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정신없이 보낸 탓에 서재에 들어와보는 것조차 낯선 느낌은 갖게 된다. 어제 밤을 새고 오늘은 아이의 학예회 발표가 있어서 시청 강당에 가 꾸벅꾸벅 졸다가 저녁 나절에 한숨 자고 일어난 것이 이 시간이다. 정신을 좀 가다듬으려고 모처럼 여유를 부려서 '무시무시한 책들을 읽자!'(http://blog.aladin.co.kr/mramor/1641777)에서 꼽아둔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2007)을 펼쳐들었다. 서문 정도 읽어볼 참이었는데, 웬걸, 시작부터가 만만치가 않다. 이 책 자체가 1960년에 초판이 나온 것이어서 서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이미 '시간여행'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르트르의 상상력론이 주된 검토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일단 그렇다. 국내에 사르트르 전공자들이 적지 않지만 아직 그의 <상상계>(1940)와 <상상력>(1950)이 번역돼 있지 않다. 뒤랑을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건 미리 짐작해볼 수 있다. 도움이 될 만한 서평이 없나 찾으니 지난주 기사 하나 정도가 눈에 띈다. 그래도 가장 긴 분량을 할애한 서평기사라서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7. 10. 13)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자유로운 상상력도 일정한 틀과 유형에 의거해 작동하고 있음을 분석한 고전이다. 저자인 질베르 뒤랑(86)은 영미권의 노스럽 프라이와 함께 신화비평이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1960년 출간된 이 책이 이제 번역이 된 것은 방대하고 난해한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뒤랑이 국내 소개된 프랑스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와 전혀 다른 전통에 속한 학자라는 낯섦 때문이기도 하다. 뒤랑을 이해하려면 스승인 가스통 바슐라르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상력의 해방가’로 알려진 바슐라르는 서구 이성 중심의 전통에서 ‘거짓과 오류의 원천’이자 이성의 어두운 그림자로 비판받아 온 상상력을, 이성과 동등한 위치로 올린 철학자였다. 바슐라르가 이를 과학과 시학으로 양립시켰다면 뒤랑은 상상력의 토대 위에 이성이 작동한다며 “이성은 상상력의 특수한 형태”라고 설파했다. 뒤랑은 상상력이 물 불 공기 흙의 원형이미지의 변형으로 이뤄진다는 스승의 4원소론이 지닌 서구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며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상상계의 구조와 체계를 확립했다.
이 책의 서문은 웬만한 학자도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난삽하다. 20세기 상상력연구의 전기를 마련한 사르트르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이론 수립을 위해 국내 독자들에겐 낯선 온갖 ‘주의’를 종횡무진하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바슐라르 외에도 정신분석학자 구스타프 융, 러시아의 신경과학자 V M 베흐테레프를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다.
뒤랑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상상력의 인류학을 위해 베흐테레프가 정립한 반사학의 지배 반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지배반사란 인간의 조건반사적 행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몸짓을 말한다. 그것은 신체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자세 지배소와 섭취 지배소, 교접 지배소다. 그는 이 3대 지배몸짓에 융의 원형이론을 적용해 상상계의 3대 구조를 수립한다. 그것이 바로 자세 지배소와 연관된 분열형태구조(영웅적 구조), 섭취지배소와 연관된 신비구조, 교접지배소와 연관된 종합구조(드라마적 구조)다.
분열형태구조는 선악, 빛과 어둠 같은 분열과 대립구도가 중시되며 신비구조는 동화와 내면화를 지항한다. 종합구조는 상이한 요소의 결합을 강조하며 무한한 반복의 힘을 표현한다. 뒤랑은 이런 구조들을 낮과 밤의 양대 체제로 재범주화한다. 분열형태구조는 이미지의 낮 체제에 속하고 신비구조와 종합구조는 이미지의 밤 체제에 속한다. 본문은 바로 이 2체제 3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의 영향 아래 있던 푸코, 들뢰즈, 데리다가 ‘차이’를 강조하는 반플라톤의 지적 전통에 있다면 뒤랑의 인류학은 ‘공통성’을 지향하는 플라톤적 전통에 있다는 발견이다. 인간 내면의 원형으로서 이데아를 강조한 플라톤적 전통은 문학평론가에서 문화인류학자로 변신한 르네 지라르의 모방의 문화인류학에서도 확인된다. 프랑스 지성계의 또 다른 다원성을 보여 준다.(권재현 기자)
07. 10. 26.
P.S.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건 러시아의 신경과학자 베흐테레프에 대한 언급. 각주와 참고문헌에 등장하지만 찾아보기에는 빠져 있어서(국역본과 영역본의 색인 모두에서 '베흐테레프'는 등장하지 않는다) 얼마나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본문에서는 58-64쪽 정도에 걸쳐서 나온다), 여하튼 찾아보면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베흐테레프(1857-1927)이고 러시아에서는 <미래의 정신의학>이란 책이 지난 1997년까지도 출간된 바 있다. 부제는 '병리반사학 입문'이라고 돼 있다(병리반사학?).
