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에서 '21세기의 사유들' 연재를 옮겨왔었는데, 알라딘에서 다른 분들도 옮겨놓는 터라 지난 두어 주를 생략했다. 이번주까지 하면 안토니오 네그리(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1) 비토리오 회슬레(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921) 장-뤽 낭시(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990) 등이 더 다루어졌다(기억에는 랑시에르 정도가 남아있다). 이 연재 대신에 옮겨놓는 것은 이번 가을에 출간된 두 권의 책,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과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 2007)에 대한 리뷰이다. '해체와 마르크스주의의 때맞지 않은 조우'라는 관점에서 이 책들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대학신문(07. 11. 19) 해체와 마르크스주의의 때맞지 않은 조우

세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크 데리다의 관계는 꽤 막역하다. 가령 루이 알튀세르는 데리다의 ‘악어(cai­ man)’였고, 데리다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악어’였다(‘악어’란 이들의 모교인 고등사범학교에서 교수자격시험 준비생들을 지도하는 과외교사의 별칭이었다). 그러나 세인들의 오해가 틀린 것도 아닌 것이, 마르크스‘주의’와 데리다의 관계는 겉보기에 그리 밀접하지 않았다.

물론 데리다가 1979년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렀고, 1982년에는 마이클 라이언이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라는 책을 발표해 데리다의 사유가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저서 전면에 처음 드러낸 것은 1993년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발표하면서였다.



프랑스의 역사적 맥락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데리다의 사상이 조우할 수 있는 계기는 1972~1978년과 1983~1984년에 마련됐다. 1972년 공산당은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발표했고(그 결과 1978년 총선에서 공산당은 프랑스 야당의 제1좌파 자리를 사회당에게 내줘야 했다), 1976년에는 제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포기했으며, 1983년부터는 공산당 지지자들이 대거 사회당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요컨대 이 기간 동안 공산당은 전후 이래로 프랑스 지성계에서 확고하게 누렸던 ‘어떤’ 권위를 잃었고, 그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을 옭아맸던 교조주의가 무너졌던 것이다.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데리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서로에게 ‘말조심’하게 만들었던 ‘봉쇄장치’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알튀세르가 데리다를 우호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두 편의 수고(手稿),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1982)과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1986)을 집필한 것도 이 무렵이다.

데리다의 이력에서 보면 더욱 더 직접적인 계기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인 1990년에 찾아왔다. 이 해는 1985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발표했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동구권에서부터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으며 서서히 종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점에서 진정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이었다. 이 가을의 끝자락이 겨울을 예고할 즈음인 1990년 초, 데리다는 전세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의 고향인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그 뒤(『마르크스의 유령들』 이외에도) 『다른 곶』(1991), 『법의 힘』(1994), 『우정의 정치학』(1994) 등 정치적 저서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고 2007년, 이제 우리 앞에서도 데리다의 사상과 마르크스주의의 조우가 ‘때맞지 않게’ 되풀이되고 있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가 각각 15년과 11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앞에 나란히 도착한 것이다(사실 『대중들의 공포』의 모태는 1994년 영어로 먼저 발표된 『대중들, 계급들, 관념들』이니 이 책 역시 약 15년의 세월을 건너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지 예전에 발표됐던 책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이 조우가 ‘때맞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등장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준거의 토대, 즉 현실사회주의가 와해된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때맞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가 그때보다 훨씬 강고해진 바로 지금 이곳에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더욱 더 때맞지 않은 것이리라. 게다가 발리바르라니, 누가 지금도 알튀세리앙들을 읽는단 말인가? 이 ‘때맞지 않음’은 단순한 ‘시대착오’가 아닐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데리다와 발리바르(이제부터 이 고유명사는 ‘동시대 마르크스주의’의 환유이다)의 조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발리바르 이전에 알튀세르가 주목했던 데리다의 개념들은 ‘여백(marges)’과 ‘산포(disse′mination)’였다. 알튀세르는 이 개념들을 통해 일체의 목적론을 부정한 새로운 유물론, 즉 마주침의 우발성과 혁명의 필연성을 사유하는 유물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에서 라이언이 시도하고자 했던 바도 (비록 좀더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데리다와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일체의 ‘형이상학’(여기에는 실증주의, 자연주의, 객관주의 등을 비롯해 당/국가로 상징되는 중앙집권주의/중심주의, 자본주의의 신용체계 등이 모두 포함된다)에 대한 비판자라는 점에서 비교 가능하다는 것이 라이언의 전제였다.

