) 리뷰기사와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12. 01) 사표 넣고 다닌 편집자, 일본 지성을 이끌다

“돌아보니 30년 동안 ‘안티-이와나미’짓을 했더군요.” 오쓰카 노부카즈(68) 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사장은 삶의 절반 이상인 40년을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에 몸담았다. 그 중 임원과 사장을 지낸 마지막 10년 정도를 빼면 편집자로 오롯이 30년을 살았다. 그 30년 동안 ‘안티-이와나미’짓을 했다고? “적어도 내가 입안한 기획의 절반은 기성 권위를 무너뜨리는 쪽에 선 것들 이었습니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만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애송이’ 편집자가 굴지의 출판사 사장이 되기까지의 40년 역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은 1963년 일본의 고도성장기가 시작돼 한껏 기름진 토양 위에 번성하던 출판계가 경제 불황과 ‘활자이탈현상(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현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도 포개진다. 나아가 그 출판사가 ‘이와나미쇼텐’이기에, 그의 편집을 거친 책의 목록 자체가 1960년 이후 일본의 지성사를 투영하기도 한다.

창립 50돌 무렵 이제 막 입사한 신참 편집자는 편집부에 충만한 기운이 일종의 ‘일류의식’이었다고 회상한다. ‘50년 내내 이와나미쇼텐은 일본문화를 짊어져왔다’, ‘대중문화는 고단샤(講談社)가, 고급문화는 이와나미가’, 라는 말을 들어왔던 까닭이다. 저자에게는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보내고 맞이할 때는 전세 승용차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이렇듯 의전은 일류급을 달리는데, 그의 눈에 비친 편집부는 지식과 식견이 모자라 수준 낮은 편집회의를 열고, 외부에서 불러온 ‘대가’의 의견만 수동적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사직서를 주머니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그는 새로운 기획을 내놓기 시작했다. ‘강좌·철학’ 시리즈의 기획회의에서는 구조주의의 기운을 감지하고 애초에 빠져 있던 <언어> 편을 끼워넣었다. 각각 10만 권 가량 팔려 ‘대박’을 터뜨린 시리즈 가운데서도 <언어>는 가장 많이 팔렸다. 일반 독자를 위한 계몽서인 ‘이와나미신서’ 60권을 내면서 당시 무명이었던 문화인류학자 야마구치 마사오를 발굴해 전후(戰後) 마르크스주의 흐름에서 벗어나려 했고, <콤플렉스>라는 책을 통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사상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등 활약은 이어졌다. ‘총서·문화의 현재’ 시리즈를 통해 철학과 예술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던 시도는 1983년 계간 문화잡지 <헤르메스>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7년 동안 편집장을 지냈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번역본을 펴낸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 책이 “편집자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평했다. 김 대표와 오쓰카 전 사장은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 등 아시아 다섯 개 나라의 인문 출판사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서 만나 친분을 다져왔다고 한다. 오쓰카 전 사장이 책을 썼다고 하자, 김 대표가 단박에 번역판을 내자고 제안했다.

김 대표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책에는 그가 40년 동안 담금질해오며 터득한 편집과 출판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실무적인 면에서 편집자 본래의 일은 “집필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시간을 들여 논의하고 박력 있는 책을 내놓는 것”이고, 그 결과물은 “새로운 사고방법을 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것의 총체를 알아야 합니다. 24시간을 공부해도 모자랄 일이지만,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을 하게 하면, 지금의 현상을 파악하면서 나의 자유시간도 확보할 수 있지요. 그런 자리를 마련해 젊은 학자들 의견 교환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학회 성격을 띠는 각종 모임을 만들고, 책으로 그 결실을 보기도 했다.

그가 저자와 맺은 인간관계는 각별하다. 사장으로 있던 2001년 겨울, 이와나미쇼텐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전문서적 중개회사가 도산해 신문에 “이와나미쇼텐은 위기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30년 넘게 교제해온 저자가 오전에 다급하게 전화해 자신의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활자이탈시대’를 맞아 출판업이 그 어느때보다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확신한다. “출판사는 회사의 이익을 올리거나 그 나라의 이익을 올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판은 문화의 상호 이해를 돕고, 인류 복지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김일주 기자)

‘이와나미쇼텐’은 진보성향잡지 <세계(세카이·世界)>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총 176회에 걸쳐 잡지에 연재됐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韓國からの通信)> 덕분이다. 잡지에는 민주화 인사들이 몰래 빼돌린 원고가 실렸고, 그 원고들 덕에 박정희 유신 체제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한국의 인권·민주화운동 탄압 실태가 낱낱이 알려졌다.

