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문학기행 때 고생한 기억 때문에(역대급으로 공항이 붐볐다) 계획보다 일찍 공항버스에 올랐다(집합시간에 맞춰 7시30분 버스를 타려다가 일찍 눈이 떠진 김에 6시40분 버스를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건 8시10분. 환전하고 유심칩을 구입하니 이번 여행 참가자분들이 눈에 띄었다. 문학기행 모드가 되는 순간이었다(이 모드에선 언제나 여행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스위스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항은 예상보다 한산해서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는 데 한시간 남짓밖에 소요되지 않았다(지난번 일본행 시에는 2시간반 이상이 소요됐었다). 모처럼 여유롭게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어제에 이어서 출발전 소감을 적는다.

이번 여행도 항공편은 루프트한자다(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가장 많이 이용한 항공편 같다). 슬로베니아는 직항이 없어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게 된다. 환승 대기 시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서점에 들를지 모르겠다. 2017년 가을 카프카문학기행 때 처음 프랑크푸르트 공항서점에 들렀고 때마침 한강 작가의 영어판 책 두권(<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이 매대에 진열돼 있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한국작가의 베스트셀러 책이 극히 희소한 때였으니). 그때는 첫 목적지가 빈이었는데 직항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사소한 인연이긴 해도 이후로 프랑크푸르트는 공항서점과 같이 떠올리게 된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날아갈 곳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다. 사실 슬로베니아란 나라와 류블랴나란 도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전적으로 슬라보예 지젝 덕분이다.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국내에 소개된 이 철학자의 이름을 접한 건 90년대 후반이지만 책을 정색하고 읽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고 이후에 나에겐 가장 중요한 동시대 철학자가 되었다(2004년에 타계한 자크 데리다와 함께). ‘지젝거리다‘란 말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는데 내가 바로 그 당사자 중 한명이다(‘지젝 전도사‘였잖은가!). 류블랴나는 내게 그 지젝과 그의 친구들(슬로베니아 라캉학파로 알려진 류블랴나 학파)의 도시였다.

사실 그런 이유만으로 문학기행에 류블랴나를 포함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거기에 페터 한트케가 더해지면서 명분이 생겼다(한트케와 슬로베니아에 대해선 따로 다룰 예정이다). 남부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트케는 어머니가 슬로베니아인이다(그러니까 한트케의 외가가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어가 한트케로선 어머니의 언어, 모어인 셈이다. 아버지의 나라(생부와 계부가 독일인이다)와 어머니의 나라(슬로베니아) 사이 오스트리아의 작가 한트케! 한트케문학의 흥미로운 문학지리다.

이 두 사람의 생존 철학자, 작가를 명분삼아 류블랴나를 방문하기로 결정한 뒤, 늦게서야 알게 된 작가가 슬로베니아의 국민시인 프란체 프레셰렌(1800-1849)이다. 류블랴나 도심광장에 동상이 서 있고 광장의 이름 자체가 프레셰렌광장인 데서 그의 위상과 상징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에겐 작품이 전혀 소개되지 않아 낯설 수밖에 없는데, 슬로베니아인들에겐 김소월과 한용운을 합해놓은 것 같은 존재다(소월과 만해를 같이 언급한 것은 우리 시인들의 작품 편수가 적어서다).

아마도 류블랴나에서의 첫 일정은 프레셰렌광장을 찾아 그의 삶과 문학을 잠시 음미해보는 일일 듯하다. 온라인에 떠있는 그의 시의 영어본과 한글본(AI번역)을 참고해서 나도 몇마디 소개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의 본격일정이 그렇게 시작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