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페이퍼'로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책들' 소개이기 때문에 '11월의 읽을 만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1670896) 목록과 얼마간 중복되기도 한다. 눈에 띄는 책이 중복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단, 대학원신문에 게재되는 글이라서 조금 '학술적인' 책들도 여기서는 다루게 된다. 물론 분량상 이번에도 빠지게 된 책들이 다수 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각하는 책들이 있다. 허다한 고전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형편이므로 제 때 나오지 않았다고 나무랄 수는 없겠다. 번역은 혁명만큼이나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1988)의 <기나긴 혁명>(문학동네)이 최근에 출간됐다(*보통은 '윌리엄즈'로 표기돼 왔지만 새 표기법에 따르면 '윌리엄스'인 모양이다). 원저는 1961년에 나왔으니 역자의 토로대로 “출간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고, 저자가 사망한 지도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90년대 팽배했던 문화연구의 열풍이 한풀 꺾이고 나서야 영국 문화연구 ‘원조’의 주저가 나온 셈이니 말 그대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1958년에 나온 <문화와 사회 1780-1950>(이화여대출판부, 1988)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고 쓰인 것이다(원저의 속편이 3년 만에 출간되었다면 한국어본의 속편은 20년 만에 나온 것이 된다). 국내에 그보다 먼저 소개되었던 책이 <이념과 문학>(문학과지성사, 1982)으로 번역된 <마르크시즘과 문학>(1977)이었다(이 책은 <문학과 문화이론>(경문사, 2003)이란 제목으로도 출간됐다. *번역은 모두 불만스럽다는 평이다). 연이어 <문화사회학>(까치, 1984) 등도 소개되었으니 한때 윌리엄스는 ‘상종가’였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서 우리는 그 ‘전설’과 뒤늦게 재회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윌리엄스의 선배비평가이자 라이벌이었던 F. R. 리비스(1895-1978)의 비평서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나남)이 나란히 출간된 사실이다. 이 책은 1948년작이니까 거의 6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리비스와 윌리엄스를 다룬 연구서 <비평의 객관성과 실천적 비평>(창비, 1993)에서 김영희 교수는 “특히 리비스의 경우에는 소개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서문에 적었는데, 그 ‘소개’의 몫은 결국 저자 자신이 지게 되었다. 리비스와 윌리엄스를 ‘비판’하고 있는 다음 세대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창비, 1986)이 소개되고도 20년이 더 지난 뒤이다.  

따지고 보면 1960년대 영국의 이론적 정세는 ‘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로’란 방향설정이 우리의 90년대와도 흡사한데 이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을 전해주는 책으로는 ‘1960년대 이후 영국 문학이론의 정치학’을 부제로 달고 있는, 김용규 교수의 <문학에서 문화로>(소명출판, 2004)가 있다(*김영희 교수의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기로 작정하면 거칠 것도 없다. 서양 중세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이미 평가받고 있는 아일린 파워(1889-1940)의 <중세의 사람들>(이산)도 최근에 출간됐다. 1924년작이다. 제목 그대로 중세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인데, 파워의 영향하에 쓰인 노만 켄터의 <중세이야기>(새물결, 2001)와 함께 읽어볼 만하다. 아울러 중세를 다루고 있는 책으로 클라우스 리젠후버의 <중세사상사>(열린책들)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총 20권에 달하는 <중세사상원전집성>을 발간하였다고 하며 이 책은 일종의 안내서라고. 말하자면 1500년에 걸친 방대한 중세사상으로 들어가는 ‘문’인 셈이다(*이미 출간된 책으로는 에티엔느 질송의 <중세철학사>(현대지성사, 1997)가 고전에 속한다).  

 

 

 

 

 

 



중세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만난다. 그의 <형이상학>(이제이북스, 2007)이 드디어 완역돼 나왔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서구 형이상학의 ‘기원’이라 할 고전이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들, 예컨대 '있는 것(존재)'이란 무엇인가란 물음 자체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이참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까치, 1998) 등과 함께 형이상학적 사유로의 여행을 위한 묵직한 배낭을 꾸려볼 수도 있겠다. 곧 찬바람이 불고 ‘기나긴 밤’들이 도래하지 않겠는가. 


 

 

 

 

 

 

 

 

이런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문명 이전의 세상, 아예 인간 없는 세상이다! 그 먼 과거에 대한 상상력까지 부추기는 책은 우리의 먼 미래를 상상하는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이다. 어느 날 인류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인류와 함께 없어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남길 유산은 무엇인가를 탐문해가는 여정에서 그가 계산해주는 바에 따르면 인류가 과배출해낸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아니 흔적은 지워져갈 것이다. 그래도 혹 영혼은 남을까? 칼 지머의 <영혼의 해부>(해나무)와 트레이시 키더의 <새로운 기계의 영혼>(나무심는사람)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지 모르겠다. 흠,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07.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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