오쓰카 전 사장은 “창립자 이와나미 시게오는 늘 아시아의 이웃나라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중국·한국에 대한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을 어떻게는 출판업으로 막아보자고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웃 아시아 나라에 대한 동류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흐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913년 이와나미 시게오가 지인들과 출판사를 세운 이래 이와나미쇼텐은 2만 종 이상의 책을 냈다. 1914년 이와나미와 친분이 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판사의 기틀이 잡혔다. 1927년 고금동서의 고전을 보급하기 위한 ‘이와나미문고’를, 1938년 학술적 기반에서 대중을 지향한 계몽서인 ‘이와나미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패전 직후 1946년에는 잡지 <세계>를 창간했고, <사상> <문학> <과학>도 잇달아 창간하는 등 종합·학술출판사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1955년에는 ‘국민 사전’ <고지엔>을 펴냈고, 처음으로 일본의 고전을 집대성한 ‘일본고전문학대계’ 등도 출간했다. 우리나라 책으로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을 번역 출간했고, 리영희의 <대화>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사장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편집자 출신이 사장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김일주 기자)

 

 

 

 

 

 

 

 

 

 

 

 

동아일보(07. 11. 29) “일본도 ‘활자 이탈’ 심각 국민적 책읽기운동 나서”

“최근 일본은 ‘활자 이탈’이란 문화 붕괴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출판계는 물론 범국민적 독서보급운동이 필요합니다. 출판 편집인은 그래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스물네 살 초짜 편집부원으로 시작해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출판사 사장이 되기까지 40년. 평생 한길을 걸어온 출판인이 한국을 찾았다. 오쓰카 노부카즈(大塚信一·68·사진) 전 이와나미쇼텐(巖波書店) 대표. 이와나미쇼텐은 1913년 고서점으로 출발해 ‘이와나미문고’ ‘이와나미신서’ 등으로 ‘이와나미 문화’라는 말을 낳은 일본 지식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출판사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의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방한한 오쓰카 전 대표는 “일제강점기로 많은 빚을 진 한국에서 책을 내게 돼 더욱 특별하다”며 “젊은 출판 편집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부제가 ‘한 출판 편집자의 회상’이다.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편집인으로 살아온 커리어를 정리했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것을 통해 배울점이 있지 않을까. 최근 한국에서는 출판계 이직률이 높다고 들었다. 노동조건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출판사는 조직의 이익을 따지는 곳이 아니다. 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세계 전체의 공영을 돌봐야 한다. 그런 노력의 과정이 담겼다고 봐 줬으면 좋겠다.”

―출판사도 결국 영리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몇몇 대형 출판사는 출판의 기본 이념에서 벗어나 이익 추구에 집중한다. 본질을 벗어난 셈이다. 출판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본 전제는 인류의 지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기본이 틀어져서는 안 된다.”

―일본은 그런 가치를 지킬 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나.

“젊은이들의 ‘활자 이탈’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생이 신문도 읽지 않는다. 일본 출판 규모는 만화를 포함해 2000억 엔 정도지만 슬롯머신 사업은 30조 엔에 이른다. 문화의 균형이 무너졌다. 대책 마련을 위해 ‘활자문화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매우 높다고 들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활자문화추진위원회라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출판사와 신문사, 서점문화위원회 등이 모인 단체다.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독서 보급에 힘쓴다. 가시적인 운동으로는 ‘북스타트 운동’이 있다.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책에 친근해지도록 만드는 캠페인이다. ‘아침독서 운동’도 있는데 중학생들이 등교해 수업시간 전에 30분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운동이다.”

―한국의 젊은 출판 편집인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편집인은 24시간 근무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판단력을 갖추려면 항상 공부해야 한다. 특히 젊은 학자들과 모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지성적 틀을 마련하는 것도 편집인이 할 일이다.”(정양환 기자)

07.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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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7-12-01 16:25   좋아요 0 | URL
하핫, 저는 교정교열에 관한 책인줄 알고 눈이 번쩍~ 했어요.
그런 부분이 너무 취약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지..늘 마음먹고 있던 터라...

사실은 관련도서를 사놓고도 늘 미루고 미루고 안보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다닐때 국어 공부좀 열심히 할걸...후회가 마이 됩니다.

로쟈 2007-12-01 16:42   좋아요 0 | URL
교정교열도 편집자의 역할이긴 하지만 그것만 담당한다는 것은 너무 기능적이지요.^^

Koni 2007-12-01 21:38   좋아요 0 | URL
일본 출판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관심이 가네요. 이렇게 서재들을 돌다가 우연히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뻐요.

로쟈 2007-12-01 22:43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