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페이퍼'로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예의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한 소개이다. 정작 내가 아직 손에 들지 않은 책들도 많은데, 특히 마지막에 거론한 <백낙청 회화집>이나 한창기 선생 문집 등은 나의 재력으론 감당할 수 없고 도서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겠다. 그런 식으로 또 한 계절이 지나가누나... 

깊어가는 가을 독서의 여정은 ‘무시무시한 책’부터 시작해보자. 노엄 촘스키가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생생하고, 풍부하며, 명료하다.”며 격찬한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이 바로 이 ‘무시무시한 책’이다(실상 무시무시한 건 책이 아니라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사다리 걷어차기>(부키, 2004) 이후 일련의 저작들을 통해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치명적인 덫에 대해서 신랄하게 폭로해왔다. 하여 ‘우리시대의 경제학 멘토’에게서, 덩달아 ‘무시무시한 인간’이 되지 않고도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을 얻어 보도록 하자.

 

 

 

 

그리고 여차하면 아이비리그의 경제학 멘토 로버트 프랭크의 <이코노믹 씽킹>(웅진지식하우스, 2007)의 도움도 빌리자.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걸핏하면 ‘경제’를 말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부수적으론 “인문학 교수들은 왜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할까?” 간파하기 위해서도(사실 어려운 질문은 아닌데, 박식함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이 권위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경제문제가 ‘해결’이 되면, 보다 근원적이거나 거시적인 관심을 가져보자. 프랑스의 인문학자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2007)은 아마도 최근에 나온 가장 방대한 이론서일 텐데, 부피에 걸맞게 문학, 인류학, 사회이론, 심리학, 종교사를 모두 아우르는 상상력 연구의 고전이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1626055). 곧바로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진형준 교수의 <상상적인 것의 인간학>(문학과지성사, 1992)이나 송태현 교수의 <상상력의 위대한 모험가들>(살림, 2005)을 미리 참조하는 게 좋겠다. 전자는 뒤랑의 신화방법론을 다루고 있는 연구서이고, 후자는 뒤랑의 상상력 이론을 융, 바슐라르의 이론과 함께 개관하고 있는 책이다.

 

 

 

 

거시적인 것으로 치자면 문명론을 빼놓을 수 없겠다. 임철규 교수의 <그리스 비극>(한길사, 2007)은 서양문명과 정신사의 한 기원이라 할 '그리스 비극' 전체를 깊이 조명하고 있는 연구서로서 이 분야의 국내서로는 가장 두툼하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1617149). 천병희 교수의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나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를 읽고서 매혹과 함께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이 계절에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그리스문명학의 권위자 장 피에르 베르낭의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주저의 하나인 <그리스인의 신화와 사유>(아카넷, 2005) 외에도 <그리스 사유의 기원>(길, 2006), <베르낭의 그리스 신화>(성우, 2004) 등이 소개돼 있다. 이 경우에도 김재홍 교수의 <그리스 사유의 기원>(살림, 2003)을 길잡이삼아 먼저 읽어볼 수 있겠다.

 

 

 

 

 

 

 



 

기원으로서 그리스 문명론과 함께 읽어봄 직한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1875)과 그에 대한 자세한 읽기이다. 지난봄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에 이어서 고야스 노부쿠니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역사비평사, 2007)가 김석근 교수의 노고로 최근에 한국어본을 얻었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1111057). 후쿠자와의 책은 일본 근대사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해둘 만한 책이니 두 권의 ‘참고서’는 아주 요긴하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정작 <문명론의 개략>(홍성사, 1986)이 절판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그의 자서전도 소개된 마당인지라 이런 ‘공백’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상상력과 문명에 대한 풍족한 독서의 여정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다시 우리가 내딛고 있는 현실적 지반이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책들도 그런 의미에서 챙겨둘 만하다. 한국 현대 지성사의 산 증인이자 사상계의 거목 백낙청 교수의 <회화록>(전5권, 창비사, 2007)은 말 그대로 ‘우리시대 지성사 40년의 집대성’이다. 더불어, 월간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이었던 고(故) 한창기 선생의 문집 <배움 나무의 생각>(휴머니스트, 2007) 외 두 권도 지난 시대의 소중한 발자취로 기억해둠 직하다.

 

 

 

 

그럼, 이제 챙길 건 다 챙기고 기억할 건 다 기억한 것인가? 앗, 유령들을 빼놓았다! 새 번역본이 나온 ‘무시무시한 책’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은 각자가 상대하시길!..

 

 

07. 10. 19.

 

 

 

 

 

 

 

 

 

 

P.S. 분량상 다루지 못한 책들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책은 타니아 모들스키의 <너무 많이 알았던 히치콕>(여이연, 2007)이다. 원제는 'Hitchcock & Feminist Theory'(히치콕과 페미니즘 이론)라고 뜨는데, 찾아보면 '너무 많이 알았던 여자들'이 타이틀이고 그건 부제로 돼 있다. 여하튼 페미니즘 이론으로 히치콕의 영화들을 독해하는 책인 듯하다.

 

 

문득 모스크바에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2001)을 자세히 읽던 기억이 난다. 좀 으스스한 그의 영화세계로 떠나가보는 것도 계절을 나는 한 가지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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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0-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아니라 이미 겨울입니다.. 가을 자켙은 하루이틀 걸치는 것으로 제 임무를 다하는군요. 가을이 가도 저 무시무시한 책들은 독서리스트에 올립니다. <그리스 비극>과 <나쁜 사마리아인>. 그리고 저 지젝도 최근에 다시 읽고 있어요.
건물의 창들이 좀 비현실적으로 보여요. 그 안에 것이 궁금해지지 않을 정도로^^

로쟈 2007-10-19 20:09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직 한달이 남았는데요.^^; 건물 사진은 아마 영화 스틸사진일 겁니다(자연스레 '비현실적'인)...

2007-10-20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20 12:21   좋아요 0 | URL
'참으로 열심히' 읽지는 마시길. 저도 가끔 사기를 당하니까요.^^;

Kitty 2007-10-2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페이퍼에서 무려 지금 읽는 책을 발견하다니 감동(?) ㅠㅠ
Economic naturalist(이코노믹 씽킹?;;) 읽고 있는데 재미있네요.
소개해주신 책들 언제나 감사히 잘 참고하고 있습니다 ^^

로쟈 2007-10-20 12:22   좋아요 0 | URL
사실 경제학 책 두 권은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책들이죠.^^ 이미 베스트셀러들이니까요...

lastmarx 2007-11-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대 대학원신문을 보니 4면에 실렸더군요. 인터넷 서평꾼이라는 겸손한 소개와 함께. 로쟈님을 종이로 접하니 색다른 반가움이 또르륵.

로쟈 2007-11-04 09:52   좋아요 0 | URL
편집자가 제목을 더 그럴 듯하게 붙였더군요.^^;

lastmarx 2007-11-04 11:42   좋아요 0 | URL
6면의 제 글은 '가라타니'를 '가라타니 고진'으로 고쳤으니 고쳤다고 할 수도 없는데, '무시무시한 책과 가을나기'는 로쟈님이 붙인 게 아니었군요. 일교차도 심한데.

로쟈 2007-11-04 11:59   좋아요 0 | URL
대부분의 타이틀은 그냥 편집자가 알아서 붙입니다. 저도 쓰신 글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