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박물관에서 눈길을 끈 것 가운데 하나는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와의 교분이다. ‘문학의 프로이트‘로 불리는 슈니츨러는 프로이트(1856-1939)와 동시대를 살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관심을 공유했다(특히 꿈, 그리고 성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슈니츨러는 자신의 분신인 양 생각했고 그래서 오히려 직접적인 대면을 두려워했다고도 전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꿈의 노벨레>만 하더라도 프로이트적 분석을 매우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이잖은가.

츠바이크도 그렇지만 슈니츨러의 작품도 번역은 꽤 됐으나 잘 정돈돼 있지는 않다. 작품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기별 대표작들을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겠다. 강의에서 주로 읽은 작품은 초기작 <라이겐>(<윤무>)과 중편 <꿈의 노벨레><카사노바의 귀환> 정도다.

프로이트와 슈니츨러 모두 현대인의 심리(마음)의 발견자로서 지분을 갖는데, 확대하면 ‘심리적 인간‘(호모 사이콜로지쿠스)에 대해 지분을 갖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심리적 인간에 대한 해명과 함께 오스트리아(특히 빈)가 이에 대해서 갖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 궁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설적 차원에서 신경증적 인간과 분열증적인 인간이 19세기와 20세기초 반동의 두 제국, 즉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수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단지 우연일까. 18세기 독일이 ‘교양‘을 탄생시켰다면 19세기말 빈은 (신경증적) 마음(심리)을 발명했다고도 말하고 싶다(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오늘 문학박물관을 방문하기에 앞서 프로이트와 슈니츨러 문학의 의의, 그리고 세계문학지도에서 빈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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