58쪽의 역주에 따르면 베흐테레프는 "소련의 신경학자로서, 신경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조건 반사의 방법을 이용하여 '반사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하였으며, 자극에 대한 반응을 연구함으로써 객관적 심리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가 창도한 반사학은 운동신경계의 조건 반사인 운동 연합 반사를 기초로 고등한 정신활동을 설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설명돼 있다. 뒤랑이 참고하고 있는 책은, 특이하게도 국역본의 참고문헌에는 빠져 있는데, 역시 58쪽의 저자주를 <새로운 반사학과 생리신경계>(전2권, 1925-1926), <인간의 반사작용의 일반원리>(영역본, 1933), <객관심리학> 등이다. 개인적으론 로만 야콥슨과 베흐테레프 사이의 관계 등이 궁금한데(자세히 찾아보진 않았지만 두 사람의 이름이 같이 검색되는 글들이 있다) 아마도 '실어증'에 관한 연구 등에서 야콥슨이 베흐테레프를 참조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정좌하고 읽어야 하는 서문에서 일단 후퇴하여 역자 후기('옮기고 나서')로 넘어가보았다. '뒷계단'을 통해서 들어가보려는 심사다.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뒤랑이 그르노블대학에서 '상상력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서울 상상계 연구센터' 및 '한국상상학회'를 주도하고 있는데, 그 좌장격은 보들레르 연구자인 유평근 교수였다(말을 붙이자면 '그르노블 마피아'쯤 된다). 역자인 진형준 교수는 또 그 제자여서 '뒤랑-유평근-진형준'식의 계보가 만들어지는 것. 두 사람의 공동저작이 <이미지>(살림, 2001)이고, 유평근 교수는 뒤랑의 <신화비평과 신화분석>(살림, 1998)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이런 책들이 모두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건 한때 <상상>이란 잡지를 내고 상상력 총서를 발간한 전력과 관련된다(기억에 진형준 교수는 그 총서의 기획자였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살림, 1997) 같은 책 말이다. 그 정도의 예비지식을 갖고서 후기를 읽어봤다.
"유평근 선생님이 권유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읽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질베르 뒤랑의 지도하에 보들레르를 연구하고 귀국하신 유 선생님이 뒤랑의 역작을 내게 권하시면서 하신 말씀은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당신도 이 책을 여섯 번 정도 읽고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공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며 당장 활용하기도 어려우리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유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저자의 기본정신, 혹은 이 책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거나 논리적인 추론훈련을 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697-8쪽)
역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수제자가 여섯 번이나 읽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책인지라 위안과 낙담을 동시에 갖게 된다("단번에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하군!" "난 열번을 읽어도 이해 못학 거야!"). 하지만 요는 아무리 둔재라 하더라도 '책과의 씨름'을 멈추지 않는 것. "뒤랑을 공부하면서 나는 다원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고 주관성의 의미를 배웠으며 상상력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리고 서구의 인식론의 흐름을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획득했으며, 무엇보다 종합적인 정신을 배웠다. 그리고 유 선생님이 이 책 읽기를 권하면서 하신 말씀들의 참뜻을 이해했다."
이쯤 읽으니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지금은 뜸한 듯하지만 문학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저자가 낸 평론집들이다. <깊이의 시학>(문학과지성사, 1986), <또 하나의 세상>(청하, 1988) 등이 그 책들로 내가 대학 1-2학년때 읽었던 것이나 어느새 20년 전 얘기이다(작년에 읽은 책들보다도 기억에는 생생하건만). 관형사 '그'가 거의 매 문장마다 나오는 특이한 문체와 함께 뒤랑의 상상력이론을 자세하게 소개하던 글들이 기억난다. 저자는 이후에 <아주 멀리 되돌아오는 길>(살림, 1997)을 더 냈지만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 나온 것은 1960년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거의 5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뒤랑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서 강연을 한 프랑스의 철학자 뷔넨베르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바슐라르를 갈릴레이에 비교할 수 있다면 뒤랑은 코페르니쿠스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갈릴레이도 코페르니쿠스와 마찬가지로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동설을 하나의 큰 체계로 설립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이다. 바슐라르가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이룩한 것, 상상력의 놀라운 기능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거대한 인식의 체계를 이루는 데 성공한 사람은 바로 뒤랑이라는 것을 뷔넨베르제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랑의 <상상력의 인류학적 구조들>은 그만큼 새로운 인류학적 틀이면서 거대한 종합적 틀이고 거대한 만큼 섬세한 틀이다."(699쪽)
그 거대한 틀이란 것은 본문의 결론 뒤에 붙은 '상상계의 동위적 분류도'를 통해서 일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두툼한 책 전체가 이 '분류도'에 대한 해설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역자의 인용대로 바슐라르-뒤랑을 갈릴레이-코페르니쿠스에 비유한 것은 명쾌해 보인다. 후기의 이어지는 내용은 이제 그 '구조들'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조감이지만, 나는 이쯤에서 걸음을 멈춘다. 장정일의 말대로 공부란 건 내가 반 정도 하고 나머지는 당신이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