발리바르도 형이상학의 해체라는 데리다의 테마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알튀세르나 라이언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데리다의 방법론 자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들과 다르다. 데리다와 발리바르가 공유하는 이 방법론, 흔히 우리가 ‘해체(deconstruction)’라고 부르는 이 방법론을 내 식으로 풀자면 ‘아포리아(aporia)의 드러냄’이다.

데리다는 ‘정치적 전환’을 감행하기 전에도 늘 아포리아에 주목해왔다. 데리다가 형이상학을 해체할 때 즐겨 쓴 방식이 바로 이것, 즉 일체의 형이상학적 담론에 내재된 논리적 궁지(또는 결정불가능성/계산불가능성)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발리바르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개념들, 요컨대 이데올로기, 계급, 당/국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이해해왔던 방식대로의 정치 개념 그 자체가 다다를 수밖에 없는 아포리아를 드러냄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내부에서부터 ‘해체’한다.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대중들의 공포』에는 데리다와 발리바르의 이런 유사점이 책 제목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령’이 아닌 유령‘들’, ‘대중’이 아닌 대중‘들’로 표기된 제목에서부터. 복수(複數)로 표기된 이 두 단어는 그 자체의 양면성/양가성을 드러낸다(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데리다의 개념은 오히려 ‘파르마콘’[pharmakon]이다). 가령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마르크스라는 유령을 무력화하려는 자들에 맞서 그 유령의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우리는 유령을 지켜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괴롭혔던/괴롭히고 있는 유령을 넘어서야 함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우리는 유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극복해야 한다”). 발리바르 역시 『대중들의 공포』에서 지배계급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혁명 세력으로서의’ 대중들에 주목함과 동시에(“우리는 대중들의 급진성을 믿어야 한다”) 지배계급의 권력에 공포를 느껴 수동적이 되는 ‘반동 세력으로서의’ 대중들에게도 눈길을 돌린다(“우리는 대중들의 수동성을 주시해야 한다”).

어쨌거나 데리다나 발리바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들의 연구 대상이 불러오는 아포리아를 해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포리아를 끌어안음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여는 데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때맞지 않게’ 도착한 이 두 책의 조우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데리다는 당대의 정치지형 내에서 ‘타자’로 존재하고 있던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끌어안음으로써 종교적인 것과 정치의 관계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갔고, 발리바르는 대중들의 야누스적 얼굴을 끌어안음으로써 반폭력/시민인륜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탐구하고 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때맞지 않음’을 단순한 ‘시대착오’의 일회적 에피소드로 끝낼지, ‘새로운 가능성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으로 만들지는 이제 이 두 책을 읽을 우리의 몫이다.(이재원_전문번역가)

07. 11. 18.

Жак Деррида в МосквеThe Althusserian Legacy

P.S. 두 가지 사항, 혹은 두 가지 책에 대해 덧붙이고 싶다. 먼저,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을’ 끝자락이 겨울을 예고할 즈음인 "1990년 초, 데리다는 전세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의 고향인 모스크바를 방문했고"란 대목과 연관된 책은 <모스크바의 데리다>(러시아어, 1993)이다(이 책은 어쩌면 내년에 국역본이 나올 수 있다). 이 데리다 텍스트의 영역본은 'Back from Moscow, in the USSR'이란 제목으로 마크 포스터의 책 <정치학, 이론, 그리고 현대문화>(1993)에 수록돼 있다. 데리다의 텍스트는 앙드레 지드의 <소련기행>,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그리고 비틀즈의 노래 'Back in the USSR'(http://www.youtube.com/watch?v=4-2LQGigK-0)을 밑텍스트로 한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한 권은 데리다와 마르크스주의, 보다 구체적으론 데리다와 (자신이 '악어'였던) 알튀세르와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텍스트가 수록된 카플란과 스프린커 편집의 <알튀세르의 유산>(1992/1993). 데리다의 이 텍스트는 언젠가 잡지 <이론>에 윤소영 교수의 번역으로 절반만 소개되었다(내가 읽은 건 그 절반이다. 마저 번역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또한 완역으로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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