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오랫만에 대형서점에 들러봤지만 뜻밖에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책들 외에 새로 나온 책이 없었다. 지갑을 열지 않아도 돼 다행이었지만 좀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다. 발견의 즐거움을 놓친 한주가 됐기 때문이다. 언론의 북리뷰들을 훑어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어디에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서 신간 리뷰를 따로 옮겨오는 수고를 이번주에는 덜게 되었다. 대신에 지난주에 나온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신작이 지난주에 소개됐었고 <영장류의 평화만들기>(새물결, 2007)가 그 제목이었다. 드 발의 책은 2003-2005년에 몇 권 소개되다가 작년을 건너뛰고 다시 올해 한권이 출간되었다. 나는 신간을 <침팬지 폴리틱스>(바다출판사, 2004)와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침팬지 폴리틱스>는 예전에 <정치하는 원숭이>(동풍, 1995)로 소개됐었고, 이것이 내가 알기엔 제일 처음 소개된 드 발의 책이다). 이 두 권의 북리뷰다.

한국일보(07. 11. 24) 영장류는 살기 위해 공격하고 살아남기 위해 화해한다

사소한 다툼에서부터 국가 간 전쟁의 원인까지를 설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격적’이라는 표현이다. 공격성ㆍ폭력성은 인간의 내적 본능으로 저열하고 동물적이며 정글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화해는 단지 선한 의미로서 폭력에 대한 상대적 표현에 국한된다.

하지만 공격적 기질 뿐만 아니라 화해적 본능도 영장류의 본능임을 알리는 책이 번역 출간됐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의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는 침팬지, 붉은원숭이, 붉은얼굴원숭이, 보노보 그리고 인간 이렇게 다섯 영장류의 화해 제스처를 관찰한 책이다. 이들의 평화 만들기 전략은 저자가 ‘주제’와 ‘변주’라고 부르듯 사회관계의 회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고유하게 나타난다.

네덜란드 아른헴 동물원의 침팬지 우두머리인 ‘니키’는 다른 침팬지 ‘헤니’의 등을 쳤다. 그러자 ‘헤니’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니키에게 인사하고 팔을 뻗어 손등에 키스하도록 했다. 니키는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니키는 헤니의 손을 입에 집어넣는 것으로 응하고 둘은 서로 입을 맞춘다. 영장류 중 가장 권위적이고 위계 서열이 확고한 붉은원숭이는 심한 공격 성향을 보이다 이후 입맛을 살짝 다시는 것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한다.

또 붉은얼굴원숭이는 상대방의 엉덩이를 붙드는 것으로 화해의 행동을 보이며 보노보는 심각한 갈등 이후 성행위로 화해한다. 화해의 동작은 이렇게 다양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 모든 화해의 행동이 일종의 생존의 전략임을 지적하고 “우리가 언젠가는 공격적 성향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우리가 가진 화해 능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이대혁기자)

한겨레(04. 04. 03) 탄핵할줄 아는 침팬지들

‘최소승리연합’이란 용어가 있다. 한 국가가 강대해지면 나머지 국가들이 두려움 때문에 강국에 대항하는 연합을 모색하고, 그 결과 모든 국가들이 영향력있는 지위를 갖는 권력의 평형상태가 이뤄지게 된다는 원리다. 인간이 구성한 사회단위 가운데 가장 상부에 있는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행위다. 그런데, 바로 이같은 고도의 정치 행위가 동물 사회에도 이뤄지고 있다면 책은 지난 1982년 침팬지가 정치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쳐 파장을 일으켰던 문제작이다. 지난 95년 국내에도 <정치하는 원숭이>란 이름으로 소개됐는데 최근 수정판본으로 다시 출간됐다.

네덜란드 출신의 동물행동학자인 지은이는 1976년부터 네덜란드 아넴에 있는 부르거스 동물원의 대규모 야외 침팬지 사육장에서 몇년 동안 침팬지 무리들을 관찰한 뒤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침팬지 무리의 최고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처절한 권력투쟁을 마치 영화처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침팬지도 ‘정치’란 단어의 주어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만약 책을 읽기 전에 침팬지의 정치, 즉 권력투쟁이 우두머리 자리를 노리는 수컷들끼리 벌어지는 몸싸움으로, 그리고 그 한판 승부의 결과에 따라 위계 질서가 정해질 것으로 예측했다면 이런 추측은 책을 통해 여지없이 박살나고 만다. 지은이가 관찰한 침팬지들의 최고권력자 쟁탈전은 결코 ‘동물적’ 힘겨루기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펼쳐지는 장기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침팬지들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은폐, 연기, 중재 등 수많은 정치 행위들을 끊임없이 수행한다.

아넴 동물원의 권력 투쟁은 1인자였던 침팬지 이에론에게 2인자 루이트가 도전하면서 시작됐다. 루이트는 이에론과 그 우군인 암컷들 사이의 유대관계를 하나하나 끊는 전술을 펴는 한편 젊은 침팬지 니키와 연합을 형성해 힘을 키웠다. 니키는 이에론과 루이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자기 가치를 높이다가 결국 루이트의 편에 붙었다. 루이트는 먹을 것을 따다주는 ‘산타클로스’ 전략으로
동료들의 환심을 사면서 이에론을 고립시켰고, 마침내 첫 싸움이 벌어진 지 72일만에 이에론을 굴복시키고 1인자에 등극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에론은 그 뒤 루이트와 니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실리를 챙기며 서열 3위 자리를 보장받았고, 이후 세 마리가 마치 ‘3두정치’하듯 서로 이간하고 연합하는 밀고당기기가 이어졌다. 권력 교체 1년 뒤 루이트는 니키와 이에론 연합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났고, 이번에는 니키가 1인자로 올라섰다. 그 뒤 3년 동안 이어지던 니키와 이에론의 연합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세침팬지가 벌이는 정치투쟁은 마치 <삼국지>나 <열국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긴장감을 조여가다가 1980년 또다른 반전과 함께 충격적인 결말로 끝맺는다.

지은이는 침팬지들의 삶과 사회에는 권력투쟁 못지않게 매력적인 다른 현상들, 곧 사회적 유대감 형성이나 화해, 사랑 등이 들어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그러나 침팬지란 ‘타자’ 속에 투영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마음 편치 않게 된다. 책에 묘사되는 침팬지의 비정하고 기회주의적인 속성은 바로 인간사회의 모습 그대로처럼 보이고, 결국 사회적 행동의 동기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탓이다. 과연 ‘정치’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된 것일까.(구본준 기자)

07. 11. 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