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지난주에 발표된 올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에게 돌아갔다. 이미 10년쯤 전에 수상했더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단골 후보였는데(미국 작가 필립 로스나 조이스 캐롤 오츠도 그런 식이다. 다들 오래 살아야겠다), 좀 미뤄진 탓에 올해 88세가 되는 최고령 수상작가가 됐다(2004년 옐리네크의 수상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작가로는 지난 1987년, 그러니까 딱 20년 전에 망명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가 수상한 이래로 수상작가가 없어서 은근히 거명되기를 기대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레싱의 수상소감대로 "그들은 '언젠가 그 여자에게 상을 줘야 할텐데'라며 걱정했을" 테고, 이번에 그 걱정을 덜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레싱의 작품을 읽은 바 없다. <풀잎은 노래한다>(지학사, 1986) 등이 서점에 꽂혀 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한번도 손길이 간 적은 없다. 이유는 이 작가가 무얼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주파수를 맞출 수 없었던 것. 수상직후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기사들을 몇 개 읽어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아예 저렴한 소설 두 권을 주문했다(<황금 노트북>은 이달중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내달에나 읽어볼 계획으로(노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책은 모레나 받을 것 같고 미리 소개기사나 모아놓는다.

한겨레(07. 10. 13) 페미니즘 문학 선구자…사회성 짙은 소설 즐겨

다음주면 만으로 88살이 되는 도리스 레싱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 최고령자에 해당한다. 1950년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하면서 시작된 그의 문학 경력은 어느새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신작을 발표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19년 지금의 이란에서 태어난 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성장한 레싱은 열네 살 이후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이후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면서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두 번 이혼한 뒤 1949년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지금 런던 교외 햄스테드에서 살고 있다.

백인 농부의 아내와 흑인 하인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인종 간 갈등을 비판한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보듯 초기의 레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와 흑인에 대한 억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56년부터 남아공 입국이 거부되었다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이 무너지고 흑인 정부가 들어선 1995년에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또한 그는 1952년에 영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56년 헝가리 봉기를 계기로 탈당한 바 있는데, 이 무렵 그의 소설들은 진한 사회주의적 경향과 강렬한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레싱 문학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금 노트북>(1962)이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적 업적이며 남녀 관계에 관한 20세기적 관점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레싱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하는 데에 부정적이다.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남녀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해명이다. <황금 노트북>은 자서전적 (논)픽션과 노트, 수기, 일기 등이 다양하게 오가는가 하면 메타소설적 구성을 짜는 등 현란한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평민사에서 한때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으며, 도서출판 ‘뿔’에서 이달 중에 다시 나올 예정이다.

레싱의 숱한 작품 중에서도 한 젊은 여성이 테러 조직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다룬 <선량한 테러리스트>(1985)는 테러와 반테러가 격돌하는 21세기 초 지금의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울림을 준다.
레싱은 근년 들어 본격문학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과학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문학계의 논쟁을 낳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마라와 단>(1999)과 2005년작인 그 속편 등의 과학소설에 대해서도 “인류를 원시적 상태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전지구적 재앙의 가능성이 도리스 레싱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녔던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07. 10. 13) 리얼리즘에서 SF까지… 펜을 마술봉처럼 휘둘러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88)은 이란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랐다. 대영제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반항적 에너지로 충만한 60년대를 온몸으로 견뎠다.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당대의 평론가들이 그녀를 존 오스번·아이리스 머독 같은 또래 작가들과 함께 ‘성난 청년들’(Angry Young Men)이라고 불렀다.

레싱은 1919년 10월 이란 바흐타란에서 은행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레싱이 여섯 살 때 일확천금을 꿈꾸며 짐바브웨로 이주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14세에 학교를 중퇴한 그녀는 보모·전화교환수·속기사·기자 등을 전전했다. 1949년 레싱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을 데리고 런던에 이주했다.

데뷔작 ‘풀잎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1950)에 이어, 1952년부터 69년까지 ‘마사 퀘스트’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킨 ‘폭력의 아이들’(Children of Violence) 연작 다섯 편을 발표해 문명을 얻었다. 특히 연작 마지막 작품인 ‘네 개의 문이 있는 도시’(The Four- Gated City·1969)가 걸작으로 꼽힌다.

60년대에는 여류작가인 주인공 ‘아나 울프’가 인생을 성찰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 ‘황금 노트북’(The Golden Notebook·1962)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소설은 정교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서전적 논픽션, 신문 기사, 수기, 일기 등 다채로운 형식을 소설에 도입했고, ‘소설 속에서 소설 쓰기’ 기법을 취했다.

1979년부터 84년까지 차례로 발표한 ‘아르고 선의 카노푸스: 기록(Canopus in Argo: Archives)’ 연작에서 레싱은 핵전쟁 이후 인류를 소재 삼아 SF까지 영역을 넓혔다. 80년대 이후에는 사실주의적인 소설로 돌아왔다. 당대의 좌파와 여성 운동가들을 풍자한 소설 ‘좋은 테러리스트’(The Good Terrorist·1985), 자서전 ‘내 살갗 아래서’(Under My Skin· 1994), 대영제국의 마지막 시기를 다룬 소설 ‘가장 달콤한 꿈’(The Sweetest Dream· 2001) 등이 근작이다.

레싱은 1952~56년 영국 공산당원이었고, 열렬한 반핵 운동가였다. 인종주의와 독재를 신랄하게 비판해 90년대까지 남아공·짐바브웨 정부의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격렬한 청춘을 보낸 이 노대가는 그러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독일 DP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진 다음엔 너무 많이 주목을 받는다”며 “눈길을 받지 못하는 좋은 작가들이 많다”고 겸손해했다. 노벨상에 앞서 레싱은 서머싯 몸상, 메디치상 등을 받았다.(김수혜 기자)

07. 10. 15.

P.S.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하도 최근(노년)의 사진들만 뜨기에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좀 찾아봤다(일련의 초상은 http://www.dorislessing.org/portraits.html 참조). 그 중 하나로 1962년 사진이니까 43살 때이다. 오르손에 담배를 꼬나들고 있는 모습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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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5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7-10-1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로쟈 2007-10-15 18: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필라멘트 2007-10-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자 발표된지 몇일 지났는데 관련 포스트가 없길래, 혹시 로쟈님이 내심 기대했던 러시아 작가가 선정안됐다고 서운해서 그냥 패스하셨나 혼자 오해를 했었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작가 수상소식을 접한지도 꽤 오래됐네요. 이제 받을 때도 된 것도 같은데 몇년안에 받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2000년대 들어 영국작가들은 벌써 3명이나 수상했네요.

로쟈 2007-10-15 22:27   좋아요 0 | URL
레싱의 작품을 읽어본 게 없어서 좀 늦어진 것이죠.^^; 탈 만한 작가들이 수상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