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문학기햄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한 작가는 미시마 유키오(도쿄의 작가이지만 대표작 <금각사> 때문에)와 윤동주(도시샤대학의 시비뿐 아니라 여러 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였다. 그리고 <고도>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오사카 출생이다)와 시바 료타로(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기념관이 건축적 의의도 갖는 곳이어서).
이튿날 일정에서 처음 들른 곳은 고베의 효고현립미술관에서 먼저 눈을 맞춘 안도 다다오의 시바 료타로 기념관이다. 오사카의 건축가기 오사카의 작가를 위해 설계했다는 곳(나로선 2017년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미니버스로 이동한 덕분에 기념관 바로 옆 주차장에 주차하고 곧바로 기념관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동네엔 유채꽃이 활짝 폈다). 기념관 안내원이 시바의 집필실(같이 있지만 창문을 통해서만 내부를 볼 수 있다)과기념관에 대해 짧게 소개했고 일행은 멋들어진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2만권의 장서가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지만 이미 익숙한 모습이었다. 대표작 <언덕 위의 구름>과 관련한 특별전시도 있었는데(9년 전에도 봤었는지 헷갈렸다) <료마가 간다>와 함께 시바 역사소설의 대표작이다(일본에선 각각 2천만부와 2천5백만부가 팔렸다는 책이다). 나는 시바문학의 대중적 성공비결과 의의, 소위 ‘시바 사관‘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을 보탰다(메이지시대를 이상화하고 쇼와 초기 군국주의와는 분리시키는 데 특징이 있다).
참고로 시바는 산케이신문 기자로서도 활동했기에 조선일보 편집국진을 역임한 <불꽃>의 작가 선우휘와도 친분이 있었다. 한국작가로는 같은 세대의 이병주(1921년생이다. 선우휘는 1922년생, 시바 료타로가 1923년생), 다음세대의 이문열과 비교됨직하다.
시바 료타로 기념관에 이어서 찾은 곳은 이바라키시립 가와바타 야스나리문학관이다. 이바리키시는 오사카 외곽도시로 교토로 이동하는 경로에 있어서 동선도 맞춤했다(마지막에 추가한 일정이었다). 오사카 출생의 가와바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슬하에서(누나와 조모도 일찍 세상을 뜬다. 그는 15세까지 조부와 산다) 자라는데, 현지명으로 이바라키에는 조부모가 살았던 집이 있었다(미니어처로 재현돼 있었다). 시립 문학관이 자리하게 된 이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문학관이 작가문학관에 맞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규모나 내용에서 특별하진 않았는데(가와바타문학관은 가마쿠라에도 있다. 에치고 유자와에는 설국문학관이 있고) 가와바타의 서재로 꾸며진 방에 기념촬영이 가능하다는 게 서프라이즈였다(일행 모두가 서재 주인인 양 기념사진을 찍었다. 책상에는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여 초기 대표작 <이즈의 무희> 원고가 놓여 있었다).
이바라키시에서 점심을 먹고 교토로 향하는 중에 때마침 꽃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조난구(성남궁)에 들렀다. 교토 남쪽을 맡고 있는 신사로 매화(수양매화)와 동백꽃이 유명하여 이른봄에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사진에서만큼 만개하진 않았지만 제철의 꽃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어서 찾은 청수사(기요미즈데라)는 교토의 간판 관광지답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이었지만 첫 방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교토가 이런 느낌이었지‘ 하는. 가와바타의 소설 <고도>가 다시 나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