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기행 3일차이고 지금은 상하이행 기차를 타기 위해 베이징남역으로 이동중이다. 차가 좀 막혀서 예상보다는 시간이 좀더 걸릴 듯싶다. 우리가 타려는 기차는 초고속열차로 상하이까지는 4시간반이 소요된다. 항공편을 이용하더라도 이착륙 시간과 이동거리 생각하면 그 이상 걸리지 않을까 싶다.

오늘 베이징의 날씨는 예상과 달리 흐림이다. 어제까지의 맑고 파랗던 하늘 대신에 구름이 많이 낀 회색빛 하늘이다. 아침에 캐리어를 챙겨서 이틀 묵은 숙소를 빠져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라오서 고거. 당초에는 어제의 방문지였으나 최근 갑작스렇게 고거를 찾는 인파가 몰리면서(정원의 감나무가 입소문을 타서 그렇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입장예약이 어려워졌고 하는 수없이 외관만 보는 것으로 변경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지금은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가는 중이고 벌써 2시간반이 경과해 이제 두시간쯤 남겨둔 상태. 도중에 송수신기를 이용해 상하이 시기의 루쉰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베이징에서 지내던 루쉰이(어제는 루쉰박물관 한쪽에 있는 루쉰 고거도 찾았는데, 베이징 시절 루쉰이 살았다는 집이다) 상하이 내려오게 되는 건 1927년 하반기다. 1936년 10월 타계할 때까지 9년여 생활이 상하이를 터전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 시기 베이징여자사범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난 쉬광핑과 동거하게 되고 1929년에는 아들 저우하우잉을 얻게 되므로 개인사적으로는 매우 유의미한 시기이기도 하다(루쉰이 사망했을 때 아들은 7살이었다).

상하이의 루쉰은 1930년대 상하이 문학장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1930년에 결성된 좌익작가연맹(좌련)과 비슷한 시기 상하이를 거점으로 유행한 신감각파 문학이다(일본 신감각파의 영향을 고스란히 수용했다). 좌련의 대표격으로 취추바이(1899-1935)를 지목할 수 있다면, 신감각파의 간판은 무스잉(1912-1940)이었다. 다행히 이들의 책이 번역돼 있어서 이 시기 중국문학은 물론 상하이 시기 루쉰의 입지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강의에서는 이 시기 문학장 속에서 루쉰의 입장은 한쪽으로 쏠린 것이 아니라(루쉰은 좌련의 맹성 소장파들과도 논쟁을 벌였다) 균형잡힌 것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마오가 중국혁명의 주장이며 위대한 혁명가라고 치켜세운, 그럼으로써 일면화한 루쉰을 재독해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작 그런 작업은 (20권 규모의 전집을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일이고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루쉰을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 정도는 미리 마련해도 좋으리라. 상하이에서 재회하게 될 루쉰이 기대되는 이유디...

아래는 베이징의 중국현대문학관에 서 있는 루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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